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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 그래, 이런 걸 기다렸다!

ⓒ DNA 프로덕션 · 시월네트워크 · CJ창업투자 · CJ엔터테인먼트 · 북21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감독 | 윤영기 기획 | 박순홍 이채관 기획프로듀서 | 장성연

목소리 출연 | 정선혜 은정 박신희 최한 손종환 안장혁 엄상현 이장원

제작 | DNA프로덕션 공동제작 | 시월네트워크 제공 | CJ창업투자 공동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북21

배급 | CJ엔터테인먼트 개봉 | 8월 19일 등급 | 심의 중

 

 

아울북 (북21의 임프린트) 에서 발간 중인 만화 시리즈「마법천자문」은 2003년에 1권이 나와 전국 아이들의 눈길을 훔치고 덧붙여 학부모의 지갑까지 털어가는 작품이다. 표면적인 주제인 '한자 학습'에 탄탄한 스토리가 가세하면서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가나출판사), 「코믹 메이플 스토리」(서울문화사), 「Why? 시리즈」(예림당) 과 함께 총 판매부수 1,000만부를 돌파한 이 시대 가장 잘 나가는 만화가 되었다. 한국 만화 판매의 현실 상 소위 '학습 만화'에 돈이 많이 쏠린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서유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캐릭터와 독자의 관심을 끌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없었더라면 이런 기적적인 기록은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연히 북21이 이런 대박을 가만 놔둘리가 없었고, 여러 가지 스핀오프 시리즈를 내놓거나 플래시 비디오 북, 뮤지컬, 닌텐도 DS용 게임을 만드는 등 여기 저기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괄목할 만큼의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이번 달 19일, 「마법천자문」의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이 선을 보인다. (이미 2006년에 '비디오 북' 컨셉으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나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존 만화의 컷을 약간 움직이게 한 다음 더빙한 것이므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거리가 멀다.)

 

장점은 '86분', 단점도 '86분'

 

극장판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이하 극장판) 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장점인 동시에 한계인 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원작의 1 ~ 6권에 해당하는 분량을 빠른 속도로 담아낸다. 원작의 큰 틀 (캐릭터, 기본 설정) 은 준수하지만 86분의 상영 시간에 맞춘 빠른 전개와 더욱 강렬한 내용 전달을 위해 일부 설정에는 변화를 주거나 삭제 /  축약하는 등 과감하게 원작에 손을 대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본 원작의 캐릭터가 옥동자이다. 캐릭터가 완전히 들려 나갔으니. 두 번째는 콩도사, 세 번째는 여의필. 이 둘은 플롯이 매우 많이 삭제되었고, 콩도사는 배역명도 스탭롤에 없다.) 약간 모험적인 시도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DNA프로덕션의 시도는 매우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원작과는 다른 전개를 풀어 나가면서도 나름대로의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원작에는 엑스트라급 캐릭터였던 돈돈 (박신희 역)에게 많은 비중을 선사해 기존 캐릭터 옥동자가 빠진 위치를 메우는 동시에 오공 (정선혜 역) - 삼장 (은정 역) 의 관계에 끼어들어 흥미로운 삼각 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에 더 큰 극장판 만의 특이 요소를 주는 것이 삼장의 캐릭터 변화이다. 원작의 삼장이 여성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극장판의 삼장은 노력파의 모습을 강조하는 동시에 자기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성격을 뒤튼다. 중반에 벌어지는 오공의 '파워업 이벤트' 에서 삼장이 오공의 성장에 초조하고, 긴장하는 모습은 원작엔 없었던 것이다. 기존 캐릭터의 이미지에 지나치게 빠져든 팬에게는 아쉬운 소식일지도 모르나, 과도하게 원작에 충실해 극의 흐름을 진부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은 조치이다. 오히려- 극장판의 모습에 호감을 가질 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86분의 시간이 최대한 모든 사건을 넣으려다 보니 좀 더 길게 끌고 나가야 할 장면을 너무 짧게 넘기고 만다. 극장판의 주된 관객층이 될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삼장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 장면이나 후반부의 중요 '아이템'인 여의필에 대한 씬은 좀 더 플롯의 길이를 늘이는 편이 스토리의 원활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86분'은 스피디한 전개의 힘인 동시에, 일부 장면의 스토리텔링에 해를 주는 아쉬운 걸림돌인 셈이다.

 

단점을 상쇄하는 작화와 디자인, 스토리텔링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극장판은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2D 캐릭터에 2D에 일부 3D를 조합한 배경을 사용하는 형식으로 촬영되었는데, 3D가 2D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한 장의 그림을 만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2D + 3D 기법의 애니메이션이 관건이 '3D 오브젝트 + 배경이 2D에 조화롭게 배치되는 것' 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대단한 성과를 얻은 셈이다. '매의 눈'으로 극장판을 보지 않는 이상, 3D는 눈에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극장판용으로 새롭게 그려진 캐릭터 디자인도 훌륭하다. 강원영 작화 감독이 보도 자료에 "이전에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캐릭터 디자인" 이라고 밝혔듯이, 극장판의 디자인은 원작의 동글동글한 분위기에서는 크게 벗어나있다. 그러나 각 캐릭터의 성격이 잘 드러나도록 재구축되었다. 이런 변화를 통해 많은 이득을 본 캐릭터가 혼세마왕 (최한 역) 이다. 애당초 처음 극장판의 포스터 / 일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로 인해 "나의 혼세마왕을 돌려줘-!" 라는 절규의 댓글이 올라왔을 정도로 큰 논란이 일었지만, 작 중에서는 행동 하나 하나마다 분위기가 느껴지는 연출에 성우 최한 특유의 카리스마 연기가 조합되면서 원작에 버금가는 카리스마를 만들어 내었다. 기본적인 작화면에서도「고스트 메신저」의 스튜디오 애니멀, 「스피어즈」「나롱이 시리즈」의 스튜디오 카브가 참여해 시원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영빈과 양광섭이 작업한 경쾌한 O.S.T.도 작화와 배가되어 뛰어난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앞서 한정된 상영 시간 내 다량의 스토리 전달을 위해 일정 부분의 스토리텔링이 희생되었다고 평했으나, 큰 틀에서의 스토리텔링이 희생된 부분을 메꾼다. 천방지축 방약무인이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자와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자 간에 발생하는 미묘한 각. 그리고 이 둘을 메꾸는 자. 각각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을 지닌 캐릭터들이 갈등하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강대한 적을 없앤다. 소년 만화의 유명한 클리셰지만 클리셰를 유연하게 처리해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남은 것은, 세심한 끝마무리와 흥행 대결

 

개봉을 하기에 약 2주 간의 기간이 남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이번 극장판은 근래 한국에서 제작 ·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거기에 큰 판매 실적을 거둔 원작까지 결합되었다. 이제 이 막대한 '체력'을 가진 작품에게 남은 관문은 세심한 관리와 다른 작품과의 흥행 대결이다. 지난 시사회 (8월 3일) 에서는 기획자이자 제작사 DNA프로덕션의 대표 박순홍 씨가 영화 시작 전에 직접 "현상에 문제가 있어, 후반부에 초점이 맞지 않는다." 라고 할 정도로 작품 후반부의 초점이 흐렸으며 초반부의 캐릭터 음성이 다른 BGM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거나 일부 장면의 경우 아예 채색이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눈에 보이는 등 자잘한 흠이 보인다. 박순홍 씨가 "이번 시사회에서 발견된 문제를 개봉 전까지 수정할 예정이다." 라고 밝혔지만, 꼼꼼하게 수정하지 않으면 중대한 옥의 티가 될 것이다. 또한, 초등학생에게 버거운 한자가 군데군데 많이 나와서 당초 목표 중 하나였던 '어린이를 위한 한자 교습'의 의미가 일부 퇴색된 느낌이 든다. 초반에는 그런 한자의 경우 자막 처리를 했으나, 후반부에는 거의 자막 처리를 하지 않는 등 한자 자막 처리에 대한 일관성이 없는 것도 문제다.

