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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다 2012/01/12 02:12

억압사회 : 박정근 구속, 열혈초등학교 연재 중단, 서울학생인권조례 재의


1.

계속 진절머리가 났고 원래 이렇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한꺼번에 터지자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속으로는 짜증과 분노가 넘실거렸다. 트위터에서, 주변에서 개별적인 사건- 또는 전체적인 사건들에 대해 분노와 척결을 외치는 소리가 드높았지만 그 소리의 실체를 보는 순간 더 기분은 안 좋아지기만 할 따름이었다.

2,

사건의 싹은 예전부터 터올랐지만, 아무튼 그 결실은 2012년 1월 초순에 연이어 터져나왔다. 순서대로 정리해보자면- 이대영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 권한대행이 작년 12월 말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재의 결정을 내려 다시 의회에 조례를 돌려보내고, 만화가 귀귀의 웹툰 <열혈초등학교>의 연재처 <야후! 코리아>가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작품의 연재 중단을 통보했고, 사회당 당원 박정근은 '재범행 가능성을 이유로' (링크)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져 이 글을 쓰는 1월 12일 새벽 현재 그는 신체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얼핏보면 이 사건들은 각각 (학생/청소년) 인권, 작품의 표현 자유, 정치적 표현 자유라는 개별된 영역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들이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서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하나의 축으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내세워서, 개인과 단체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권리를 제약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개별 사건에 대해 사건을 일으킨 주역들의 말을 낱낱이 살펴보자. 서울시교육청의 재의요구안은 크게 ⓐ 상위법과 충돌 ⓑ 학생인권위원회, 학생인권옹호관 설치가 교육감의 인사권 및 정책결정권 제한 ⓒ 집회의 자유 등의 각종 학생인권 보장, 차별 금지 조항에 우려가 있어 재의를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링크) 또한 지방자치법에서는 '월권, 법령에 위배되거나 공익을 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례에 대해서 재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링크) <열혈초등학교>에는 어떤 식으로 대했나? 1면에 큼지막하게 글을 박아놓았던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한 전문가의 말을 빌려 '웹툰이 폭력을 합리화시켜 조장한다고' 강하게 정의를 내렸으며 (링크) 며칠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학교) 폭력에 대해 다룬 웹툰에 대한 중점 모니터링에 대한 보도자료의 내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 내용이다. (링크) 검찰은 박정근이 북한 관련 매체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고, 멘션을 RT한 것이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링크)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서울시교육청 / 조선일보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 검찰의 주장에 공통적으로 1) 자신들이 비판하는 대상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사회에 문제가 되는 존재들이며 2) 안정적인 교육환경과 올바른 학생상, 건전한 학교, 국가 보안을 내세워서 이들을 차단하고 몰아내는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얼핏 듯기엔 좋은 말이다. 안정적이고 건전하고 보안이 튼튼하게 세워진 올바른 사회. 이들의 주장만 들으면 이들의 결정은 정의로운 사회를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행위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들의 주장에서 벗어나 공격을 받은 대상들의 면모를 보자. 서울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광주광역시에 이어 학교 내 청소년(=학생)의 인권을 위해 추진한 광역자치단체 내 조례이다. 귀귀의 <열혈초등학교>는 소위 '병맛 만화'의 일종으로 부조리하고 뭔가 말이 맞지 않는 상황을 구현함으로써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개그 만화이다. 사회당 당원 박정근은 그가 당원으로 있는 사회당은 계속 반조선로동당 노선을 견지해왔으며, 그는 트위터로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를 RT하는 동시에 북한 체제,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해 풍자하고 조롱하는 작업을 계속 해왔었다. 이것들은 과연 사회를 망치고 어지럽히는 악의 축인가?  (그러고보니 마침 모아놓고 보니 딱 세 개다.) 난 정말로 궁금하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재의요구안에서 든대로 폭력에서 자유롭고, 집회와 개성을 실현할 자유와 성적 지향, 임신/출산 등으로 차별받지 않은 권리가) 헌법의 조항을 준수하는 기본적이고 당연한 행위이다. 분명 <열혈초등학교>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낄 이가 있겠지만, 그 작품으로 인해 학생 사회가 폭력으로 물들었다는 말은 이명박이 한국을 망친 주범이라는 말처럼 순진하다. 박정근이 북한 관련 멘션을 RT- 배포해 국가 안보를 어지럽혔다는 소리는, 한국에 존재하는 북한 관련 서적과 프로그램들이 국가 안보를 어지럽힌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악의 축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악의 축으로 모는 자들이 악의 축이라는 자리에 더욱 적합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그렇게 누군가를 악으로 취급하고 사회에서 내몰려고 하는가. 누군가가 말하는 것처럼, 이명박과 그 수하인들이 날이 갈수록 악재가 터지자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벌이는 수작인가? 분명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이는 음모론에 불과하다. 과연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는 국가가 학생/청소년 인권 보장을 위해 온갖 헌신을 아끼지 않았으며, 작품들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피해를 받지 않았는가? 여기에 맞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애석하게도 답은 아니다이다. 인권은- 특히 학생/청소년의 인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침해받고 있으며, 청소년보호법과 이를 근간으로 세워진 청소년보호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심의 기관은 계속 운영되었으며, 국가보안법 역시 계속 유지되었다. 적용되는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짧게는 15여년, 길게는 60 ~ 70여년간 국가의 억압기제는 계속 존속해왔었다. 인민의 권리와 자유는 사실, 한국에서 별로 보장받던 시절 자체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권리와 자유는 경제와 국가라는 이름 하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을 뿐.

3.

세 사건이 동시에 터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그동안 계속 진행되었던 한국 사회의 억압이 매우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지표로 생각한다. 물론 6월 항쟁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공연윤리위원회 폐지 같은 사건 등을 통해 분명 진전한 점은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부분은 바뀌었는가. 단적으로 말해서 아직 근본은 바뀌지 않았으며, 서서히 많은 (그러나 아직은 적은) 사람들이 근본에 손을 대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태가 현재 한국의 정세라고 본다. 누군가가 원하는대로 정권이 바뀐다면, 집권세력이 소위 '진보적 민주주의'나 '개혁적인' 세력으로 바뀐다면 이 상황의 피상적인 흐름은 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정권이 바뀌고 집권세력이 바뀌면 근본도 변하는가? 김대중과 민주당,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집권을 염원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분명 그렇게 원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원하는대로 그들은 집권하였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뭔가 변한 듯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변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대안을 제시하라고 닥달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딱 들어맞는 대안은 원래 있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있지 않다. 경기, 광주, 서울의 학생인권조례들은 땅 밑바닥까지 떨어진 학생/청소년 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보장받으려는 기반을 만드려는 시도이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는 대안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한 가지 길이 있다면, 사회를 계속 지배하고 있는 억압적인 것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디 결실이 공짜로 주어지던가. 우리가 칭송하는 일본, 미국 등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에 놓여있는 서브컬쳐와 유럽의 표현의 자유는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지도, 위정자들이 선물로 준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계속 정권과 편견에 맞서 싸워나간 결과이며, 그 싸움은 지금까지도 벌어지는 중이다. 어떤 조직에 들어가 같이 싸울 수도 있고, 아니면 글을 쓰거나 주변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식으로 이 세상에 태클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억압인 만큼 이를 푸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답이 쉬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이 졸문을 써 그 싸움에 조금이나마 동참한다. 계속 이 상황에 문제를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서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견고하게 기반이 쌓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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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다 2011/12/31 19:11

2011 이슈 앤 베스트 [만화 / 영화 / 사회-문화]


한 해가 가기전에 우여곡절 끝에 2010년에 이어 <이슈 앤 베스트>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개인적인 역량 부족으로 인해 음악 분야는 사회-문화에 합쳐 결산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외의 글들도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2011년 한 해의 만화, 영화, 그리고 사회-문화 (+ 꼽사리로 앞에 살짝 들어간 음악) 분야에 대한 정리를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2011년의 모습을 바라보았나요. 댓글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유롭게 생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2011년 한 해가 저물어 가네요. 2012년엔 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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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다 2011/12/31 19:01

