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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다 2012/01/12 02:12

억압사회 : 박정근 구속, 열혈초등학교 연재 중단, 서울학생인권조례 재의


1.

계속 진절머리가 났고 원래 이렇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한꺼번에 터지자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속으로는 짜증과 분노가 넘실거렸다. 트위터에서, 주변에서 개별적인 사건- 또는 전체적인 사건들에 대해 분노와 척결을 외치는 소리가 드높았지만 그 소리의 실체를 보는 순간 더 기분은 안 좋아지기만 할 따름이었다.

2,

사건의 싹은 예전부터 터올랐지만, 아무튼 그 결실은 2012년 1월 초순에 연이어 터져나왔다. 순서대로 정리해보자면- 이대영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 권한대행이 작년 12월 말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재의 결정을 내려 다시 의회에 조례를 돌려보내고, 만화가 귀귀의 웹툰 <열혈초등학교>의 연재처 <야후! 코리아>가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작품의 연재 중단을 통보했고, 사회당 당원 박정근은 '재범행 가능성을 이유로' (링크)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져 이 글을 쓰는 1월 12일 새벽 현재 그는 신체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얼핏보면 이 사건들은 각각 (학생/청소년) 인권, 작품의 표현 자유, 정치적 표현 자유라는 개별된 영역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들이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서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하나의 축으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내세워서, 개인과 단체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권리를 제약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개별 사건에 대해 사건을 일으킨 주역들의 말을 낱낱이 살펴보자. 서울시교육청의 재의요구안은 크게 ⓐ 상위법과 충돌 ⓑ 학생인권위원회, 학생인권옹호관 설치가 교육감의 인사권 및 정책결정권 제한 ⓒ 집회의 자유 등의 각종 학생인권 보장, 차별 금지 조항에 우려가 있어 재의를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링크) 또한 지방자치법에서는 '월권, 법령에 위배되거나 공익을 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례에 대해서 재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링크) <열혈초등학교>에는 어떤 식으로 대했나? 1면에 큼지막하게 글을 박아놓았던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한 전문가의 말을 빌려 '웹툰이 폭력을 합리화시켜 조장한다고' 강하게 정의를 내렸으며 (링크) 며칠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학교) 폭력에 대해 다룬 웹툰에 대한 중점 모니터링에 대한 보도자료의 내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 내용이다. (링크) 검찰은 박정근이 북한 관련 매체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고, 멘션을 RT한 것이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링크)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서울시교육청 / 조선일보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 검찰의 주장에 공통적으로 1) 자신들이 비판하는 대상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사회에 문제가 되는 존재들이며 2) 안정적인 교육환경과 올바른 학생상, 건전한 학교, 국가 보안을 내세워서 이들을 차단하고 몰아내는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얼핏 듯기엔 좋은 말이다. 안정적이고 건전하고 보안이 튼튼하게 세워진 올바른 사회. 이들의 주장만 들으면 이들의 결정은 정의로운 사회를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행위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들의 주장에서 벗어나 공격을 받은 대상들의 면모를 보자. 서울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광주광역시에 이어 학교 내 청소년(=학생)의 인권을 위해 추진한 광역자치단체 내 조례이다. 귀귀의 <열혈초등학교>는 소위 '병맛 만화'의 일종으로 부조리하고 뭔가 말이 맞지 않는 상황을 구현함으로써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 만화이다. 사회당 당원 박정근은 그가 당원으로 있는 사회당은 계속 반조선로동당 노선을 견지해왔으며, 그는 트위터로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를 RT하는 동시에 북한 체제,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해 풍자하고 조롱하는 작업을 계속 해왔었다. 이것들은 과연 사회를 망치고 어지럽히는 악의 축인가?  (그러고보니 마침 모아놓고 보니 딱 세 개다.) 난 정말로 궁금하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재의요구안에서 든대로 폭력에서 자유롭고, 집회와 개성을 실현할 자유와 성적 지향, 임신/출산 등으로 차별받지 않은 권리가) 헌법의 조항을 준수하는 기본적이고 당연한 행위이다. 분명 <열혈초등학교>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낄 이가 있겠지만, 그 작품으로 인해 학생 사회가 폭력으로 물들었다는 말은 이명박이 한국을 망친 주범이라는 말처럼 순진하다. 박정근이 북한 관련 멘션을 RT- 배포해 국가 안보를 어지럽혔다는 소리는, 한국에 존재하는 북한 관련 서적과 프로그램들이 국가 안보를 어지럽힌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악의 축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악의 축으로 모는 자들이 악의 축이라는 자리에 더욱 적합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그렇게 누군가를 악으로 취급하고 사회에서 내몰려고 하는가. 누군가가 말하는 것처럼, 이명박과 그 수하인들이 날이 갈수록 악재가 터지자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벌이는 수작인가? 분명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이는 음모론에 불과하다. 과연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는 국가가 학생/청소년 인권 보장을 위해 온갖 헌신을 아끼지 않았으며, 작품들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피해를 받지 않았는가? 여기에 맞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애석하게도 답은 아니다이다. 인권은- 특히 학생/청소년의 인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침해받고 있으며, 청소년보호법과 이를 근간으로 세워진 청소년보호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심의 기관은 계속 운영되었으며, 국가보안법 역시 계속 유지되었다. 적용되는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짧게는 15여년, 길게는 60 ~ 70여년간 국가의 억압기제는 계속 존속해왔었다. 인민의 권리와 자유는 사실, 한국에서 별로 보장받던 시절 자체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권리와 자유는 경제와 국가라는 이름 하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을 뿐.