 

또한 다른 작품과 '맞서 싸워' 얼마나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느냐- 도 관건이다. 올해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의 큰 핵인 「토이스토리 3」와는 약 2주라는 큰 시일차를 두고 개봉해 정면 대결을 피했지만, 대신 극장판이 개봉하는 8월 19일 전후로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영화「라스트 에어밴더」와 실베스터 스탤론이 제작 · 연출 · 주연을 모두 맡은 뜨거운 액션 영화「익스펜더블」이 개봉한다. 「익스펜더블」의 대상 관객이 극장판과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어 다행히지만, 대신 「라스트 에어밴더」는 원작 「아바타 : 아앙의 전설」이 EBS와 Nick채널을 통해 방영되어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대상 연령 역시 극장판과 비슷해 어린이 + 부모 관객을 놓고 치열한 대결이 벌어질 것이 예상된다. 오랜만에 나오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작인 만큼, 잘 버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 100만 관객 돌파 같은 의미있는 이벤트가 터지면 금상첨화고.

 

 

여담1. 국내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작화 / 배경 작업에서 한국의 명소들이 많이 참고되었다. 단양, 담양, 함양 일두고택, 하동 최참판댁, 부산 범어사, 남해 보리암, 통영 소매물도, 부산 용궁사, 고창 청보리밭, 양산 통도사, 하동 송림, 안동 하회마을, 합천 해인사, 경주 불국사가 참고된 곳인데, 작품을 보면서 어떤 곳이 어떤 장면의 모티프로 쓰였는지 살피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여담2.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사는 DNA프로덕션이다.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에 창립되어 국내외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서고 있는 중견 제작사다. 최근에 개봉한 작품으로는 한국 최초 '장편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으로 반짝 화제가 되었던 김수로 주연의 「그녀는 예뻤다」(설상가상으로 배급망이 CGV의 독립 영화 상영망인 '무비 꼴라쥬'를 타는 바람에 흥행 실적이 무척 처참했다.) 와 제작사 최초의 실사 작품인 (!) 부지영 감독, 공효진 · 신민아 주연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있다. (역시 이 작품도 독립 영화이다.) 실력은 있으나 운이 없었던 그들이 오랜만에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강력한 체력을 갖추고 서있다. 잘 버텼으면 한다. 덧붙여 윤영기 감독이 보도 자료 서면 인터뷰에서 밝힌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수가 많지 않은 현 시장 상황에서 흥행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롤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라는 소원이 꼭 이뤄지기를. 작품 끝에서 살짝 속편을 암시하는데, 꼭 나왔으면 하니까.

 

여담3. 시사회 상영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말세대장 역의 성우 안장혁 씨, 삼장 역의 성우 은정 씨, 돈돈 역의 성우 박신희 씨,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연기하지는 않으셨지만 박신희 씨와 부부 관계이신 성우 류승곤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볍게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안장혁 씨 께서 하던 말. "오랜만에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연기를 한거네요. (이 영화가 잘 되서) 계속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로부터 캐스팅이 들어왔으면 하는데. (웃음)" 정말,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이 글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의 기사 용도로 작성된 것입니다. 현재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의 내부 사정 및 서버 이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사 송고가 불가, 부득의하게 기자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기사를 게재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2010년 8월 12일 일부 수정.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10

 

PIFAN 2010 Day 2 - 우리 이웃의 범죄 : 가족, 사회, 그리고 범죄

ⓒ ㈜뮤덴스 / 영화사 天地 / 백호림 / 사과나무픽쳐스

우리 이웃의 범죄 Sin of a family

감독 | 민병진 주연 | 신현준 이기우 왕희지 전노민

2010 | 한국 | 104분 | HD | 컬러

 

시놉시스 (PIFAN 사무국 제공)

남자아이의 사체가 발견된다. 하지만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아이는 곧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몇 달 후, 형사들은 우연히 TV 미아찾기 프로그램에서 남자아이의 사진을 발견하고 아이의 부모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이의 인적사항을 거짓 기재하고, 유전자 감식테스트에 아들머리카락 대신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제출한 “천사” 같은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제천경찰서의 조창식 형사 (신현준 役).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만날 술이나 마시고 몇 년째 경장에서 머무르면서 승진도 못 하고 있다. 게다가 아들 경수는 (노영학 役) 불 같은 성격에 싸움 잘 하는 것도 똑 빼닮아서 경찰서에 들르는 것이 일상이고, 최근에는 마을 아주머니와 간통한 것이 걸리는 바람에 아내와 이혼까지 해버렸다. 그야말로 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는 양반.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야산에서 남자 아이의 변사체가 발견되면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원제가 <가족 사진> (그리고 이 제목은 영화 작중에 나오는 동요이기도 하다.) 이었던 <우리 이웃의 범죄>는 얼핏 보기에는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 <우리들 이웃의 범죄>와 이름이 비슷해 (사실, 거기서 따온 것 같기도 하다.) 심리 스릴러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전작 <이것이 법이다> 에서 보여온 민병진 감독이 장기를 발휘한 사회파 범죄 수사물이다. 범죄에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불행한 가족사가 드러나고 이 과정에서 수사하는 인물의 가족사도 조금씩 드러나는 전개를 펼친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수사 과정에서 긴장감을 놓치 않고, 가끔 유머도 주면서 반전도 있지 않는다. 추리물과 사회 고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영화에는 비중이 큰 두 가족이 등장한다. 제천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자폐아 정명환 (조상현 役) 의 가족들, 조 형사의 가족들. 정명환의 아버지 정인수 (전노민 役) 와 어머니 고영숙 (왕희지 役) 은 전형적인 하층 서민이다. 한 때 부품 사업으로 돈을 좀 만졌으나 부도가 나는 바람에 택시 기사를 하고, 부인도 없는 살림을 보태기 위해 여기 저기를 전전하지만 워낙 빚이 많은터라 별 소용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폐증세를 가진 아들 명환이 하루도 빼지 않고 사고를 치는 바람에 내쫓기기 일수다. 감독은 이 가족의 딜레마에 초점을 맞춘다.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아들을 버리느냐, 그래도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계속 지키느냐. 영화의 주 사건은 이 딜레마에서 출발했고, 이 딜레마는 결국 끔찍한 결말을 낳고 만다. 그것이 어찌보면 이 사회에서 아들을 위한 유일한 행동일지도 모르겠지만. 조 형사도 아내와 이혼하고 같이 사는 아들 경수가 계속 말썽을 부려 골치 아프지만 그래도 결코 관심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조 형사가 이 가족의 슬픈 사연에 자연스레 빠져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 형사는 이 가족에게 감화되어 좀 더 가족을 챙기기로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지만 영화 종반부에 부서를 좀 더 널널한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 결정했으니 미담인지도 모르지만, 헌데 어쩌나. 이미 감화의 대상이 된 한 가족은 제대로 버티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형사물 (그것도 버디!) 의 문법을 빌려 표면적으로는 범죄 수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실상은 사회가 방치하고 있는 한 가족이 어떻게 바스라지는 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다. 지금도 주변에서는 각종 질환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가족들이 수많이 널려있고, 사회적인 천대와 물질적인 천대라는 이중고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와 정부는 개인 차원에서의 해결을 고집한다. 개인이 사회와 떨어져 살 수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런 짐들을 나눠 받기를 거부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영숙이 행했던 일은 현실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엄마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끔찍한 일이어서 잠시 보류하고 있는 일인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은 픽션보다 더 잔혹하다.

 

여담. 작 중에서 고영숙의 기록을 통해 정명환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 지를 보여주면서 동네 바보 현승이 (조현승 役) 정명환을 괴롭히는 장면이 나온다. 흔히 장애인은 약자고, 무조건적으로 선한 캐릭터로 나오는 것이 전형적인 이미지인데 이 영화에서는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을 괴롭히는 장면을 내보냄으로서 (오히려 예비 장애인 - 즉, 일반인 - 이 장애인을 괴롭히는 것은 물리적인 것보다는 의식적으로 꺼려하는 것으로만 보여준다.) 전형적 상에서 탈피한다. 봉준호의 <마더>에 이어서 전형적 이미지에서 탈피를 시도한 훌륭한 시도이다. 감독에게 박수를.