2011 이슈 앤 베스트 : 사회/문화, 말은 많았지만


먼저 2010년에는 따로 음악 파트를 묶었지만, 제가 음악에 별 조예가 없다는 사실을 계속 절감해 짧고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이슈 앤 베스트' 음악 이야기는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 BEST

 - 이승열 3집 「Why We Fail」 (플럭서스뮤직 제작, KT뮤직 배급) : 묵직하게, 정통적으로 락에 접근한다.
 - 허클베리 핀 5집 「까만 타이거」 (샤레이블/루비살롱레코드 제작, CJ E&M 배급) : 예전의 허클베리 핀과 달라졌다는 평가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매력적이다.
 - 장기하와 얼굴들 2집 「장기하와 얼굴들」 (붕가붕가레코드 제작, 미러볼뮤직 배급) : 소포모어 징크스를 이겨내고 1집보다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우면서, 서서를 만들어내는 역시 재간둥이 장얼.
 - 김창완밴드 EP 「Darn It」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작, 로엔엔터테인먼트 배급) : 몇 년 간의 실험 끝에 김창완에는 산울림이 어울리다는 사실을 '제대로' 다시 인식시켰다.
 - 모임 별 1집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비단뱀클럽 제작, 미러볼뮤직 배급) : 오랜 세월을 거쳐 나온 정규 1집, 몽환으로 가득찬 궤적을 다시 밟는 소중한 계기.
 - 뎁(deb) 2집 「백만불짜리여자」 (비트볼레코드 제작, 소니뮤직코리아 배급) : 1집보다 더 능숙한 솜씨로 발랄하게, 때로는 친근하게 일렉트로니카를 외친다.
 - 아침(Achime) EP 「Hyperactivity」 (붕가붕가레코드 제작, 미러볼뮤직 배급) : 오토튠을 사용한 일렉트로니카 분위기가 흐르는 락을 시도하고, 결국 막바지에 그동안 갈고 닦은 사운드를 터트린다.
 - 크라잉 넛 & 갤럭시 익스프레스 스플릿 앨범 「개구쟁이」 (드럭레코드/러브락컴퍼니 제작, 미러볼뮤직 배급) : 데뷔한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흥겹다. 드럭레코드의 매니지먼트를 러브락컴퍼니가 맡게된 것을 기념해 나온 음반인데, 참 기분 좋은 기념 음반.
 - 앵클어택 & 밤섬해적단 스플릿 앨범 「The Split」(자체 제작, 인혁당 배급) :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밴드의 만남. 자립음악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린다.
 - 김일두 & 하헌진 스플릿 앨범 「34:03」 (자체 제작, 배급) :  "이게 바로 자립음악이다." 2탄. 기교는 없어도 진심으로 새겨진 음악은 청자의 마음을 똑똑 울린다.

이제 넘어가서 사회에 대한 '이슈 앤 베스트'를 선정하고자 한다. 워낙 다양한 사건이 많아서, 키워드를 통해서 정리를 하겠다.

사회 : ISSUE

 - 통합 : 작년부터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젠 통합에 대해 반대하면 매국노로 불릴 기세가 되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으로 구성된 통합연대가 합당해 통합진보당이 되었고, 민주당과 시민단체 '혁신과 통합'의 일원들이 구성한 시민통합당이 합당해 민주통합당이 되었다. 여기에 사회당이 진보신당으로 흡수된다는 이야기마저 들리고 있다. 약소 단체 끼리 연대하는 것은 중요하고, 때로는 합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통합을 위한 통합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힘을 모아서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통합'이라는 광풍이 세차게 불고 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날이 갈 수록 폭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 미디어 : <딴지일보>에서 만든 웹라디오 <나는 꼼수다>가 큰 인기를 얻었다. <딴지일보>에서는 자매방송 '나는 꼽사리다', 반대 진영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라디오 <명품수다> 등을 만들었지만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게임계에서는 <POG>, <게임구타위원회> 같은 류의 방송이 만들어졌고, 비슷한 시기에 만화계에서는 YES24에서 <만화만담>을, 유저 자체적으로는 mirugi 선정우 씨와 헤지호그 임영웅 씨가 <끝없는 라디오>를 런칭했다. 그야말로 웹라디오의 시대이다. 마냥 <나는 꼼수다>의 공적을 찬양하기 전에 그 전에 있었던 <모난라디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야채라디오> 등도 기억을 해야겠지만.
 분명 <나는 꼼수다>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특유의 입담과 재미로 인해 많은 인기를 모은 것은 인정하고, 인기를 얻은 이후 <나는 꼼수다>가 미치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과연 <나는 꼼수다>가 대안 언론인지, 아니면 토크쇼인지에 대해선 고민해봐야 한다. <나는 꼼수다>는 공공연히 언론을 자처하고 있지만, 언론이라 하기에는 날이 갈수록 '소설'이 너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나는 꼼수다>의 내용이 최선이라 믿고, 방송 자체와 주위에서 이를 부추기는 모습이란, 참. 
 한편 한 해가 지나가기 며칠 전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에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SNS, UGC(UCC), 블로그 등 인터넷을 활용한 선거 운동에 대한 길을 열어주었다. 시대적으로 맞지 않았던 흐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명확한 결론을 내린 듯 하다. 그 밖에 종편과 부산일보 발간 중단 사태 같은 일에 대해서도 꾸준히 기억을 했으면.
 - FTA : 하반기는 한미FTA 문제로 화염에 휩싸였다. 날치기로 FTA가 처리되자 국회는 한동안 파행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시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하루 빨리 정권을 바꾸어 FTA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역주권/반미적 시선에서 FTA를 반대하는 것은 FTA를 무조건 찬성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며 FTA가 한, 미 양국의 하층 계급에 피해를 미치고 상층 계급에 더 자본을 가속화시키는 계급적인 차원에서 FTA를 바라봐야.
 - 게임 : 게임은 올 한 해 동네북이었다. 게임을 하면 뇌가 짐승처럼 변한다느니 같은 망언들이 계속 쏟아졌고 결국 셧다운제는 11월에 예정대로 시행되었다. 예상대로, 한국의 보편적인 주민등록번호 도용 실태를 예상하지 못한 셧다운제는 유명무실화된지 오래. 아이러니하게도 방송통신위원회가 네이트/메이플스토리 개인정보 해킹 사태 이후로 사이트에서 되도록이면 주민등록번호을 받지 않게 처리한 것과 반대로 여성가족부/문화체육관광부는 셧다운제 적용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예전부터 이어져온 게임 등의 서브 컬쳐에 대한 편견적 시선이 정책과 만나면 어떤 일을 낳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 대구 청소년 자살 사건에도 어김없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 인권 : 광주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었고, 전북학생인권조례는 교육상임위에서 부결되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겨우 주민발의를 채웠지만 중간중간에 드러난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당 의원들의 인권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발언들로 조례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과 조례 제정을 바라는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였다. 오죽했으면 성소수자들과 인권 활동가들이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1층을 점거했을까. 다행히 성소수자 등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은 모두 유지가 되었으나 애석하게도 복장의 자유, 시위 및 집회의 자유, 물품 소지의 자유와 관련된 부분이 수정되었다. 추후 운동으로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다. 또한 경기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인권 침해가 여전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의 가운고가 대표적 사례. 분명 체벌은 하지 않았다. 대신 상벌점제를 운영해 40명의 학생을 퇴학시켰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의 움직임으로 겨우 가운고 사건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외에도 인권 침해는 여기저기서 산적하다. 청소년 인권 외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성희롱 사건을 들 수 있겠다. 하청회사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남성 상사로 부터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당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회사는 오히려 노동자를 해고했다. 긴 시간 동안 시위와 농성을 한 끝에 겨우 현대자동차는 해고 노동자의 원직 복직에 합의하고 그동안 받지 못한 월급을 지급했다. 이외에도 올 초부터 홍익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를 시작으로 번져나갔던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투쟁도 노동 인권의 차원에서 중대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학교들은 보란듯이 복수노조를 만들어 이들은 몰아내려 시도하고 있다. 아, 참. 여기에 강정마을 -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도 추가.
 - 노동 : 노동계에서 대표적인 사건은 단연 한진중공업 해고자 복직을 위해 생겨난 운동인 희망버스를 들 수 있겠다. 노동활동가들과 시민/인민들이 결합해 부산으로 (4차 희망버스의 경우 서울) 내려갔던 대중 동원형 운동으로 조직된 '희망버스'는 비록 즉각 복직에는 합의하진 못했지만 빠른 시일 내의 해고자 복직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하반기 이후 월스트리트를 시작으로 빠르게 퍼져나간 Occupy 운동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 금융 자본에 대한 반대를 통해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여기 저기로 흘러나갔다.

