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이미지 소스는 네이버 옛날 기사 아카이브에 있는 기사 중 '만화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 메인 이미지. 웃기지도 않는다.
며칠 전 만화 칼럼니스트를 하고 있는 지인이 겪은 일이다. 어떤 사람과 함께 앉아 말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만화를 갖고도 칼럼 같은 걸 쓸 수 있다니 놀랐네요. 만화는 저급 문화라서 그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만화가 정말 저급 문화인지는 둘째치고, 비평의 대상에 차등을 두는 것에서 기가 막혔다.
이런 인식은 이미 주변에 흔하게 펴져 있다. 나 또한 앞서 지인이 겪은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만화로 비평문을 쓸 수 있냐"는 소리를 여럿 들어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볍게 "좋아서 하는 일인데"라고 받아 넘기지만 솔직히 기분은 매우 착잡했다. 그런 분들의 인식대로라면 클래식이나 미술같은 속히 '고급스럽다'고 일컫는 분야에만 비평이 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영화나 TV 드라마 비평을 보면 깜짝 놀라 혼절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비평을 할 수 있는 문화의 대상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정해져 있지 않다. 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에 대해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그 의견을 정제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한 것이 리뷰 · 비평 · 평론이다. 오히려 문화는 적절한 비평을 통해 발전한다. 대표적으로 영화계의 사례를 들 수 있다. 90년대 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소개 기사나 배우의 인기를 주로 소개하던 영화 기사는 씨네필(cinephile, 영화광을 일컫는 영어 단어)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씨네21』과 『KINO』(키노)의 등장으로 일대 변혁을 맞았다. 영화에 대한 심도있는 비평과 담론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단순하게 흥행만을 노린 영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서서히 평론가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가 점차 쏟아져 나왔고 결국 한국 영화계는 2003년, 르네상스를 맞게 되었다. 단순한 유희거리로 치부받던 영화는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만화도, 대중 음악도, 인터넷 문화도 적절한 비평이 공존해야지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다. 단순히 보도 자료에 의존하는 홍보성 기사, 편견에 사로잡혀 무작정 까고 보는 비난성 기사가 계속 쏟아져 나올 수록 그 분야는 점점 생기를 잃는다. 칭찬과 비판이 호응해 콘텐츠 제작자와 수용자가 성찰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즉, 비평은 문화에 있어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화나 대중 음악 등이 평론의 가치를 인정받고 발전한데 비해 만화의 평론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자동차 몇 만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만화영화 하나를 수출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립서비스를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만화를 '불량하다'고 비하하는 이중 잣대는 이런 상황에 큰 영향을 미쳤다. 90년대 초중반에 한참 만화계가 성장 구도를 달리고 있을때 이곳저곳에서 만화 평론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한국만화평론가협회를 결성했지만 청소년보호법 사태 등으로 인해 만화에 대한 시선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곧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었다. 활발했던 평론이 한풀 꺽이면서 동시에 만화에 대한 이슈도 인기를 상실하고 말았다. 신문과 잡지에서 만화 리뷰는 커녕 기사 하나 찾기 힘든 상황이다. 2010년 현재 만화 · 소년 · 아동 대상 매체를 제외하고 정기적으로 만화 리뷰 · 평론을 게재하는 매체는 본지를 포함해 <기획회의> · <씨네21> · <전자신문> 등 채 열 곳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만화를 중심으로 한 '가벼운' 문화 웹진 <컬쳐밤>(CultureBomb)이 오는 3월 2일 창간을 앞두고 있을 뿐이다.
모든 문화는 서로 급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유한 성격을 지닌 만큼 각각의 성격을 콕 집어내어 분석할 수 있는 좋은 평론이 당연히 필요하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문화에 억지로 급수를 매기고 평론을 하찮게 취급하는 사람은 계속 나올 것이다. 개인의 행동을 함부로 방해할 수 없지만, 그 행동이 몰상식한 행동이라는 사실은 알고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 2010년 2월 22일,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용으로 쓴 글. 개인적으로 앞서 언급한 일을 글로써 보았을 때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분이 그 일에 대해 썼던 글로 후기를 대신하고자 한다.
저런 이들 앞에서 '만화가 저급문화라니!'라며 화를 내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에겐 SKY가 아니면 3류 대학인 게 '진리'고, 어떤 이들에겐 클래식이 아닌 음악은 비천한 게 '진리'죠. 다만 그러한 '생각' 자체가 얕은 것 또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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