 

 

- 본 기자가 사정 상 사전 등록을 하지 못해 데일리 프레스 카드 밖에 발급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사는 계속 시사실 (스크리닝 룸) 에서 볼 수 있는 영화, 그리고 행사를 위주로 작성할 예정입니다. 독자분들의 양해바랍니다.

 

- 이 포스팅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http://www.1318virus.net) 의 기사로 제작된 것입니다. 현재 서버 / 시스템 이상으로 기사 송고가 되고 있지 않으나 정상화가 되는 대로 송고할 예정이니 무단 전재 / 수정을 금합니다.

PIFAN 2010 Day 1 : 엑스페리먼트 - 폭발적인 전개, 처지는 결말

ⓒ Inferno Entertainment / Natural Selection

 

엑스페리먼트 The Experiment

감독 | 폴 쉐어링 주연 | 애드리언 브로디, 포레스트 휘태커

2010 | 미국 | 96분 | 35mm | 컬러

 

시놉시스 (수입사 새인컴퍼니 - 구 성원아이컴 - 제공)

트래비스(애드리안 브로디 役)는 사랑하는 연인 배이(매기 그레이스 役)와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한 목적으로 무작정 한 프로젝트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 실험은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 남자들을 간수와 죄수 그룹으로 나눈 다음 2주간 가상의 감옥 체험을 하는 것. 벤지, 닉스등과 함께 죄수 그룹에 들어간 트래비스는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실험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실험 2일째, 사소한 다툼이 간수 그룹에 속해 있던 배리스(포레스트 휘태커 役)와 체이스(캠 지갠뎃 役)를 자극하며 실험 참가자들은 점차 간수와 죄수의 역할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화하는 배리스 집단과 그에 반항하는 트래비스 집단. 실험 5일째, 첫 번째 살인이 발생하면서 가상의 실험은 점차 파국의 현실로 치닫게 되는데…

 

이 영화의 원작은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의 2001년 동명의 작품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14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1971년에 실시한 집단 실험을 들 수 있겠다. 실험 자체가 인간의 성향에 대한 (그리고 사회학 / 심리학 실험의 윤리 문제에 대한) 많은 논란거리를 낳았고 이를 다룬 2001년 작품 역시 큰 화제를 낳았다. 헐리우드는 이를 어떻게 재배치시켰는가.

 

<프리즌 브레이크>로 많은 시청자를 흔들어 놓았던 폴 쉐어링은 원작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첨가시켜 관객들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주 정부의 복지 예산 감축으로 직장에서 잘리게 된 히피 트래비스, 42살이나 먹었지만 아직도 어머니에 눌려 사는 배리스, 대마초를 피우고 여자와 한 판 뜰 생각에 몰두하는 헬웨그, 몽상과 저혈당 증상에 빠져있는 벤지. 크게 이 네 명의 캐릭터에 실험에 참가할 이유를 제시하고, 이들이 죄수와 간수로 나뉘고 나서 어떤 식으로 행동이 변하는 지, 그리고 눌려왔던 욕망이 폭발하는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감독은 이 '폭발의 순간'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전작 <프리즌 브레이크> 보다 더 강렬한 자극을 표현한다. 간수가 욕정을 못 참아 심약한 죄수 한 명을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로 끌고 가고, 다른 간수는 교수가 만들어낸 가공의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환상에 취해 마음껏 폭력과 모욕을 행사한다. 누군가가 창조한 세계에서 모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돈의 압박에 눌려 저마다 각자의 환상에 빠지고 만다. 다만, 폭발적인 초중반 전개에 비해 후반부 전개는 통쾌하면서도 약간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나름대로 감독이 해피 엔딩을 만드려고 한 시도로 보이나, 차라리 이보다 더 담담하게 끝을 맺었으면 감독이 전하려는 바가 더 살지 않았으려나. 종반부의 "(인간이 원숭이보다) 상황을 변하게 만들 수 있으니 낫다"는 트래비스의 말은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다소 결말이 받쳐주지 못했다.

 

또한 소재가 된 실험 / 원작에서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폭력과는 큰 관계가 없는 '일반 시민'들로 설정되어 있으나 이번 작품에서는 배리스와 헬웨그가 사실 폭력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트래비스에게도 폭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여지를 줌으로써 '사람은 상황에 따라 행동이 변한다.'는 주제가 아닌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이 특정 상황이 놓이면 그 성향을 분출한다.'는 주제로 변해 버렸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나, 2001년 작품을 생각하고 이번 작품을 볼 사람들은 그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잡담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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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커뮤니케이션, 웹툰에서 출판 만화로

ⓒ Daum Communication

 

지난 10일, 포털 사이트 '다음' 등을 운영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 최세훈) 이 30일에 열리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업 목적에 만화 출판 · 광고 · 부동산 임대 · 게임을 추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네 업종 모두 기존 사업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좀 더 깊게 파고들면 현재 상황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다. 만화 출판은 현재 '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는 웹툰의 출판화를 위해, 광고는 올해 지난 2월부터 지하철 1 ~ 4호선 역사에 설치되어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 키오스크 '디지털뷰' (DigitalView)의 메인 페이지에 들어가는 광고 사업을 위해, 부동산 임대는 제주도로 본사 이전을 결정하고 나서 사용을 중단한 기존 건물의 판매 관리를 위해, 게임은 경쟁사 NHN의 '한게임'처럼 높은 페이지뷰를 이용해 게임 관련 수익 (캐쉬 아이템 등) 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출판 만화 시장 진출로 일부 만화가들은 만화 시장의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한국 웹툰 시장에서 네이버 · 야후코리아와 호각세를 겨루고 있는 입장이고, 국내 가장 많은 종수의 만화를 펴내고 있는 대원씨아이와 당기순이익(2009년 9월 기준)을 비교해 볼때 다음커뮤니케이션은 459억 3385만 6천원 이익, 대원씨아이는 1억 7957만 7229원 손해로 확연한 자본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참조)

 

그러나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웹툰과 출판 만화가 시장 · 형식적인 면에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이번 사업 진출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이미 기존 웹툰의 단행본 판매 시장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으나 강풀 · 강도하 등의 인기 작가를 제외하고는 수지 타산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시장이 형성된 이유에는 출판사들의 안이한 마케팅도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웹툰 형식은 스크롤에, 출판 만화는 페이지 넘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마우스휠로 술술 넘겨보는 데 최적화된 만화를 억지로 책에 우겨 넣으니 만화의 형식적 재미가 죽어버린다.

 

거기에 대부분의 웹툰이 무료라는 사실도 웹툰 단행본의 낮은 판매량에 큰 기여를 한다. 몇몇 만화의 경우 계약에 의거해 출판과 동시에 인터넷 게재를 중단하나, 대부분은 페이지뷰 수익 문제 등으로 인해 게재를 중단하지 않고 설사 게재를 중단하더라도 블로그 / 미니홈피를 통한 불법 복제로 인해 독자들이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최근 완결된 허영만 화백의 「식객」이나 강도하의 작품들처럼 단행본을 위한 추가 요소를 넣거나, 단행본용으로 완벽하게 재편성하지 않으면 높은 판매량을 달성하는 것은 꿈에 가까운 일이다.

 

이미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작년 6월 9일부터 29일까지 3주 동안 Hun의 「데자뷰」, 캐러맬의 「남아돌아」, 김상수의 「박대리는 사회부적응자」를 콘텐츠 관리 전문 자회사 '컨텐츠플러그'에서 한정판을 예약하되, 300부를 넘어야지만 실제로 출간하는 형식으로 판매를 시도한 전력이 있다. 웹툰 단행본 시장에서는 흔치 않은 '예약 한정 판매' 였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홍보 부족 등의 이유가 있었지만 세 웹툰 모두 예약 150부를 넘지 못해 출간은 성사되지 못했다. 만화 출판 시장에 어울리는 마케팅, 출판 만화 시장에 어울리는 콘텐츠 개발 · 확보가 선행되지 않으면 이번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출판 만화 시장 진출은 작년과 같은 쓰라린 결과를 낳을 건 뻔한 일일 것이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10년 3월 23일 기사. 오랜만에 올리는 기사였다.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점, 웹툰과 출판 만화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단지 만화라는 점만 같을 뿐. 그 이외의 것은 형식도, 배포 방식도 다르다. 그 점을 유의하면서 사업을 전개할 것.