사회 : BEST

 - 김진숙과 김여진, 그리고 희망버스 : 김여진의 경우 기타의 활동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지만 분명 희망버스 운동에 있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트위터 등의 SNS로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은 일종의 르포였다. 그리고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버스는 이들의 행보에 발을 실을 수 있게 하였다.
 - 서울, 광주, 그리고 아쉽지만 전북의 학생인권조례 추진 활동가들 : 말이 필요있겠는가. 어떤 곳은 비교적 쉽게, 어떤 곳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그리고 어떤 곳은 아쉽게도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이들에 밀려 이루지 못했다. 경기학생인권조례의 사례에서 보듯이 실제 준수여부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명문화된 인권 보호 조항을 쟁취한 것에 대해 박수를, 그리고 최선을 다해 힘을 쓴 모두에게 찬사를.
 - 두리반과 명동해방전선 : 두리반은 결국 승리를 쟁취했고, 아쉽게도 명동은 세입자와 명동해방전선 등을 통해 뭉친 활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패배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철거 투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던 사람들이 뭉쳤고,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립음악생산조합, 지잡동, 명동해방전선 등의 조직들은 이러한 경험이 없이는 결코 생켜날 수 없는 조직이었다. 제 2의 두리반, 제 2의 명동은 주변에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렇게 조직된 그들은 다시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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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다 2011/02/28 10:14

이광재는 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을까

지난 1월 27일, 대법원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지난 서울고등법원에서 원심의 일부를 인정한 판단을 내린 만큼, 그 판결은 지난 지방법원 판결과 고등법원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판결이다. 한동안 인터넷에서 판결의 정당성 여부를 놓고 무척이나 들끓었다. 그리고 재보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판결의 충격파는 아직도 계속 전달되고 있다.

사실 솔직한 심정을 밝히자면 원래 이런 주제의 글을 쓸 의향이 없었다. 애초에 난 음모론을 믿는 사람도 아니다. 법원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경로로 뉴스나 정보를 찾으면서 이광재 전 도지사가 무죄인데 (정부의 음모 등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글을 쓰게 된 것은, 매우 우연한 일이었다. 몇 주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자 확인 소송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가장 필수적인 검사인 DNA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조사에 불성실하게 임했고, 결국 '다른 증거를 통해 심증이 굳어졌다'고 판단해 패소 판결이 나왔다. 중요한 DNA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친자 확인 소송에 대한 결과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분 몇몇을 비롯해 어떤 사람들은 판결 결과를 매우 확신하는 입장이었다. 그게 불편했다. 그래서 트위터에 관련된 트윗을 올렸다. 문제는 그 트윗에 '이광재 비리 의혹은 1, 2, 3심에서 계속 유죄 판결이 났는데 왜 무죄라고 생각하고, 김영삼 친자 확인 소송은 1심 밖에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쉽게 그 판결 결과를 단정짓는가' 식의 뉘앙스로 글을 올린 것이었다. 며칠 후 전 『아이큐점프』 편집장인 김충영 씨가 그 트윗에 대한 멘션을 보냈다.

유죄가 어떤 유죄냐도 중요하겠지요. "이광재 당선자가 돈을 받고 일을 부정하게 한 사실은 없지만, 당시 권한이 많은 상황에서 조심했어야 했고, 따라서 비난 가능성도 높으므로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어떻게 유죄라고 봐야 할지요…?
- 2011년 2월 27일 새벽 3시 1분, 김충영 (굵게 처리한 것은 필자가 임의로 처리한 것입니다.)

아차, 그때서야 그 문장이 생각났다. 한동안 트위터와 각종 게시판을 휩쓸었던 문장을 김충영 씨가 보낸 멘션을 보고서야 다시 기억을 하게 되었다. 그 때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인데 이렇게 다시 다가오니 정말 궁금했다. 왜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어째서 이런 이유로 이광재 전 도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는가. 정말 그런 이유에서인가. 아니면 잘못 전달된 것인가. 정말 위에 발췌한 내용의 이유대로 유죄를 선고했다면 서울고등법원은 책임을 면치 못 할 것이고, 아니라면 실제로는 어떤 이유에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당시 판결문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웬걸. 인터넷에는 방금 김충영 씨가 언급한 부분만 계속 나오거나, 기사의 간단한 요약 밖에는 판결문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대법원이나 서울고등법원 누리집에 가서 주요 판결란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고. 정말 짜증나서 때려치려는 판에 문득 내가 찾지않은 곳이 떠올랐다. 대학교 학술DB에는 설마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전에 자료 조사차 논문을 찾으면서 학술DB 목록에 법률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당장 찾았다. 그리고 판례 검색을 시도했다. 대법원 판결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다행히 2010년 6월 11일에 선고가 내려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 전문을 찾을 수 있었다. 밑에 있는 PDF 파일이 그 판결문을 내가 직접 읽기 좋게 편집한 것이다. 일부 익명 처리 부분을 수정하고 알기 쉽게 주를 단 것 외에는, 내용 자체에 손을 댄 부분은 없다.


판결문이 워낙 길지만, 유심하게 읽어야 할 부분은 판단과 결론 부분이다. 항소이유의 요지는 피고인 (이광재, 그리고 이광재 전 도지사의 전 보좌관 원 모씨) 과 검사의 항소이유가 적혀있는 부분으로, 법원에 '이런 이유에서 사건을 봐달라고' 요청하는 부분이다. 판단 파트에서 그동안 이루어진 조사와 원심, 그리고 항소이유를 보고 판단을 하고, 결론에서 양형과 어떤 식으로 법령이 적용되는 지를 알린다. 워낙 긴 관계로 읽기 힘들고, 나도 읽기 힘들지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농협중앙회 전 회장 정대근으로부터 정치자금 부정수수를 한 혐의 (이광재 주장을 중심으로)
ⓑ 2006년 4월 17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롯데호텔에서 정치자금 부정수수를 한 혐의 (이광재 주장을 중심으로)
ⓒ 2006년 8월 9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베트남에서 정치자금 부정수수를 한 혐의 (피고인 주장을 중심으로)
ⓓ 2008년 3월 27일 정승영 전 휴켐스 대표로부터 정치자금 부정수수를 한 혐의 (원 모씨, 검사 주장을 중심으로)
ⓔ 2004년 3, 4월경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부터 정치자금 부정수수를 한 혐의 (검사 주장을 중심으로)
ⓕ 2004년 5월경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뉴욕시 강서회관에서 정치자금 부정수수를 한 혐의 (검사 주장을 중심으로)