3.

세 사건이 동시에 터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그동안 계속 진행되었던 한국 사회의 억압이 매우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지표로 생각한다. 물론 6월 항쟁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공연윤리위원회 폐지 같은 사건 등을 통해 분명 진전한 점은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부분은 바뀌었는가. 단적으로 말해서 아직 근본은 바뀌지 않았으며, 서서히 많은 (그러나 아직은 적은) 사람들이 근본에 손을 대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태가 현재 한국의 정세라고 본다. 누군가가 원하는대로 정권이 바뀐다면, 집권세력이 소위 '진보적 민주주의'나 '개혁적인' 세력으로 바뀐다면 이 상황의 피상적인 흐름은 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정권이 바뀌고 집권세력이 바뀌면 근본도 변하는가? 김대중과 민주당,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집권을 염원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분명 그렇게 원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원하는대로 그들은 집권하였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뭔가 변한 듯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변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대안을 제시하라고 닥달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딱 들어맞는 대안은 원래 있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있지 않다. 경기, 광주, 서울의 학생인권조례들은 땅 밑바닥까지 떨어진 학생/청소년 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보장받으려는 기반을 만드려는 시도이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는 대안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한 가지 길이 있다면, 사회를 계속 지배하고 있는 억압적인 것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디 결실이 공짜로 주어지던가. 우리가 칭송하는 일본, 미국 등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에 놓여있는 서브컬쳐와 유럽의 표현의 자유는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지도, 위정자들이 선물로 준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계속 정권과 편견에 맞서 싸워나간 결과이며, 그 싸움은 지금까지도 벌어지는 중이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 같이 싸울 수도 있고, 아니면 글을 쓰거나 주변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식으로 이 세상에 태클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억압인 만큼 이를 푸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답이 쉬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이 졸문을 써 그 싸움에 조금이나마 동참한다. 계속 이 상황에 문제를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서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견고하게 기반이 쌓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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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아프리카 - 여행, 예술 그리고 성장.

 

1년 전, 씨네21의 성인을 위한 만화 잡지 『팝툰』은 대대적인 개편을 하게 되었다. 인기가 없던 만화들을 갈아치우고 여러 작품들을 새로 들여왔는데, 특이하게도 신작 중의 하나는 소설, 「카오스모폴리탄」이었다. 만화 잡지에 만화가가 소설을 연재한 적은 있어도 (천계영 - 「The 클럽」, 지금은 사라진 시공사의 만화 잡지 『비쥬』에서 연재) 전업 소설가가 소설은 연재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게다가, 실시간 여행 소설이라니. 너무 특이한 소재잖아.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컷던 탓이었을까. 권리가 풀어내는 각 국의 사람들과 예술에 대한 시선은 눈 앞에서 그 나라의 그림이 그려지게 하였으나, 그것 뿐이었다. 언제부턴가 실시간 여행소설은 난데없이 추리 소설이 되었다가 성장 소설이 되었다. 스토리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여행지의 풍광을 그려내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도대체 방향을 알기가 힘든 소설이 되어 버렸다. 결국 황급하게 결말이 나고 말았고, 기약없는 단행본 발매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이 작품은 어떻게 다시 태어날 것인가.