「그녀의 완벽한 하루」 : 직설적으로 보는 여자, 그리고 남자의 일상 (그리고 기타 보론)

 

기획 의도에는 온갖 훈훈한 이야기를 올려 놓고, 정작 현실과 백만 광년 이상 떨어진 본편을 선보이는 드라마의 '일상'을 보자. 만날 힘들다, 어렵다면서 투덜대는 '중산층' 그들은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 마당과 정원이 딸린 2층 짜리 단독 주택에 살고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의상을 입고 생활한다. 가끔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괜찮다. 끝은 항상 좋게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삶을 보여준다고 해놓고서 미화된 삶을 보여준다.

 

이런 류의 드라마 /  애니메이션 /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팍팍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서 보는 것이리라.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는 쾌감은 '비현실적' 드라마가 존재하는 원초적 목표이다. 하지만 비현실이 있으면 무릇 현실도 있어야 하는 법. 짜증나고 우울할지라도 현실 자체를 직접적으로 보지 않으면 현실은 절때 바뀌지 않는다. 비루한 주변이 싫어 환상만 느끼면, 현실은 더욱 비루해진다. 그리고 다시 더 큰 환상을 찾게 된다. 빙빙도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대안 만화와 주류 만화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만화가 채민은 첫 단편집「그녀의 완벽한 하루」를 통해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 시 한 편을 작품 첫머리에 붙이고, 작가가 일상 생활과 연상한 내용이 술술 흘러간다. 보통의 20, 30대가 겪는 단조롭고 가끔씩 짜증나는 일상들, 그리고 주인공의 심리들. 만약 이 만화가 보통의 로맨스 만화나 액션 / 스릴러 만화였다면 일상 후에 바로 중대한 사건이 터졌겠지만, 채민은 '리얼리즘' 만화가이다. 현실은 바뀔 생각을 보이지 않고 막막하게 흘러만 간다. 소소한 휴식 같은 것은 없다. 자살이란 긴 휴식만 있을 뿐. (「perfect day」)

 

당연한 폭력과 일방적인 사회, 탈출구는 없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맨 마지막 에피소드 「perfect day」를 제외하고 두 에피소드가 묶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서로를 모른다. 단지 공통점이 있다면 주변에서 한 번이라도 마주친 적이 있었다는 것과 현실에 힘들어하지만 바꾸려는 노력은 차마 하지 못한 채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 언어적 - 제도적 폭력과 일방적인 사회 관계는 무척 당연하게도 - 일말의 짜증은 있지만 - 흘러간다.

 

박봉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제대로 된 결혼을 할 생각도 없는데, 직장 동료들은 자꾸만 결혼을 부추기고 (「비 오는 날」)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며느리는 낳기 싫은 아이를 억지로 낳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두 번째 아이」) 권위적인 사회는 개인을 각박한 환경으로 몰아넣어 스스로 목숨을 잃게 만든다. (「perfect day」) 남녀 관계 또한 서로에 대한 애정없이 지금 이 순간 만을 위해 치닫는다. (「비 오는 날」, 「그 여자는 거기 없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노력이 없지는 않다. 노래방에서 크게 소리를 지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하고 (「나는 천국으로 간다」), 자신과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후배와 하룻 밤의 거사를 치른다(「선택」). 제도화된 일상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내면을 다지기 위해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시도도 있다. (「행운목」) 그러나 현실이 냉엄하듯이, 채민은 그들에게 결코 희망을 주지 않는다. 친절로 포장한 조롱, 예기치 않은 사고가 그들을 반긴다.

 

잔혹한 현실에서 노래하는 역설적 희망

 

"독자를 우울하게 만드려고 작정한 작품이냐." 는 비판이 나올 수 있겠다. 맞다. 이 작품은 독자를 심히 불편하게 만든다. 제목의 '완벽한 하루'라는 말과 유려하고 부드러운 그림체에 혹해서 샀다가 매우 심각하게 전개되는 단편들에 학을 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채민은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전달한다. '희망'이 필요하다는 수사이다.

 

개인이 결혼, 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세상 (「비 오는 날」, 「두 번째 아이」), '옷이나 파는 주제'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학벌과 외모, 재력에 상관없이 존중받는 세상 (「나는 천국으로 간다」, 「선택」, 「perfect day」), 억압된 환경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개인이 태어나는 기반이 마련된 세상. (「나비」, 「행운목」) 비록 우울하고 직설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지만, 직설의 이면에는 이런 세상들에 대한 소원과 희망이 들어있다. 단지 그것들을 미화시켜서 표현하지 않고, 우리 주변의 삶으로 환원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희망을 드러내는 방법은 작가마다 모두 다르다. 채민처럼 리얼리즘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고, 밝은 전개와 해피 엔딩을 통해 전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런 방법들은 각기 장단이 있기에 무엇이 더 낫다고 판별할 수는 없다. 다만 굳이 고르자면 전자를 고르겠다. 현실에 없는 희망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팍팍함을 무리하게 감동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주변의 모습을 세세히 파고드는 점에서 '리얼리즘'은 2010년 현재에도 의미를 갖는다, 독자들이 답답해 할지라도.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에 연재하는 만화 + 사회 칼럼 「코믹 소사이어티」 제 47화, 2010년 3월 12일 게재.

 

▶ 만화가 채민 누리집 http://www.chaemin.net/

 

기사에서 못 다했던 말을 몇 가지 첨언하자면, 이 만화는 근 2 ~ 3년간 창비가 벌이고 있는 '출판 만화 시도'의 좋은 성과 중 하나입니다. 2005 ~ 6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획으로 펴낸 만화가들의 단편집 「십시일반」, 「사이시옷」을 낼 때만 해도 단기적인 시도로 그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그 후로도 좋은 작품을 계속 내는 겁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최규석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인터넷 상을 뜨겁게 뒤흔들었던 동명의 작품이 실린 단편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길찾기, 초기 장편 「습지생태보고서」는 거북이북스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초기 이후 작품은 전부 창비에서 나왔죠. 단편 「창」이 실린 「사이시옷」이나, 『한겨레21』에서 연재한 「대한민국 원주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용으로 제작되었고 단행본용으로 정말 귀중하고 가치있는 부록 만화를 첨부해서 나온 「100℃」. 지금 제작 중인 SF 장편이 창비나 바다출판사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창비에서 나올 확률이 크다고 봅니다.

 

즉- 가능성있는 작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투자하는 후기 만화 출판 시장 진출 회사가 창비라는 것이죠. 앞서 언급한 단편집 두 개를 제외하고 현재까지 나온 만화 리스트를 살펴보면 오영진 (「평양 프로젝트」, 「수상한 연립 주택」 - 『창비주간논평』에서 연재되었습니다.), 최규석 (아까 리스트 말했죠? 하하.), 그리고 채민. 『창비주간논평』에 김태권의 「20세기 연대기」가 연재되었으니 김태권도 작가진으로 칩시다. 오영진 / 최규석 / 채민 / 김태권 모두 2000년대에 주목받고 있는 만화가들입니다. 김태권이 길찾기 / 한겨레출판 / 돌베개 등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만 제외하면, 세 작가 모두 창비에서 지속적으로 컨택을 하고 출간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 만화에 진출하려는 회사는 창비의 이런 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잡지 계획이 없는 출판사일수록!) 창비의 만화 특색은 1) 사회적이고 2) (한 작가든, 주제든) 집중적입니다. 즉- 스펙트럼층을 확실히 찌르고 들어간 거에요. 그러니 판매량도 높고 (「100℃」가 만 부를 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평가도 좋은 만화가 나올 수 밖에. 특색을 확연히 살리는 만화를 집중적으로 출간하십시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사 또는 포스팅으로 더 자세히 쓰겠습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 - 10점
채민 글.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진실된 이 그 누구인가 : 「2인실」

 

한 남자가 알람 소리에 침대에서 깨어난다. 아직 잠에 덜 깬채 주위를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이상하다. 집이 아닌 난생 처음 보는 곳이다.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지하실. 유일한 탈출구인 철문은 단단히 잠겨져 있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열쇠로 철문을 열고 가니 컴퓨터가 남자를 맞이 한다. 잠시 후 컴퓨터가 저절로 켜지고, 가면을 쓴 사람이 모니터에 뜬다. 그리고, "당신… 사람 죽였지?" 「킬 더 킹」, 「누가 울새를 죽였나?」로 화제의 작가에 등극한 마사토끼 작가 (이하 마사토끼) 가 글을 맡고, 신군이 그림을 맡은 신작 「2인실」의 도입 부분이다.