여기에 대해서 서울고등법원은 어떤 식으로 판단을 내렸는지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 -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은 농협중앙회 회장 사무실과 어떤 식당 부근에 세워둔 이광재의 승용차 안에서 2회에 걸쳐 각각 미화 1만 달러를 건넸다고 검찰과 원심에서 증언했다. 또한 정대근의 수행비서, 운전기사, 비서실 의전팀장의 증언도 정대근의 증언과 일치했다. 단, 식당 부근에서 정치자금을 건네준 부분의 경우 정확하게 날짜 기억을 못했지만 정대근은 증언에서 강원 농협 조합장과 식사를 하던 날에 전달했다고 증언했고, 정대근과 이광재가 2006년 8 ~ 9월 당시 강원도에서 식사를 같이 한 날은 그 때가 유일했다. 이런 증거를 토대로 법원은 정대근이 이광재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다고 판단하고, 이광재의 항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 - 박연차는 롯데호텔의 예약제 VIP 양식당 '메트로폴리탄 클럽'에서 식사를 마친 뒤 미화 5만 달러를 건네려고 했으나, 이광재가 이를 거절하자 이광재의 옷이 걸려있는 옷장 안의 위에다가 돈 봉투를 놓고 먼저 나왔다고 증언했다. 이광재는 주문한 식사의 양과 종업원이 내가 봉투를 가지고 나온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른 인물과 동석할 가능성 및 박연차의 증언이 틀렸다고 주장하나, 당시 주문한 식사 내역인 '한우안심스테이크 두 접시, 전복스테이크 한 접시, 양갈비구이 한 접시, 프렌치모듬치즈 두 접시, 양송이스프, 유기농샐러드, 전통시저샐러드, 과일 각 한 접시, 생수 네 병' 쓰니까 먹고 싶다 이 양이 많긴 하나. 주 식사가 한우안심스테이크라는 사실을 들며 다른 인물이 들어갔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고 있으며, 종업원이 이광재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이광재가 식사한 클럽이 예약제 식당인데, 딱히 이광재가 중요회원은 아닌 관계로 기억을 못 하는 것으로 판단해 이광재의 항소는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또한 굳이 돈 봉투를 옷장에 둔 이유는, 어차피 옷을 벗고 나갈 때 확인을 하니까 그렇게 한 것으로 판단.
ⓒ - 당시 베트남 태광비나 공장 (태광실업의 베트남 현지 자회사이다. - 필자 주) 에 있던 사람은 이광재와 박연차를 포함해 당시 태광비나 이사 이 모씨, 이광재의 현지에 거주하는 지인 최 모씨, 그리고 같이 따라갔던 한병도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있었다. 이광재 전 보조관 원 모씨는 박연차가 이광재가 아니라 자기한테 돈을 줬다고 증언했고, 받은 5만 달러 중 3만 달러는 다시 돌려줬다고 항소했다. 하지만 원 모씨는 박연차와 그리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고, 단순히 이광재의 보좌관으로만 아는 상태였다. 심지어 박연차는 조사를 받을 때서야 원 모씨가 보좌관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원 모씨가 거액의 미화를 받은 것은 출국 중에 베트남 공항에서 걸린 것 덕분에 (…)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로 드러난 상황. 게다가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원 모씨의 말이 맞다면 돈을 이광재와 한병도가 같이 있을 때 보좌관에게 줬다는 소리가 되는데 (…) 사회 통념 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3만 달러를 돌려줬다는 증언도 불확실함. 원 모 씨가 박연차 회장의 관사로 돌아가 3만 달러를 돌려줬다고 증언한 시간은 다른 일행들과 함께 시내 여행을 하던 시간대였다. 시간을 달리는 보좌관 여기서 법원은 원심과 다른 판단을 내리는데, 두 국회의원 (이광재, 한병도) 모두 박연차와 친분이 있던 상황에서 (이광재는 말할 것도 없고, 한병도 역시 이광재의 소개로 몇 번 박연차 회장을 본 적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앞에 있는 상황에서 5만 달러를 이광재에게만 주었을리 없다고 보고, 자세한 분배 상황을 알 수 없어 둘이 반으로 나눠가졌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이광재의 수수 추정 액수는 5만 달러에서 2만 5천달러로 줄었지만, 대신 한병도 전 의원의 2만 5천달러 정치자금 수수혐의가 추가되었다. (…)
ⓓ - 일단 법원은 원 모씨가 '정승영이 이광재가 아니라 나한테 개인적으로 위로금조로 2천만원을 전달했다'고 항소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원 모씨가 돈을 받은 시기가 18대 국회의원 선거 10일 전인데다가, 정승영의 진술이 계속 일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승영이 원 모씨에게 위로금을 줄 이유도 없었고. (…) 그러나 이 혐의는 원심에서도 그렇고, 항소심에서도 이광재에 한해선 무죄 판정이 났는데, 이광재가 '정승영이 전화로 돈을 건네겠다고 말했지만, 보좌관 전 모씨를 통해 정승영에게 거절 의사를 보내도록 지시했다.' 는 주장이 통화 내역 조사 결과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드러났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광재가 정승영의 돈을 거절한 이유를 '상대당(한나라당 - 주) 후보가 금품살포 혐의로 적발되는 사건이 일어나' (…) 거절한 것으로 판단했다.
ⓔ - 원심에 이어 유죄 추정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계속 무죄 판정.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사돈 이인영은 권 모씨와 함께 당시 영월에 있던 이광재 선거사무소로 찾아가 이광재의 부인 이정숙에게 1천만원을 건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인영, 이인영의 아들, 권 모씨의 증언이 이인영의 며느리이자 이인영의 아들의 남편인 정혜진 씨가 작성한 일기장의 내역과 다른 것이 큰 문제였다. 게다가 이인영의 증언 중에서는 선거 운동 기간 중에 후보자 아내가 선거사무소 앞에서 난생 처음 보는 남자한테 대놓고 돈봉투를 받았다 (…) 는 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증언이 있어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법원은 이인영 일가가 정상문에게 신성해운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가 물 먹은 것에 앙심을 품고 (…) 그런 증언을 했다고 판단. 참고로 정상문의 세무조사 무마 의혹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난지 오래.
ⓕ - 미국 뉴욕의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한식당 강서회관의 사장 곽현규는 박연차의 부탁을 받고 미화 2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건 역시 원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 안됨. 당시 이광재는 워싱턴DC에 출장 중이었다. 출장 기간은 약 5일 간. 5일 간동안 미국 백악관 / 국무부 / 국방부 / 국회 방문 일정이 계속 잡혀있었다. 그런데, 워싱턴DC에서 뉴욕까지 가려면 비행기로 약 3 ~ 4시간, 승용차로 가면 그 이상으로 걸린다. 일정이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뉴욕에 잠깐 들려 돈 받고 다시 워싱턴DC에 간다!? 그럼 최소 왕복 6 ~ 8시간인데. (…) 이광재의 통역을 맡은 두 명도 이광재가 뉴욕에 간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법원은 평소 박연차가 곽현규를 통해 박연차의 지인에게 여행경비를 자주 지원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곽현규가 다른 사람을 이광재로 착각해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전에 돈을 받자마자 봉투에서 빼 양쪽 상의 주머니에 넣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 OTL

결과적으로 6개의 혐의 중 원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것 세 개는 그대로 무죄로, 유죄로 판단한 것 두 개는 그대로 유죄로, 그리고 유죄로 판정을 내렸던 나머지 한 개의 혐의는 수수액이 반으로 낮춰지는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이를 통해 이광재는 미화 9만 5천여달러 수수가 (정대근 2만 달러 + 박연차 롯데호텔 5만 달러 + 박연차 베트남 2만 5천 달러), 전 보좌관 원 모씨는 정승영에게 받은 2천만원 수수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판단되어 유죄를 선고받았던 것이다. 판결문 말미에 양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이미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3천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부정하게 정치자금을 기부받은 것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다만, 정치자금에 대가성의 흔적이 보이지 않은 것, 그리고 먼저 돈을 요구하지 않은 것, 마지막으로 공직 활동을 애쓴 것 (…) 을 토대로 사정을 참작해 1억 1,417만 1,000원 추징 (미화기 때문에 판결 선고일인 2010년 6월 4일 환율로 1달러당 1,201.80원을 토대로 9만 5천 달러를 계산했다.) + 집행유예 (징역형)를 선고했다. 보좌관 원 모씨에게는 2천만원 추징 + 노역장 유치형을 선고했다.