 

연재를 마치고 약 1년 간의 수정을 거쳐 나온 물건은 『팝툰』 연재 시절에 비교해서 환골탈태한 수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름부터 변했다. 「카오스모폴리탄」이라는 제목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버지와 관련된 '그림' (사실, 초반부의 그것은 그림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하다.) 「눈 오는 아프리카」로 바뀌었다. 그동안 명확하지 않았던 주인공 유석의 심리 묘사나, 일본인 파트너 스기야마 쇼타의 일도 그럭저럭 이해가 갈 수 있게 바꾸었다.

 

「카오스모폴리탄」이 실시간 여행소설로 출발해 작가의 무모한 도전 탓인지, 난데없는 바람이 들었던 것인지 추리와 예술과 성장이 종잡을수 없을 정도로 섞여버렸다면 「눈 오는 아프리카」는 곧 20대가 될 '아이'의 성장 과정을 예술과 여행, 그리고 약간의 추리로 그려내고 있다. 연재 당시에 마구 섞였던 요소들은 단행본에서는 적절한 안배로 균형을 맞추게 되었다.

 

주인공의 여행은 즉흥적이면서도, 결코 즐겁지 않은 이유에서 출발한다. 세밀화의 대가 야마 ('야마돈다'의 야마가 아니고, 夜馬이다.) 고을주 화백의 아들 고유석은 난데없이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로 인해 유작의 가격이 상승하자 매우 곤란한 위치에 처한다. 야마 화백의 대표작 「야마 초상화」는 결국 야마의 부인이자 유석의 어머니에 의해 야마의문사위에 팔아 넘긴다. 그러나 참 얄궂기도 하지. 그만 초상화에 대한 위작 논쟁이 터져나오고 급기야 유석의 집안은 돈에 쪼들리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최 교수의 집에 얹혀 살기도 하다가, 어느 날 문법이 틀린 불법 다운로드 영상 자막 제작자를 찾다가 엉겁결에 그의 파트너가 된다. 그의 이름은 스기하라 쇼타, 한자 그대로 읽으면 상태. 그는 난데없이 유석에게 자신의 형, 히데오를 찾으러 가자고 하고 마침 그의 집에서 위작 논쟁이 분분하던 초상화를 발견하게 된다. 초상화로 때문에 집안이 흔들린 쓰라린 기억 때문에 그만 스프레이로 떡칠을 하고만 유석, 대충 수습을 하려고 하지만, 이 떄 최 교수는 원작이 헝가리에 있다고 한다.

 

마침 형을 찾기 위해서 떠나자고 했던 쇼타의 말을 듣는 김에,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초상화를 찾으러 유석과 쇼타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된다. 목적은 있으나,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여행. 감성을 중시하는 성격의 유석과 이성과 분석을 믿는 쇼타, 두 사람의 이런 극과 극의 성격 때문에 싸우기도 하지만 형과 그림을 찾아가려는 여정 속에서 둘은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가장 끌리는 캐릭터는 유석이었다. 대학을 두 번이니 재수하고 세 번째 수능을 보러 가야 했지만 심정의 복잡함으로 인해서 그는 쇼타와 같이 여행을 떠난다. 그의 신체는 어른이지만, 마음은 아직 철이 없는 아이와 같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단지 쇼타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림을 찾으러 가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여행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지각색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의 마음은 점차 커간다.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았다가, 점차 하나가 되어 간다.

 

앞서 말했지만, 이 작품은 권리의 여행지 묘사와 함께 점차 변해가는 유석, 쇼타, 그리고 둘의 주변 사람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 자신이 여행한 곳을 전부 소설에 집어넣고 싶었던 탓인지, 작품의 행방이나 '반전'이 납득이 가지 않는 편이다. 차라리 추리 파트를 약간 제껴두고서 심리 묘사나 풍광 묘사, 그리고 작품 중간에 나오는 예술에 대한 논쟁에 더 눈을 기울이는 것이 이 작품은 더 잘 읽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팝툰』이 낳은 첫 소설작이자, 여행 겸 성장 겸 예술 소설로써는 수작이다. 이제, 앞으로 나올 강지영 작가의 「심 여사는 킬러」를 기대해본다.

 

눈 오는 아프리카 - 8점
권리 지음/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