 

마사토끼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진다. 속히 '병맛'이 철철 넘치는 개그물이거나, '병맛'과 긴장감이 적절히 섞인 판타지물 아니면 '병맛'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인물 간에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추리 · 스릴러물이거나. 세 장르 모두 특성이 제각기이고 어느 하나를 제대로 다루기에도 쉽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마사토끼는 이 모두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2인실」은 맨 뒤의 분류에 속하는 작품이다. 「누가 울새를 죽였나?」와 비슷한 성향이다. 상황 설정도 비슷하다. 밀실에서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말다툼을 벌이고, 주된 핵심 소재는 범죄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누가 울새를 죽였나?」는 스스로 자발적으로 밀실에 들어가 의심과 돈에 눈이 멀어 서로를 살육했다는 것이, 「2인실」은 강제적으로 밀실에 갇혀 더 복잡한 의심으로 사건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특히 스토리를 전개하는 사람을 살인자로 몰린 주인공 남자로 설정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약간 미심쩍지만 날카로운 증거로 남자를 살인자로 지목한 가면인간이나, 살인자로 몰린 남자 둘 다 독자들에겐 믿기 힘든 가운데 모든 사건을 주인공이 보게 만들어 이야기를 꼬이게 만든다. 어찌 보면 자신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주인공 남자의 말이 맞는 듯 하지만 곧 가면인간은 그에 맞서 다른 증거와 논리를 내놓는다. 둘 중 하나만이 진실일 수도 있지만 둘 다 맞을 수도,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인공 남자 대 가면인간'의 두뇌 게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자 대 작가'의 두뇌 게임인 셈이다.

 

작중에 제시된 '살인'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사회상이 담겨 있다. 먼저 공격하지 않고 유인해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소매치기를 폭탄이 든 지갑으로 유인해 폭사하게 만들고, 락커룸에 볼트 폭탄을 장치하고서 털이범들의 얼굴에 잔뜩 볼트가 박히게 만든다. 어떻게 생각하면 시민들의 재산을 훔치는 범죄자들에게 단죄를 내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마냥 죽이는 것까지 옹호할 수 있을까. '범죄에 대한 처벌'과 '또 다른 범죄' 사이에 벌어지는 '제 2의 두뇌 게임'이다.

 

근래 연재되는 웹툰들이 예전에 비해 서사성이 증대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웹툰은 일상 · 에세이에 머무르고 있으며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었다고 하는 작품들도 세세히 살펴보면 엉성한 구조에 그친 것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특히 추리 · 스릴러 · 두뇌 게임은 국내에서는 희귀 장르에 속할 정도로 작품이 매우 적게 나오는 편이다. 비록 포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부족한 만화 전문 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작가가 꾸려나가는 치밀한 논리와 대결이 준수하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지하실 남자와 가면인간, 과연 누가 이 게임에서 빛을 맛보게 될 것인가.

 

 

 

- 2010년 2월 24일,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에 연재 중인 칼럼 「코믹 소사이어티」 제 46화로 쓰여진 글. 네이버에 연재 중인 「커피우유신화」에 비해 이 작품은 「툰도시」 에 연재 중이어서 상대적으로 묻힌 것이 아쉬울 따름. 다만, 전자가 판타지틱한 병맛 작품인데 비해 이번에 다룬 작품은 병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국내에서는 찾기 어려운 고품격 스릴러이다. 이 두 개의 작품이 전부 같은 작가의 머리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대단하다.

 

덧붙여 여담, 원래 이 작품은 풀빵닷컴에서 마사토끼가 직접 그려서 (그러니까, 그림판에 대충 그린 듯한 스타일) 연재 중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모종의 사유로 연재가 중단되고. 대신 네이버 웹툰에서 원사운드 (TIG 카툰의 원사운드 맞다!) 콘티 / 배분, joana의 그림으로 연재를 추진했으나 … 불발. 결국 1년 반 후에 툰도시에서 신군의 작화로 연재가 결정되었다.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지지부진한 준비 끝에 드디어 빛을 (그러나 연재 장소가 워낙…) 보게된, 참 귀한 작품이다.

한국 만화잡지의 앞날은 어디인가

 

전체 만화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 만화잡지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서울문화사의 월간 저연령층 대상 순정 만화잡지 『밍크』, 씨네21의 월간 성인 만화잡지 『팝툰』이 각각 2월호에서 무기한 휴간을 선언했다.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으나 만화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판매량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만화잡지의 특성상 잡지가 많이 팔리지 않으면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단행본으로 적자를 메꾸려고 해도 단행본 판매도 시원치 않아 결국 잡지 판매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팝툰』의 경우에는 5,900원이라는 고가의 가격으로 판매해왔으나 결국 창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쓸쓸히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절대교감의 성인 순정 만화잡지 『그루』는 더 직설적으로 폐간의 이유를 밝혔다. 1월 1일에 발행한 『그루』 5호에서 발간사의 사장 김부용과 책임편집자 유민형은 잡지 앞머리에 게재된 폐간사에서 '4호까지의 판매 성적을 보아 더 (잡지 발간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면서 직설적으로 판매량이 처참했음을 드러냈다. 또한 '대출까지 받아서 잡지를 냈다. (중략) 결국 만화 잡지를 사는 독자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라면서 잡지를 구매하지 않는 독자에 대한 서운한 심정을 표출했다.


각각 지향하는 연령층과 성향이 다른 잡지가 폐간했지만, 얄궂게도 전체 만화잡지 수에는 큰 변동이 없다. 이미 작년에 만화잡지 두 개가 창간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자회사 동아사이언스는 격주간 만화잡지 『어린이 과학동아』의 자매지 월간 『수학동아 X』를 새롭게 펴냈다. 『어린이 과학동아』의 판매 수익이 높았던 만큼 동아사이언스로서는 자매지를 창간하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교과서 · 학습지 전문 출판사인 지학사도 『독서평설』의 자매지 『만화로 보는 독서평설』을 격주간으로 창간했다. 현재 어린이 만화잡지가 전체 만화잡지 종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 (『개똥이네 놀이터』, 『고래가 그랬어』도 포함한 수치). 소년/청년 만화잡지가 28%, 순정 만화잡지가 21%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어린이 만화잡지는 전체 만화잡지 시장의 대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이 어린이 성향 이외의 만화잡지를 계속 연이어서 온라인 전환 / 간기 변경 / 휴 · 폐간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루』의 폐간사에서도 밝혔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판매량 부진이다. 비교적 짧은 발행 주기 내에서 많은 양의 책을 연이어서 발간하는 것은 무척 부담이 되는 일이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만화잡지 발행사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주간 『소년 점프』로 대표되는 일본식 시스템이다. 저급의 종이로 잡지를 발행해 최대한 제작비를 줄이고, 가격을 싸게 발매해 독자들이 부담없이 사서 볼 수 있게 만든다. 적어도 90년대 중후반까지는 이런 방식이 먹혀 들어가 시장이 끊임없이 순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다. 출판 시장은 계속 불황에 빠지고, 만화 잡지를 구매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 갔다. 그나마 초반에는 단행본 판매로 그럭저럭 적자를 메꿨지만, P2P / 와레즈 등을 통한 불법 다운로드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단행본 판매 수익도 점차 하락세를 맞이 했다. 여기에 전 정권(김영삼 정권)이 일으킨 '청소년 보호법 사태'로 그나마 시장이 유지되었던 기존 성인 / 청년 / 소년 만화가 급속도로 몰락하게 되었다. 학습 만화(어린이 대상 컬러 와이드판형 만화)와 웹툰(온라인 · 디지털 만화)의 성공으로 전체 만화 시장의 크기는 계속 커져 갔지만 정작 현 만화 시장의 근간인 출판 만화 시장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홍보 부재 (『팝툰』, 모회사의 발간 잡지 『씨네21』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홍보 루트가 없었다.) 와 판매 ·유통망 부재 (『그루』, 유통망이 부족해 몇몇 서점에서만 판매되었다.)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새롭게 만화잡지 시장에 도전한 회사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오직 어린이 성향의 만화잡지만 학부모들의 꾸준한 구매로 불황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다.