종합하자면, 계속 인터넷 상에 나돌고 있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이광재 당선자가 돈을 받고 일을 부정하게 한 사실은 없지만, 당시 권한이 많은 상황에서 조심했어야 했고, 따라서 비난 가능성도 높으므로 징역형을 선고한다."고 내린 판결은 판결문과 별 상관이 없는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이다. 물론 앞 부분의 '돈을 받고 일을 부정하게 한 사실은 없지만'을 고등법원에서 대가성의 흔적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견줄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법원은 이광재 전 도지사가 돈을 받은 것은 일부 (위의 혐의 ⓐ, ⓑ, ⓒ)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조심'이라던지 '비난 가능성'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이광재 당선자가 돈을 받고 일을 부정하게 한 사실은 없지만, 당시 권한이 많은 상황에서 조심했어야 했고, 따라서 비난 가능성도 높으므로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전혀 근거 없는 판결 요약이 나오게 된 것인가? 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이광재 당선자 징역형… 도지사 직무정지 불가피 - 2010년 6월 11일, YTN, 신호

문제의 문장이 처음 언급된 것은 바로 항소심 선고가 있던 6월 11일 당일에 보도된 YTN의 뉴스였다. 신 기자가 처음으로 법원의 판결을 전하며 "이광재 당선자가 돈을 받고 일을 부정하게 한 사실은 없지만, 당시 권한이 많은 상황에서 조심했어야 했고, 따라서 비난 가능성도 높으므로" 징역형을 선고한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 표현은 그 날 YTN에서 오후 3시까지 계속 쓰였다! 다행히 그 다음 날 부터 YTN은 그런 뉘앙스로 판결을 보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YTN의 뉴스 대본을 담은 기사는 널리 퍼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결국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판결은 내린 것인지 모른채, 그냥 유력 언론 중 하나인 YTN이 하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누리꾼들이 그런 이유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다고 하니까 그것이 사실로 여겨진 것이다. 더욱 슬픈 것은 이 문장을 높게 내세우던 사람 중에서는 조중동 같은 성향의 매체가 '독자를 호도한다면서' 싫어하는 분이 많았던 것이고. 노파심에 붙이는 말이지만, 나도 조중동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이 글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그리고 그의 전 보좌관 원 모씨가) 최종적으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지 (대법원의 상고 기각 판결은 이 항소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인정하는 판결이니,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토대로 살펴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알아보는 글이기 때문에 이광재가 정말 유죄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음해를 받고 무죄인데 유죄 판결을 받았는지 살펴보지는 않는다. 솔직히 내가 당사자가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다만 이광재가 정말 무죄라는 사실이 밝혀지려면

1) ⓐ에서 정대근, 그리고 수행비서, 운전기사, 의전팀장이 한통속으로 위증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2) ⓑ에서 박연차의 증언이 거짓임을 밝혀내거나, 혹은 옷장 속에 놔둔 돈이 어디로 갔는지를 밝혀내고
3) ⓒ 역시 박연차의 증언과 함께 다른 인물 (한병도 의원, 태광비나 이 모 이사) 가 위증임을 증명하고, 동시에 어떻게 국회의원 두 명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잘 모르는 보좌관에게 5만 달러를 대놓고 건네줄 수 있는 지 증명하고, 마지막으로 돈을 돌려줬다는 원 모 보좌관은 왜 한 시간에 두 곳에 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사실 헤리미온느의 시간 모래시계가 있어서

아무튼, 어떤 글을 보고 믿을 때에는 항상 출처의 신빙성을 생각하는 백투더소스 정신으로 보길 간곡히 비는 바이다. 함부로 믿을 바에는, 그냥 아무 것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니까.

추신.
이 글에서는 전반적으로 처음 오보를 터트린 YTN과 그것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냥 믿어제낀 인민들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지만, 추신을 통해서 법원의 문제를 지적하려 한다. 왜 법원은 사건 판결문 전문을 쉽게 공개하지 않는 것인가? 물론 각 법원 별로 주요 판결의 전문을 공개하는 서비스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수는 무척 제한적이다. 이번에 이광재 사건을 학술 DB의 도움없이 찾으려 했으면 아마 못 찾고 그냥 글을 접었어야 했을 것이다. 내가 본 학술 DB는 일반 사용자가 보려면 만만치 않은 액수의 월정액을 내고 봐야 한다. 계속 법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법과 큰 관계가 없는 사람이 판례를 찾으려고 월정액제에 가입한다? 그게 될리가 있나. 아니면 최신 판례집을 이잡듯이 검색해서 겨우 찾거나, 서점에서 사거나, 정 안되면 법조계 관계자에게 찾아가 판례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방법도 있겠지. 하지만 가장 쉬운 것은, 그냥 공유하는 것이다. 정보는 제한되면 제한되어 있을 수록 이번 글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유언비어만 생산하는 법이다. 제발, 법과 관계없는 많은 사람들도 판결문 전문을 보고 싶으면 쉽게 볼 수 있게 좀 만들었으면 한다. 만날 인민들이 법원을 오해한다고 불평하기 전에, 왜 유언비어가 퍼지는 지에서도 생각을 해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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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다 2010/10/25 17:35

사회 현상을 보는 방법 (Thanks to '안녕 저능아')

교지 마감과 과제 준비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잠시 블로그 관리창에 들어갔는데, 댓글이 하나 올라와있더군요. 워낙 최근에 관리를 잘 하지 않는데다가, 하필 그것도 오래된 댓글에 있어 누구지- 했었는데. 이런 댓글이었습니다.

▶ 2009년 6월 23일 게재한 「이란 민병대와 애국기동단의 차이는 무엇인가?」에 올라온 '안녕 저능아' 님의 2010년 10월 25일 댓글

 

굳이 욕설과 비하가 담긴 댓글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일단 간접적으로 연결고리를 걸었습니다. 내용은 매우 간단해요. 2008년 촛불 집회를 하는 사람들 일부도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는데 그건 괜찮은 거나고. 댓글을 보면서 심히 답답했습니다. 마치 형제 A와 B가 있는데, A가 B 간식을 뺐었어요. 당연히 화가 난 B가 A한테 욕을 했는데, 그래서 A가 B를 한 대 쳐 울린 상황에서 엄마가 A를 혼내는데 A가 「B도 나한테 욕했단 말이야!」라고 대꾸하는 상황을 보는 것 같았죠.

 

현재 사회학을 배워서 좀 깐깐하게 나온 것도 있지만;;, 실제로도 신문,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서 사건을 접할 때 어느 한 쪽에 책임을 묻는 경향이 좀 많습니다. 물론 물을 것은 물어야 하지만, 최소한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 묻는 것은 그냥 자폭에 가깝습니다. 그런 점에서 매체의 '분석 / 심화적' 역할이 중요하고, 또한 수용자의 매체 읽기 (='미디어 리터러시') 도 중요한 법이죠. 그런 푸념에서 댓글을 단 것을, 한 번 많은 사람이 보라는 마음에서 다시 포스팅합니다. 네, 결국은 오랜만에 '사회를 보다'에 포스팅을 올렸는데 결국 댓글 붙여 먹기 + 서론 붙이기로 귀결;; 뭐, 그래도 서론이 충분히 기니까 괜찮을 거야. 시간이 되면, 자세한 이야기를 추가 포스팅하기로 하죠. 마지막으로, 이 포스팅을 낳게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안녕 저능아' 님에게 감사를. (일부 굵게한 곳은 강조를 위해서 포스팅에서 임의로 설정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 저능아' 님.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 포스팅을 해서 좀 불편하셨나 봅니다. 올린 지 꽤 되는 포스팅이었는데.

 

각설하고,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군요. 「그러니까 애국기동단이 폭력을 써도 괜찮은 건가요?」 이 글의 초점은 애국기동단의 폭력 행위에 대한 것이었고, 글을 쓸 당시에 일어났던 이란 정부와 민병대 합작 시위 진압과 비슷한 측면을 조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와 저능아' 님의 말대로, 시위에는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전 세계 시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인 프랑스 대혁명은 정말 장난 아니었죠. 심지어 거기서는 시민들이 군대 지휘자의 목을 베는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과격한 거죠. 자, 이제 여기서 우리는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어찌되었든 과격 폭력 사태가 벌어졌으니 시위는 XXX한 개쓰레기인 겁니까? 아니면 무조건 칭송하고 쭈쭈쭈- 하면서 기뻐해야 할까요.

 

둘 다 아니죠. 시위의 전체적 성격을 비추면서, 한 편으로는 그런 불편한 점이 있던 것을 지적하는 것이 전 사건을 잘, 사회(학)적으로 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빛이 비추면 항상 밝거나, 또는 그림자만 있지 않듯이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란 시위도 아직 이상주의 · 서구 중심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이건 굳이 이란 뿐만이 아니라 미얀마도 비슷하긴 합니다만….) 애국기동단의 활동에 대한 비판 중에서 「노친네는 집에 가서 죽을 준비나 하셔!」같은 소리는 그냥 개소리죠.