앞으로의 오프라인 만화잡지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잡지 판매가 내림세를 타고 있고 서서히 온라인 · 디지털 잡지, 또는 애플 아이폰 등의 스마트폰 앱스토어 잡지 등이 시도 중에 있다. 아마도 미래의 만화잡지는 책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 보게 될 일이 많아질 것이다. 다만, 한국은 과도기가 없이 너무 급속도로 시장이 변하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기존 출판 만화 시장의 기반이 갑작스레 붕괴 중에 있고, 지금 존재하는 학습만화 · 웹툰 시장도 유통의 다양성이 없는 불안한 환경에 놓여 있다. 철저히 판매 대상을 공략하고, 마케팅과 독자 소통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한국 만화잡지 시장의 붕괴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독자들의 꾸준한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속도가 더욱 더 빨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10년 2월 8일 게재 기사. 작년 한 해에만 하나의 잡지가 온라인으로 옮겨가 버리고 (즉, 오프라인 잡지는 폐간) 세 개의 잡지가 격주간지에서 월간지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올해 세 개의 잡지가 휴 · 폐간되었다. 얄궃게도 작년에 세 개의 잡지가 창간하는 바람에 (하나는 성인 만화 잡지 - 『카툰마니아』, 학산문화사 - , 나머지 두 개는 글에서도 언급한 어린이 만화 잡지이다.) 전체 잡지수에는 큰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잡지 시장의 불황은 그칠 줄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과연 어떻게 버텨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시장을 넓혀야 할까. …확실한 것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저예산 잡지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

5 QUESTIONS : 다섯 개의 질문으로 돌아보는 2009 한국 만화

 

2009년 한국 만화는 어떠하였는가. 인터넷에서 한가롭게 떠드는 이의 말처럼 죽어 사라져 한 줌의 재가 되었는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도약을 노리고 있는가. 한국 만화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있는 사이에 뒤에서 묵묵히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 만화는 쉽게 패망할 만큼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단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을 뿐. (이건 다른 나라, 다른 분야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2010년 새해를 맞이해 지난 해 한국 만화를 다섯 개의 질문으로 되돌아 본다. 독자, 작가, 만화계 관계자 모두가 이 문제들에 대해서 곱씹는 계기가 되길 빈다.

 


잡지 만화는 쇠락하는가 - 잡지의 휴 · 폐간, 그리고 온라인 전환


올해 초 학산문화사의 소년 만화지 『찬스』, 청년 만화지 『부킹』, 씨네21의 성인 만화지 『팝툰』이 월간으로 전환되더니 결국 12월 서울문화사의 저연령 순정 만화지 『밍크』, 그리고 『팝툰』이 2010년 2월호를 끝으로 휴간한다는 공고가 뜨고 말았다. 아직 『팝툰』만 정식으로 사실 확인을 한 상황이나, 『밍크』의 작가들도 속속 폐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밍크』의 무기한 휴간도 기정 사실이 되었다. 작가주의 순정지를 표방하고 90년대 인기 순정만화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한 절대교감의 『그루』도 6호를 끝으로 (현재 4호까지 발간 되었다.) 폐간을 선언하였다.


잡지 만화의 불황은 한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잡지가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일본도 수많은 잡지들이 휴 · 폐간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쇼카쿠칸(小學官)의 청년 만화지 『YS (영 선데이) 스페셜』의 휴간은 한 · 일 양국의 만화계의 큰 충격을 주었다. 잡지 폐간 후 새로운 만화 잡지를 창간하는 게 일상적이었던 일본 만화계에서 『영 선데이』가 폐간된 뒤 창간된 『YS 스페셜』의 휴간은 더 이상 일본 만화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직도 『소년 점프』 · 『소년 선데이』 · 『소년 매거진』을 필두로 한  3대 소년 만화 잡지의 위상은 강력하지만 잡지 판매량은 더 이상 예전의 기색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잡지가 줄줄이 휴간을 선언하는 와중에서도 아동 만화는 계속 인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10월에 동아사이언스가 어린이 대상 과학 만화지 『어린이 과학동아』의 자매지 『수학동아 X』를, 12월에 지학사가 『만화로 보는 독서평설』을 창간하였다. 그 외에도 『개똥이네 놀이터』 (보리), 『고래가 그랬어』(도서출판 고래가 그랬어) 등이 만화 · 출판계의 불황에 불구하고 좋은 판매량을 구가하고 있다. 이는 어린이 대상 만화의 주 구매자인 3 ~ 50대 학부모들의 구매력이 1 ~ 20대보다 강한 것이 원인으로 추측된다.

 

(내용 추가 : 만화 잡지는 아니나 만화가 단체에서 유일하게 나오던 회보이자 정용연 작가의 느린 페이스의 연재작 「정가네 소사」가 연재되던 우리만화연대의 월간 『우리만화』가 올해부터 잠정 휴간을 비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유는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에 신청한 발간 지원비가 올해부터 끊겨서. 회보 하나 유지 못하는 협회 사정에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정치적 견해로 지원비를 싹 끝는 문예위도 괴하기는 마찬가지다. 판매용 잡지는 아니나, 잡지 만화의 위기 증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웹툰은 완벽한 대세가 되는가 - 웹툰 발표 작품 증가, 중진들의 본격적인 웹툰 참여


잡지 만화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웹툰의 인기는 꺽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신진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진입 장벽이 잡지에 비해 낮은 웹툰의 특성상 각 포털의 만화 데뷔 코너(네이버의  '도전만화', 다음의 '나도만화가')를 통한 만화가 지망생의 참여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네이버 웹툰 「와라! 편의점」이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웹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황미나, 손태규, 윤태호, 이충호, 조재호, 전상영 등의 중진 만화가들이 웹툰에 신작을 발표하는 등 표면적으로 볼 때 웹툰은 이미 한국에서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한계도 여전하다. 오직 세 개의 통로(네이버, 다음, 야후코리아) 를 통해서만 작품이 인기를 얻을 수 있다. 마사토끼(개인 블로그를 통한 작품 발표) 등 예외적인 인기 사례가 있으나 무척 한정적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세 대형 포털과 직접적 혹은 간접적(컨텐츠 프로바이더, 출판사와 작품 계약을 맺고 연재만 포털에서)인 계약을 통해 발표된다. 파란, 툰도시, 엔크린 등에서도 웹툰이 연재되고 있으나 세 포털에 연재되는 작품의 인기에 비해 무척 낮은 인지도를 얻고 있다.


기존 출판 만화와는 다른 문법적인 차이도 존재한다. 만화책은 옆으로 넘겨서 보는 것이지만, 웹툰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서 본다. 보는 시간이 기존 출판 만화에 비해 짧으며 생략한 표현을 쓰기 무척이나 난감해 진다. 처음부터 출판용으로 기획된 작품 또는 기존에 출간되었던 작품을 웹툰으로 발표할 때 인기가 낮은 이유도 출판 만화와 웹툰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웹툰이 출판 만화를 완전히 대체하는 대세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음에서는 「폭주기관차 : Road to 2010」, 「그녀방위군」, 「베르카닉스」 등을 기존 출판 만화와 비슷하게 옆으로 넘겨보는 방식으로 서비스하고 있으나, 이는 아직 초기 시도에 불과하다. 지속적으로 웹툰과 기존 출판 만화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만화 100년은 큰 사회적 결실을 얻었는가 - 그들만의 잔치, 한국 만화 100년


2008년 말과 2009년 초는 만화계가 '한국 만화 100년'이라는 거대한 기념 행사를 두고 엄청 들떠있었다. 잘 이용하면 전국으로 한국 만화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리하여 '한국 만화 100년'을 앞에 내세우고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념 전시가 벌어졌고, SICAF와 BICOF, 그리고 만화계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관했다. 하지만 만화계 인사와 만화를 관심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홍보와 마케팅의 부재였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포털을 통해 100년 기념 전시를 짧게 광고한 것 외에는 만화계 단체나 기관 차원의, 하다 못해서 출판사 차원의 광고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대신 한국만화가협회는 감사원 조사 결과 지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단체에 적발되었을 뿐이다. 우리만화연대도 만화인 시국선언 외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움직임을 찾을 수 없었다.


만화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가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고 유관 기관인 문화관광체육부 · 한국콘텐츠진흥원 · 한국만화영상진흥원(구 부천만화지원센터) ·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 광주디지털콘텐츠진흥원의 지원도 미미했다. 지원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으나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고 지원한 작품도 몇 개를 제외하고는 묻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한국 만화 100년은 묻혔다. 단체와 기관들의 홍보에 대한 재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만화는 어떻게 오픈 마켓에 자리를 잡을 것인가 - 한국 만화의 새로운 통로, 오픈 마켓


논쟁의 출발은 네이버가 6월, 애플 앱스토어(아이팟 터치 / 아이폰용으로 제작된 앱 - Application의 준말, App. - 을 올리고 받을 수 있는 거래의 장)에 무료로 자사의 웹툰을 볼 수 있는 앱을 올리면서 부터였다. 비록 작가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하고, 30일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삭제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인터넷 만화 서비스 초기에 무분별한 무료 경쟁으로 스캔 만화가 범람한 전례가 있기에 많은 관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네이버는 일정 가격을 내고 볼 수 있도록 방침을 변경하였고 이 사건은 만화계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게 되었다. 결국 7월 10일, 한국만화가협회와 우리만화연대의 주최로 '오픈 마켓,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벌어졌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애플 앱스토어를 포함한 오픈 마켓용 만화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된 큰 사건이었다. 향후 이 논의는 (다음 질문에서 자세히 살펴볼) '만화 진흥법' 발의 및 제정에 대한 논의에 이어지게 되었다.


크기가 작은 스마트폰(오픈 마켓 앱은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서비스가 가능하다.)의 특성상 기존 만화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며, 오픈 마켓에 어울리는 만화 문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담달폰'으로 불리던 애플 아이폰이 정식으로 발매된 이상, 더 이상 남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다. 이미 대원씨아이, 서울문화사의 만화 일부가 아이폰 앱스토어를 통해 서비스 중이다. 새로운 통로에 대한 작가와 관계자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개발이 필요하다.

 


만화진흥법은 제정될 수 있을 것인가 - 격쟁 속의 만화진흥법 논의


싸구려 오락거리로 치부하던 영화에 많은 돈이 몰리고, 「쉬리」등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오게 된 것에는 영화계의 요구로 설립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의 덕이 컸다. 비록 이번 정권 들어서 외압에 시달린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영화계의 요구를 발빠르게 정부에 전달하고 투자 등의 큰 돈이 오가는 문제를 한 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의 역할을 널리 수행하고 있다.


한국 만화가 예전에 비해 외양이 커지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나 심의나 투자 면에 있어 많은 불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영화진흥공사가 세워지고 영화계에 숨통이 트였던 것을 보고서 일부 만화인들이 만화진흥법에 제정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8년 겨울부터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관계자와 만화인들이 모여서 법 제정을 논의하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년 3월에 완성된 초안의 주요 골자는 문광부에 만화진흥위원회와 만화진흥금고를 설치, 그리고 합리적인 만화 등급 분류와 만화 서비스에 대한 통합 전산망 운영이다. 대부분 만화계 진흥에 대한 큰 틀에는 동의하나 만화 등급 분류에 있어 많은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다. 기존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의 심의에서 벗어나 만화계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초안을 만든 사람들의 입장이나, '오히려 만화계 인사들의 만화 탄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입장도 팽배하다. 그러나 이미 「GOTH」 사태에서 간윤 심의의 이중 잣대가 드러난 지 오래다. 어떤 식으로든 합리적인 심의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만화 진흥법는 올 2월 국회 공청회를 앞두고 있다.

 

(내용 추가 : 결국 만화진흥법은 만화가들만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란다. 만화가들만 만화인이고 만화 평론가나 포털 만화 서비스 관계자, 출판사 관계자, 만화 기자 등은 만화인이 아닌가 보다. 이들의 저열한 인식을 보자하니 참 우스울 뿐. 만화진흥법이 만화가들만의 문제인가? 배타적인 인식을 버려라. 제발 좀.)

 


2010년 만화계, 희망찬 해가 되길


올해의 만화계도 작년 만화계처럼 이번 기사에서 제기한 다섯 개의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잡지 만화는 계속 부침을 겪을 것이며, 웹툰에 대한 인기는 계속 늘어나고, 오픈 마켓용 만화와 만화 진흥법에 대한 논의는 계속 커질 것이다. 몰이해하는 자와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사람들 속에서 한국 만화는 꾸준히 시장을 키워오고 있다.


쉽게 잡지 만화는 숨통을 트이지 못할 것이다. 심의도 쉽게 합리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을 것이고, 만화 진흥법은 결코 올해 한에 제정될 수 없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망으로 넘실거리는 2010년, 제발 올해는 『밍크』 · 『팝툰』 · 『그루』 휴간 같은 슬픈 소식이 들리지 않는 한 해가 되지 않길 빈다. 희망적인 질문으로 돌아볼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 2010년 1월 3일,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에 올라온 기사. 원래대로라면 작년에 올라왔어야 마땅하지만 사정이 계속 꼬이는 바람에 해를 넘겨서 만화계 정리 기사를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 기사 관련 잡지와 기관 뉴스를 제외한 일반 신문사 중에서는 아마도 유일하게 만화계 화두를 정리한 기사가 되어 버렸다.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한국 만화 100년을 제외하고는 현재도 이 화두는 유효하며, 특히 잡지 만화의 퇴조, 그리고 만화진흥법 뉴스는 계속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댓글 중에서 IPTV 만화 서비스 개시도 넣어야 한다는 것이 있었는데 … 현재 사업성도 그다지 크지 않으며 무엇보다 서비스 주체가 딱히 열의와 열정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넣지 않았다. 볼 수 있는 매체의 다변화라는 점에선 중요하나, 이는 오히려 오픈 마켓용 서비스에서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자학의 시」 - 나락으로 떨어져야 작은 빛을 본다

 

※ 작품의 스포일러가 일부 들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다. 그 환경이 자신이 원하든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환경에 적응한 사람의 행동은 환경이 바뀌고 나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오랜 검열에 찌든 한국 만화가 자체적인 검열에 시달리는 것이나 (그래서 '19세 미만 구독 불가' 만화가 전혀 19세 이상이 볼 만하지가 않다.) 인권보다 경제가 우선적으로 여겨진 사회에 익숙한 사람이 조금만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에 박으로 이름이 시작하는 전 대통령을 들먹이면서 노이로제성 반응을 보이는 것을 그런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이미 주변에 많이 퍼져 있지만 용산 참사, 그리고 현재 추진 중에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편견을 올해 사례의 결정판으로 뽑고 싶다. 모 신문 사설에서 나왔던 '철거민들이 불법적으로 시위를 했으니 모든 책임은 철거민들에게 있다.'와 한 교육위원의 '학생들은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라고 말한 것은 환경이 사람을 규정한다는 사례를 뼈저리게 보여준다. 과연 자신들이 철거민들이었으면, 또는 청소년들이었으면 이런 말을 쉽게 내뱉었을까. 말로는 그들을 위한다고 떠들어도 실제로는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고다 요시이에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주간 보석』에 연재한 4컷 만화 「자학의 시」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면서 보지 않으면 결코 이 작품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직장도 없이 기분이 수틀리면 항상 밥상을 뒤엎는 날건달 남편 이사오, 그리고 이런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게 여기는 아내 유키에. 이사오가 가끔씩 유키에를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때도 있지만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유키에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 사는 게 그의 나날이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을 포함해 독자들은 유키에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유키에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상황은 전환된다. 뼈 속 깊이 스며든 가난, 자신을 낳고 도망간 어머니, 그리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사고만 치는 아버지, 게다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들도 무시한다. 친구라고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가 전부. 어찌어찌해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나 했더만 이제는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러 뿔뿔이 흩어진다. 완벽한 나락의 상황이다. 돈을 벌러 도쿄에 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느는 것은 이혼과 주사 바늘 수. 그 때 야쿠자였던 이사오가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폭력 단체를 그만두는 것도 불사하면서 결혼을 한다. (비록 혼인 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나락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이다.