 

결론은 사건을 볼 때 1) 문제점이 있으면 그것도 짚고 넘어가야 했지만 그게 사건의 전부는 아니며 2) 한 쪽이 나쁜 짓을 했다고 나도 그 짓거리를 하는 것은 얼간이다. 입니다. 그 점 생각하시고, 사회 현상들을 살폈으면 하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사회를 보다 2010/09/12 02:23

다른 단체가 시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문제

- <한양대 학사지원노조의 투쟁이라…, 2010년 9월 9일, 천지화랑> 中 '로미' 님이 단 댓글

 

8·15대통합민족회 (개인적으로 처음 듣는 단체이고, 이런 류의 단체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여성민우회, 한국진보연대. 분명 한양대학교와는 별 연관이 없고, 좀 더 넓게 봐서 노동 운동의 영역에도 겹치는 부분이 크게 많지는 않습니다. 사실 '로미' 님의 논지도 그렇게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시위나 집회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주도하는 것이 방향 설정이나 문제 해결에 있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시위나 집회가 '당사자 운동'으로만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규모적인 문제나, 문제의 공론화 여부에 있어 다른 단체와 연대 / 협력해서 진행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유로 각종 단체들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당사자 운동'으로만 모든 집회가 이루어졌다면, 집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겠죠. 68운동을 아예 시작조차 못했을 겁니다. 아니, 한 가지 물을게요. 도대체 68운동의 '당사자'는 누굽니까? 처음 시위를 시작한 대학생들입니까? 아니면 당시 드골 정권에 염증을 느끼던 사람들? 물론 '당사자'의 정의야 단체나 개인적으로 일정한 범위를 설정할 수 있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척을 두는 것은- 연대 / 연합 / 협력의 기본틀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회를 보다 2010/07/01 03:17

효율성 뒤의 간과 : 운전면허 시험, 그리고 최저임금

어제 오후 4시 40분 부로 운전면허시험의 제 1단계, 학과시험 (필기) 을 통과했다. 100점 만점에 95점 맞았다. 저번에 들었던 운전학원 강사의 말을 충실하게 지킨 덕분이었다. "필기 시험은 쉬운 죽 먹기입니다. 그거 탈락하는 사람은 바보에요. 그저 최저속도 최고속도하고 좌회전 우회전, 일시정지 주차 정차 여부만 외우면 끝입니다." 정말 끝났다. 큼지막하게 전용 창구가 마련된 곳에서 납부필증을 끊어 원서에 붙이고 정말 별거 없는 - 앉았다 일어나 보세요, 손 쥐었다 펴보세요. 그리고 시력 검사는 대충, 그리고 색맹 색약 검사로 마무리한 - 신체검사, PC가 잔뜩 놓여있는 시험실 관리관에게 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10분 뒤에 시험을 보았고, 10분 만에 시험을 전부 풀었다. 그렇게 나는 긴 시간 들이지 않고 효율적으로 시험을 마쳤다.

 

원래 '물시험'이라 불리던 운전면허시험이지만 운전은 사람의 목숨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중요한 행위이다. 그런 운전면허시험이 올해 들어 더 쉬어졌다. 시험장에 배치된 리플렛을 보니 "쉽고 저렴하게 면허를 취득할 수 있고 (중략) 국민편의 및 교통안전에 기여하고자" 쉽게 바꿨다고 한다. 전자의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시민으로서는 큰 메리트가 될 수 있으니 (종전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싸게 할 수는 없었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쳐도 후자의 이유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면허가 쉬어져서 국민 편의가 늘고 교통 안전이 잘 지켜지는 것인가? 편의가 전자의 이유와 그나마 연관되기는 하지만 교통 안전은 전혀 아니다. 대충 휙휙휙 정답같아 보이는 것을 고르고, 강사님이 하라는 대로 핸들 휙휙 돌리고, 페달 꽉꽉 밟고, 기어 확확 움직인 뒤 도로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더 줄이는게 어째서 교통 안전에 기여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조치에 불만있는 사람은 왠지 내 주위에는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어짜피 살면서 운전할 일이 생길 텐데, 쉽고 싸게 따면 얼마나 좋냐는 의견이 다수다. 아, 학원은 수업료가 싸지니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요즘 학원 광고를 보니 간소화로 인해 가격 인하된 것을 자기들이 내린 것처럼 생색을 낸다. 어쩌면 학생이 더 많이 왔으니 손해는 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닥치고 효율인 것이다. 효율의 혜택 (!?) 을 받는 사람이 뒤에 어떤 결과를 받을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아아! 그저 빠르면 장땡이다.

 

누군가는 효율적인 것이 한정된 자원 (시간, 자본 등) 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일컬으니 좋은 단어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분명 고효율적인 것은 보통의 것보다 최상의 결과를 쉽게 낼 수 있긴 하다. 문제는 효율적인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거. 예를 들어서, 최근 핫 이슈로 부상한 최저임금을 살펴보자.

 

▶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하향 조정해달라" 건의 - 대전일보, 2008년 4월 1일, 노형일 기자

 

연결고리를 건 기사는 2010년 기사는 아니나, 대다수의 기업 운영진 (=사용자) 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 판단되어 고리를 걸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재검토"하기는 해야 할텐데, "국익 차원에서"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그런 관점으로만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기업이 국가의 부를 지탱하니 모든 정책은 기업 위주로 가야하고, 기업이 돈을 잘 벌려면 정교하고 효율적인 계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제학 저서에서 노동조합을 싫어하는 것이기도 하고. 효율적인 부의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니까.) 최저임금은 열심히 일하든, 피해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그럭저럭 일하든 모두에게 한 시간 당 일정한 요금 이상의 인건비를 지급해야 한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삭감하거나 인상률을 낮춰야 한다는 결론을 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시민 대부분은 노동자 계층에 속한다. (전문직 / 고임금직 노동자는 일단 제외하자.) …어라? 이것이 바로 자기 희생이라는 것인가. 효율적인 부의 창출을 위해 우선 내 임금의 삭감 가능성을 늘려야 하는 괴랄한 일이 생기게 되었다. 하긴, 최저 임금 잘 지키는 사용자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운전 면허 시험 간소화도 그런 차원으로 볼 수 있겠다. 조금만 운전을 배우고 이론적 지식을 예전보다 덜 갖추어도 면허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분명 시간과 돈은 예전에 비해 적게 들었다. 하지만 운전은 단순히 면허만 있다고 끝이 아니라지? 운전 중에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심지어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까지 벌어진다. 시민들의 운전 자격을 관리하는 국가는 제 실력을 갖추지 않은 채 면허를 취득한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는 것을 거의 방치하고 있다. 아니, 간소화를 통해 불편함을 겪는 것을 부치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실전 운전을 배우기 위해 운전 면허를 딴 뒤에도 가족이나 친구, 또는 학원에 다시 다녀 운전을 배운다. 간소화 전의 추가 비용과 후의 추가 비용, 어느 것이 더 많이 들까? -이런 점까지 같이 고려하면 간소화는 공식적인 비용은 줄었으나 비공식적인 비용을 늘릴 여지가 큰 조치라고 여길 수 있다.

 

이제 나는 내일부터 기능시험 합격을 위해 하루 세 시간 씩 용인까지 셔틀 버스를 타고 내려가 자동차를 만지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전체적인 시험 구성이 간소화되는 바람에 나는 예전보다 신경을 써야 할 사항이 줄어든 채로 시험에 맞이한다. 효율이 세계 대부분의 종교가 된 상황에서, 안전의 첨병이 아닌 효율의 첨병이 되어버린 운전면허시험을 치른다. 뭔가 괴이하다.

사회를 보다 2010/04/18 18:58

흔한 것은 곧 유해하지 않은 것일까? : 삼성반도체 기사에 대한 문제 제기를 보고

▶ 나는 삼성이 싫다. - 2010년 4월 18일, 我幸行

 

이글루스에 흥미로운 포스팅이 올라와서 찬찬히 읽었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계속되는 사망 소식으로 인해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대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더욱 집중을 하면서 읽었다. 글쓴이는 한겨레의 한 기사를 꺼내 들면서 (▶ "백혈병 발병, 삼성 해명은 거짓말" - 2010년 4월 15일, 한겨레, 전종휘 기자) 다음의 부분을 지적한다. (굵게 강조한 부분은 지적한 이가 강조한 부분입니다.)

 

김씨는 맹독성 화학약품을 직원들이 직접 접촉할 일이 없다는 삼성전자 쪽의 주장에 대해서도 “회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소프로필알코올 같은 독성 물질을 엔지니어들이 ‘스테이션’이라고 부르는 작업대 세정용으로 수시로 썼다고 밝혔다. 또 삼성전자 기흥공장이 1998년께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을 받았을 때처럼 외부인이 방문할 경우에는 관련 독성 물질을 모두 감춰 놓기도 했다고 전했다.


글쓴이는 이소프로필알코올(아이소프로판올)이 손소독제나 화장품 등에 쓰이는 흔한 물질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겨레의 기사가 잘못 되었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글쓴이의 말에 수긍하면서 한겨레가 실수를 저질렀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반올림' (삼성반도체 노동자에 대한 건강 및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 http://cafe.daum.net/samsunglabor) 에서는 이소프로필알코올이 유해하다고 지적했을까? 그것이 궁금해서 검색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은 뉴스를 만날 수 있었다.

 

(수원지방)노동사무소는 최근 '앉은뱅이병' 발병의 원인이 된 노말헥산(n-Hexane) 뿐 아니라 트리클로로에틸렌(TCE), 이소프로필알코올(IPA) 등 법정관리대상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관내 사업장 578곳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 실태를 점검하게 된다.

- 경기지역 유해물질 취급사업장 특별점검, 2005년 1월 21일, 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어라? 분명히 글쓴이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이스프로필알코올(이하 'IPA')가 수원지방노동사무소 측에서는 법정관리대상 유해물질에 있다고 한다. 각 지방의 노동사무소는 노동부 관할에 놓여있다. 그래서 노동부 쪽 자료를 뒤져보았더니, 역시나 IPA의 유해성에 대한 정보와 관련 법 조항 및 지침들이 나온다.

 

일련번호 449. 이소프로필 알콜 - 노출기준 TWA (시간가중 평균노출기준, 필자 주) 200ppm or 420mg/㎥, STEL (단시간 노출기준, 필자 주) 400ppm or 980mg/㎥

 

- 산업안전보건법 제 39조 제 2항에 따른 화학 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 기준 (노동부)

 

이소프로필 알콜에 의한 임상증상 : 전신적 증상(현기증, 운동실조, 두통, 혼란, 의식혼탁, 혼수), 위장관계 증상(위장관염, 구토, 설사, 토혈 등), 심혈관계 증상(저혈압, 서맥, 순환계 허탈), 저체온증을 동반한 혼수상태, 호흡억제, 지연성 증상(흡인성 폐렴, 간 및 신장 기능 장애 - 가볍거나 일시적이지만, 심각한 장애가 올 수도 있음. - )

 

- 화학물질 노출기준 개정 연구 : 이소프로필 알코올,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2005년 12월 (노동부의 「화학물질에 의한 근로자 건강장해예방 연구용역사업」에 의한 연구)

 

여기서 이런 문제 제기가 나올 수 있겠다. "부산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IPA는 백혈병과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요?" 질문 한 번 잘했다. 제시한 내용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아직 IPA는 백혈병과 밀접한 인과 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판례가 존재한다.

 

2. 손해배상 책임의 발생 여부

 

(중략) 다. (중략) 지속적으로 노출된 중금속인 납, 유기용제인 IPA, 1,1,1-TCE 등이 망인의 체질 등 다른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망인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발병케 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을 촉진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함이 경험칙에 부합하므로, 이 사건 사망과 피고의 보호의무 위반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① 비록 중금속인 납, 유기용제인 IPA, 1,1,1-TCE에 노출된 경우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발병시킬 수 있다는 점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으나, 중금속인 납, 유기용제인 IPA, 1,1,1-TCE 등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임은 분명하고, 이러한 물질들에 의하여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점.

 

② 망인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망인이 피고 회사에 근무하면서 중금속인 납이나 유기용제인 IPA, 1,1,1-TCE 등에 노출되었다는 원인 이외의 다른 원인에 의하여 발병하였다고 볼 뚜렷한 자료도 없는 점. (후략)

 

- 사용자는 피용자가 노무제공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므로 이를 위반한 때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한 사례, 2009-7-7 선고 2008가합28239 판결 (강조 표시는 필자의 임의적인 표시입니다.)

 

위에 제시한 사례는 모 보건대학교에 재학하다가 2000년 6월부터 2002년 4월까지 방위산업체에 병역 특례 산업 기능 요원으로 입사하여 납땜 부서에서 PCB 기판의 부품을 계측기로 측정하여 불량 여부를 검사하고, 불량품이 발견되면 불량 부분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납땜 및 세척을 하는 일을 한 사람이 근무 기간이 끝나갈 무렵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한 달 후 사망한 사건에 대한 판결 내역이다. 재판부 측에서는 세척에 사용한 IPA 등의 유기 용제가 직접적인 인과는 없으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다른 요인과 함께 작용해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일어나게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IPA와 백혈병 사이에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좀 더 명확한 조사가 나와야 인과 관계를 확실하게 규명할 수 있겠지만.

 

 

 

이제 다시 한 번 본문을 상기해보자. 글쓴이는 단순한 검색을 통해 IPA가 손소독제 등에 흔하게 쓰이는 물질인데, 어째 일반 시민들은 백혈병이 걸리지 않느냐- 면서 기사를 비난했다. 물론 글쓴이의 말대로 IPA는 세정 효과가 탁월해 신종 인플루엔자가 한창 유행할 때 여기 저기에서 배포하던 손소독제의 주재료로 쓰인다. 하지만 그것은 주로 젤 타입이고, 인체에 영향을 최소한으로 끼치도록 함량을 낮춰서 제조한다. IPA를 더 광범위하게 접촉할 세척 공정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경우 IPA가 함유된 화장품 및 손소독제를 바르는 사람보다 IPA에 많이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부산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반도체 세정 및 세척 공정의 IPA 노출 수치는 다른 공정에 비해 무척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 사측에서도 IPA 관리에 철저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최상단에 언급된 한겨레 기사에 나온 인터뷰에 따르면 "재직 때 유기용제와 가스 누출 사고가 비일비재했다." "많을 때는 한 달에 두세 차례 사고가 나기도 했다." "워낙 마감에 쫓기다 보니 누출 사고 때 감지 장치가 울리면 그냥 끄고 작업을 진행하는 등 안전기준을 안 지키고 작업을 진행한 적이 많았다." "회사 중간관리자들은 그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묵인했다." 는 주장이 있다. 이 두 주장의 간극을 잘 살피면서 철저하게 사실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쓰인 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절대 '흔함'과 '안전함'을 같은 단어로 사용할 수는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950 ~ 1960년대에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입덧 방지제로 팔던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이 있었다. 각종 동물 실험에서 별다른 부작용을 찾을 수 없었기에 안심하고 빈번하게 사용했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났다. 1960 ~ 1961년 사이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산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한 것이다. 후에 임상 실험 자료가 엉성하고, 정부 기관의 안이한 관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이미 유럽 지역에서 탈리도마이드로 인한 기형아는 8천명이 넘어 있었다. 탈리도마이드의 사례는 극단적이나, 흔하게 사용되는 물질이라고 해서 문제가 아예 없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위험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고 특히 직접적으로 농도가 짙은 물질을 만지는 노동자의 경우 농도가 낮은 물질을 접하는 사람보다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세밀한 조사와 탐구없이 '흔하다' 는 이유로 문제 제기를 폄훼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임을 다시 한 번 상기했으면 한다.