 

젊었을 때 깊은 심연 속에 떨어진 유키에로서는 조그만 것 하나 하나가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이사오가 밥상을 뒤집을 때 배에 밥상이 닿지 않도록 던지는 것에도 배려심을, 도박에서 따온 돈으로 (정말 형식적인) 보잘것 없는 선물을 사주는 것에도 기쁨을 느낀다. 마지막에 나오는 유키에의 마음 속 대사 '행복이든 불행이든 이젠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똑같은 가치가 있다. 인생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는 그가 겪었던 상황이 만들어낸 진리이다. 남들에게는 보잘것 없는 가치일지라도 유키에같은 사람에게는 소중한 불빛이 된다.

 

두발 규제, 야간 자율 학습 규제, 철거 예정 지역 거주자 보호 등의 조치는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소중한 하나의 제도이다. 최악의 상황을 막고, 나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주는 정책이다. 그런데 정작 그 상황에 놓여 본 적도 없는 자들이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눈길도 주지 않고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려고 한다. 강제로 나락으로 떨어뜨려야만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자학의 시 1 - 10점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세미콜론
자학의 시 2 - 10점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세미콜론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에 2009년 12월 30일, 만화 + 사회 코너 「코믹 소사이어티」제 40회로 올라온 글. (저번 30회 돌파에 이어 40회 돌파로 <바이러스> 코너 화수 신기록 갱신을 했다는 것은 덤입니다.) 한국에 들어오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파레포리」, 「아돌프에게 고한다」 등을 낸 세미콜론답게 한 방에 내주었다. 짧게 말하자면, 절대 1권만 보고 만화를 평가해선 안 되는 감동의 4컷 만화.

「아돌프에게 고한다」 - 전쟁은 곧 정의인가

ⓒ 데즈카 프로덕션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쟁은 일어난다. 거창한 이유에서부터 축구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그 중 가장 많이 써먹히는 이유는 '정의'이다. 흔하게 붙이는 수식어 중에서 '정의의 용사' 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용사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이고, 그들의 싸움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 싸움이 정말 정의롭든, 정의롭지 않든 간에 말이다. 애초에 싸움이 정의롭게 포장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싸움은 결국 정의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싸움이 정의를 걸고 벌어졌는가? 식민지 땅따먹기 경쟁이었던 제 1차 세계대전은 서로가 공공연히 선전 포고문에 정의를 넣었고, 민족 · 제국주의의 광기가 극에 달했던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연합국, 추축국 진영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폄하하며 정의로운 전쟁을 강조했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유고 내전에서도, 걸프 전쟁에서도, 짧게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도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싸운다는 것을 내걸었다.


그나마 근대 전투까지는 군인같은 전투원만 전쟁에 참여했으니 점령되지 않는 이상 민간인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다소 약했다. 하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무차별적인 공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밀 폭격을 강조했던 각종 최신 무기들이 어이없게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하는 일이 공공연히 발생했다.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 민간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생긴다. 민간인 학살은 덤이다. 이유도 구리고, 그 진행 과정에서도 구린내가 나는 전쟁은 과연 정의로운가.


「우주소년 아톰」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데즈카 오사무는 전쟁에 반대했던 것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작품이나 발언, 칼럼을 통해서 반전을 열변하고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작가였다. 그가 일본 만화 · 애니메이션계에 남긴 족적을 감안해서 보더라도 그의 반전 메세지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크다.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그런 그가 말년 (1983년) 에 연재한 장편 대하 만화이다.


작품 내내 1980년대 당시 논란이 일던 '히틀러 유대인설' (이는 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을 바탕으로 사건을 전개하지만, 이는 맥거핀 (중요하지 않은 것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중요하게 보이게 만든 것) 에 불과하다. 오히려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광기어린 주변의 모습들이다. 작품의 배경은 193 ~ 40년대 일본과 독일,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추축국들이다. 각각 귀축영미 (귀신과 짐승같은 영국과 미국. 연합국을 비하해서 부르던 당시 일본 용어) 와 유대인을 때려 잡고 정의를 바로 잡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나, 실상은 그저 이권에 달려있을 뿐이다. 전쟁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해 고문을 하고 '비국민'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아무 것도 모르고 전쟁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소년단'에 집어 넣고 총으로 포로들을 쏘게 만든다- 작품 내내 이런 모습들을 비추면서 작가는 전쟁의 비인간적인 속성을 계속 고발한다.


비판은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피해자였던 유대인이 반대로 가해자가 된, 중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종 문제로 큰 핍박을 받았던 유대인들이 '신의 약속'을 걸고서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던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아이들에게 '유대인은 무조건 악'이라는 이미지를 심는다. 남는 것은 지금도 계속 벌어지는 참극과 피비린내의 연속일 뿐. 애초에 정의로운 전쟁은 있기나 한 것일까.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지금도 계속 전쟁이 벌어지고 국민들은 정부의 선전에 열광하고 민간인들은 죽임을 당한다. 참, '정의로운' 전쟁이다.


전쟁이 하나도 없는 세계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역사를 살아오면서 숱한 전쟁을 거치면서 살아왔고 때로는 자연과, 때로는 입장이 맞지 않는 진영과 싸워왔다. 그러한 본능을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남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전쟁에 임할 수는 없을까. 저 멀리 하늘 위 비행기에서 폭격 버튼을 누를 때 그 폭탄이 누군가의 꿈을 산산히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돌프에게 고한다 1 - 10점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세미콜론

아돌프에게 고한다 2 - 10점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세미콜론

아돌프에게 고한다 3 - 10점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세미콜론

아돌프에게 고한다 4 - 10점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장성주 옮김/세미콜론

아돌프에게 고한다 5 - 10점
데즈카 오사무 글 그림, 장성주 옮김/세미콜론

 

- 2009년 12월 22일,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에 만화 + 사회 칼럼형 기사 「코믹 소사이어티」 39화를 위해 쓴 글. 세미콜론(사이언스북스)의 모회사 민음사는 마음에 썩 들지 않지만, 브랜드는 참 마음에 든다. 올해 한국 만화는 「사우나맨」, 그리고 자사 사이트를 통해 연재한 최훈의 「락커두들」(현재 미출간). 딱 두 개만 나왔지만 그래도 단행본의 퀄리티가 워낙 출중한지라 남들에게 단연 추천하고 싶은 만화 출판사 중 하나.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나온지 20여년이나 지났지만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 해적판으로는 소개된지 꽤 되었지만. 번역, 편집, 디자인, 추가 요소 등의 면에서 심혈을 기울였다. 원래 학산문화사가 데즈카 프로덕션과 계약을 맺고 전집을 수입했었는데 정작 학산문화사가 「아야코」를 이후로 발간을 거의 중단했다면,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인 AK커뮤니케이션(「로스트 월드」, 「MW」등 출간)과 세미콜론이 데즈카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기존 메이저 출판사의 한계인건지.

 

이 작품의 백미는 단연, 가해자였던 일본인 피와 독일인 피가 반반씩 섞인 아돌프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였던 유대인 아돌프가 가해자가 되는 광경. 그렇다고 전자의 아돌프와 함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조건 피해자라면 그렇지도 않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할까. 작가는 그들의 투쟁을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사하는 것과 비슷하게 묘사한다. 전쟁반대론자로서, 데즈카 오사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