 

 

추신. 제 졸문에 세부적으로 지적해주신 이공계 전공자로 추정되는 '지나가다' 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사회를 보다 2010/03/12 16:08

노회찬 이전에 조선일보를 경계하라

얼마 전 누리꾼들 사이에 뜨거운 분쟁이 벌어졌다. 지난 5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선일보 창간 90주년 기념식' (이하 기념식) 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이 초대를 받고 참석한 것이 분쟁의 발단이었다. 자신이 조선일보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았으면서 어떻게 조선일보에서 연 기념식에 갈 수 있느냐, 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얼마 후 노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해명을 했지만 (http://chanblog.kr/472) , 작게 나마 노 대표에 대한 비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노 대표와 김 대변인의 기념식 참석에 대한 해석은 개인마다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누군가는 조선일보의 해악을 언급하면서 노 대표의 '변절'을 경고할 수 있는 법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치를 하면서 적을 완전히 배척할 수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 정당의 대표와 대변인이 행사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인가? 오히려 경계하면서 지켜봐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이다.

 

여기서 일단 조선일보가 기념식에 초대한 인사들의 명단을 살펴보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2&oid=023&aid=0002130078) 정계 인사로서는 한나라당부터 진보신당에 이르기까지,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사회당을 제외한 유력 인사가 대부분 참석했다. 관계 인사로는 현 정부 유력 인사가 거의 다 참석했고, 경제계 · 법조계 · 군경 · 교육계 · 의료계 · 체육계 · 언론계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사회 단체 인사에서는 현 정부와 입장차를 달리하는 단체 (흥사단 · 광복회) 인사가, 문화 · 예술계에서는 현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발간했던 문학동네 · 까치출판사의 대표가 참석했다. 단지 언론계 인사에서 한겨레 · 경향신문 · 오마이뉴스 같은 진보 · 개혁적 성향의 매체가 없었고, 문화 · 예술계 인사에서 안병훈 기파랑 대표나 조희문 전 영진위 위원장이 참석한 것이 '성향차'를 보인 사례이다. 박정자 · 소녀시대 · 손숙 · 안숙선 · 안성기 · 앙드레 김 · 윤제균 · 이미자 · 임권택 · 최불함 · 하지원 등의 배우, 연예인, 가수가 참석한 것도 눈에 보인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 전문적인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초청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웬만한 단체가 아니고서는 수백명이 이르는, 그것도 각자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선일보는 서울 일급 호텔의 연회장을 빌려가면서까지 사회 전영역의 유력 인사를 모셨다. 조선일보의 재력이 강한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조선일보가 사회 전 영역에서 가지는 권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단순히 조선일보를 진보, 보수의 문제로 나눌 수는 없다. 조선일보의 정체성을 최대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는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기회주의 언론이자, 역사적 · 재력 등의 요인으로 한국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신문으로 말할 수 있겠다. 막대한 재력은 기사의 질에도 영향을 미쳐, 특별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거기에 '한국 1위'라는 수식어까지 겹치니 혹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는 보수 언론이라서 1등을 차지 한 것이 아니다. 예전부터 쌓아온 권위와 영향력이 미래의 독자를 재생산한 결과이다. 조선일보의 사회적 지위는 언론 그 이상의 지위를 차지했다.

 

이런 막막한 사회적 현실을 눈 앞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회 전 분야에 영향력을 미치는 조선일보의 권력보다 당 대표의 참석에 대한 문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조선일보가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진 것을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는 것인가? 문화 · 미디어 평론가 김낙호는 트위터에서 "(조선일보의) 무시무시한 사회적 입지와 권력 행사 방식에 대한 무관심이 더 실망스럽다." 고 평을 했다. (http://capcold.net/blog/5631) 진정으로 조선일보에 대해서 문제 의식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끔찍할 정도로 전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조선일보의 권력에 대해 일침을 가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당연시된 절대적 언론 권력이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http://www.1318virus.net) 기사로 썼다가 편집장에게 아웃당한 (…) 기사. 문제가 된 이유는 밝힐 수가 없지만, 하여튼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확실히 내가 봐도 못 썼기는 했다. 하긴, 언제는 잘 썼나. 운이 좋아서 된 것들 뿐이었지. 이미 이슈 유효 기간도 지난 마당에 다시 수정하기도 그래서 결국 블로그로 공개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리꾼들에게도 아웃당하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못 쓴 글입니다. 휴우.

렌즈 떼고 판단하자 : 고려대 김예슬 씨에 대한 일부 논란에 대해

▶ 상품가치 들통났다, 긴장해라 대학들아 - 오마이뉴스, 윤천영 기자, 2010년 3월 11일

 

대학생이 되면서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게 많아져서 (정경대학 집행부 문화국 일이나, 경희대 교지 「고황」수습 편집부원 일이나, 그린비 쿵푸스 아이돌 - 이건 gPress의 연장선상에 가깝지만;;; 아무튼 - 이나.) 계속 터지는 몇몇 일에 대해서 트위터를 통해 짧게만 남길 뿐, 제대로 된 포스팅을 쓰지 못 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가만히 있기에는 좀 곤란하다, 는 생각이 들어서 학생회실 컴퓨터를 이용해서 또 한 개의 미숙한 포스팅을 남긴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가 게시판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지금의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과 결합한 '자격증 장사 브로커'로 전락해 학생들을 '적자 세대'로 만들고 있으며 나(즉, 이 글을 쓴 김예슬 씨)는 이런 대학을 거부하고 자퇴를 선택한다, 의 내용이다.

 

그런데 고려대학교 학생 커뮤니티 사이트 「고파스」와 가입형 블로그 사이트 「이글루스」 등을 중심으로 김예슬 씨에 대한 의혹을 남겼다. 주축이 되는 의혹은 두 가지. 첫째, 김예슬 씨는 운동권이었고 '자퇴 선언' 역시 운동권으로서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행동이다. 둘째, 학생처 담당자에게 '재입학이 가능하냐'고 물었었다. 주로 이 두 가지 의혹을 근거로 김예슬 씨를 맹공하고 있다. 근데 한 가지 좀 물어 보자.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면서 왜 그걸 근거로 쓰신데요?

 

방금 그 두 가지 의혹 모두 근거는 커녕 정황에 대한 설명조차 부족한, 한 마디로 음모론의 가치 외에는 영양가가 없는 말들이다. 오로지 김예슬 씨가 '운동권'이고 대학교 내에 대자보를 붙였다는 것만 확실할 뿐이다. 김예슬 씨의 행동이 모두가 이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가 의견이 다르니까. 한 글자의 차이도 없이 전부 의견이 같다면 그것도 문제인 것이고. 하지만- 비판을 하려면 좀 제대로 된 근거를 갖추고 하자. 어찌된게 대부분의 글이 하나 같이 '김예슬은 좌빨친북 운동권 학생이다 → 당연히 (?) 운동권 홍보를 노리고 이번 대자보를 붙였을 것이다 → 재입학 가능하냐고 물어 봤다네? 이거 노린 거 확실하구만!' 의 전개로 진행되는 걸까? 사실 클론 이 두 가지의 상황을 가지고서 제대로 된 비판이 가능한 것일까. 사회 현상 분석을 할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음모론과 편견을 기반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음모론과 편견의 렌즈는 모든 사건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근거를 갖추지 않은 주장일지라도 사실이라고 철썩같이 믿게 되는 것이고, 기기묘묘한 플로우 차트가 판을 친다. 이건 다음 「아고라」 등지에 주로 서식하는 '반2MB' 세력도 마찬가지. 나도 2MB 싫어하고, 별로 하는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큰 실수가 아닌) 단순한 실수나 사소한 우연의 일치를 가지고서 '이건 다 2MB 때문이다!' 라고 하는 것도, 엄청나게 웃긴 짓이다. 나는 '아고라 반2MB' 세력과 김예슬 씨의 행동을 '홍보를 위해서 한 것이다' 라고 보는 세력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지금 당장 눈 앞을, 모니터 앞을, 장식하고 있는 탁한 렌즈를 벗어 던졌으면 좋겠다. 충분한 토대 위에 세워진 근거와 논리적인 명확함을 갖춘 주장은 어떤 입장이라도 환영받아야 한다. 그것이 찬이든, 반이든. 하지만 근거도 부실하고 편견에 기반을 둔 주장들은 까여야 마땅하다. 깔려면, 제대로 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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