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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 그래, 이런 걸 기다렸다!

ⓒ DNA 프로덕션 · 시월네트워크 · CJ창업투자 · CJ엔터테인먼트 · 북21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감독 | 윤영기 기획 | 박순홍 이채관 기획프로듀서 | 장성연

목소리 출연 | 정선혜 은정 박신희 최한 손종환 안장혁 엄상현 이장원

제작 | DNA프로덕션 공동제작 | 시월네트워크 제공 | CJ창업투자 공동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북21

배급 | CJ엔터테인먼트 개봉 | 8월 19일 등급 | 심의 중

 

 

아울북 (북21의 임프린트) 에서 발간 중인 만화 시리즈「마법천자문」은 2003년에 1권이 나와 전국 아이들의 눈길을 훔치고 덧붙여 학부모의 지갑까지 털어가는 작품이다. 표면적인 주제인 '한자 학습'에 탄탄한 스토리가 가세하면서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가나출판사), 「코믹 메이플 스토리」(서울문화사), 「Why? 시리즈」(예림당) 과 함께 총 판매부수 1,000만부를 돌파한 이 시대 가장 잘 나가는 만화가 되었다. 한국 만화 판매의 현실 상 소위 '학습 만화'에 돈이 많이 쏠린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서유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캐릭터와 독자의 관심을 끌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없었더라면 이런 기적적인 기록은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연히 북21이 이런 대박을 가만 놔둘리가 없었고, 여러 가지 스핀오프 시리즈를 내놓거나 플래시 비디오 북, 뮤지컬, 닌텐도 DS용 게임을 만드는 등 여기 저기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괄목할 만큼의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이번 달 19일, 「마법천자문」의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이 선을 보인다. (이미 2006년에 '비디오 북' 컨셉으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나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존 만화의 컷을 약간 움직이게 한 다음 더빙한 것이므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거리가 멀다.)

 

장점은 '86분', 단점도 '86분'

 

극장판 「마법천자문 :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이하 극장판) 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장점인 동시에 한계인 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원작의 1 ~ 6권에 해당하는 분량을 빠른 속도로 담아낸다. 원작의 큰 틀 (캐릭터, 기본 설정) 은 준수하지만 86분의 상영 시간에 맞춘 빠른 전개와 더욱 강렬한 내용 전달을 위해 일부 설정에는 변화를 주거나 삭제 /  축약하는 등 과감하게 원작에 손을 대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본 원작의 캐릭터가 옥동자이다. 캐릭터가 완전히 들려 나갔으니. 두 번째는 콩도사, 세 번째는 여의필. 이 둘은 플롯이 매우 많이 삭제되었고, 콩도사는 배역명도 스탭롤에 없다.) 약간 모험적인 시도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DNA프로덕션의 시도는 매우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원작과는 다른 전개를 풀어 나가면서도 나름대로의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원작에는 엑스트라급 캐릭터였던 돈돈 (박신희 역)에게 많은 비중을 선사해 기존 캐릭터 옥동자가 빠진 위치를 메우는 동시에 오공 (정선혜 역) - 삼장 (은정 역) 의 관계에 끼어들어 흥미로운 삼각 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에 더 큰 극장판 만의 특이 요소를 주는 것이 삼장의 캐릭터 변화이다. 원작의 삼장이 여성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극장판의 삼장은 노력파의 모습을 강조하는 동시에 자기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성격을 뒤튼다. 중반에 벌어지는 오공의 '파워업 이벤트' 에서 삼장이 오공의 성장에 초조하고, 긴장하는 모습은 원작엔 없었던 것이다. 기존 캐릭터의 이미지에 지나치게 빠져든 팬에게는 아쉬운 소식일지도 모르나, 과도하게 원작에 충실해 극의 흐름을 진부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은 조치이다. 오히려- 극장판의 모습에 호감을 가질 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86분의 시간이 최대한 모든 사건을 넣으려다 보니 좀 더 길게 끌고 나가야 할 장면을 너무 짧게 넘기고 만다. 극장판의 주된 관객층이 될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삼장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 장면이나 후반부의 중요 '아이템'인 여의필에 대한 씬은 좀 더 플롯의 길이를 늘이는 편이 스토리의 원활한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86분'은 스피디한 전개의 힘인 동시에, 일부 장면의 스토리텔링에 해를 주는 아쉬운 걸림돌인 셈이다.

 

단점을 상쇄하는 작화와 디자인, 스토리텔링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극장판은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2D 캐릭터에 2D에 일부 3D를 조합한 배경을 사용하는 형식으로 촬영되었는데, 3D가 2D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한 장의 그림을 만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2D + 3D 기법의 애니메이션이 관건이 '3D 오브젝트 + 배경이 2D에 조화롭게 배치되는 것' 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대단한 성과를 얻은 셈이다. '매의 눈'으로 극장판을 보지 않는 이상, 3D는 눈에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극장판용으로 새롭게 그려진 캐릭터 디자인도 훌륭하다. 강원영 작화 감독이 보도 자료에 "이전에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캐릭터 디자인" 이라고 밝혔듯이, 극장판의 디자인은 원작의 동글동글한 분위기에서는 크게 벗어나있다. 그러나 각 캐릭터의 성격이 잘 드러나도록 재구축되었다. 이런 변화를 통해 많은 이득을 본 캐릭터가 혼세마왕 (최한 역) 이다. 애당초 처음 극장판의 포스터 / 일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는 '너무나도 많은 변화'로 인해 "나의 혼세마왕을 돌려줘-!" 라는 절규의 댓글이 올라왔을 정도로 큰 논란이 일었지만, 작 중에서는 행동 하나 하나마다 분위기가 느껴지는 연출에 성우 최한 특유의 카리스마 연기가 조합되면서 원작에 버금가는 카리스마를 만들어 내었다. 기본적인 작화면에서도「고스트 메신저」의 스튜디오 애니멀, 「스피어즈」「나롱이 시리즈」의 스튜디오 카브가 참여해 시원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영빈과 양광섭이 작업한 경쾌한 O.S.T.도 작화와 배가되어 뛰어난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앞서 한정된 상영 시간 내 다량의 스토리 전달을 위해 일정 부분의 스토리텔링이 희생되었다고 평했으나, 큰 틀에서의 스토리텔링이 희생된 부분을 메꾼다. 천방지축 방약무인이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자와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자 간에 발생하는 미묘한 각. 그리고 이 둘을 메꾸는 자. 각각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을 지닌 캐릭터들이 갈등하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강대한 적을 없앤다. 소년 만화의 유명한 클리셰지만 클리셰를 유연하게 처리해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남은 것은, 세심한 끝마무리와 흥행 대결

 

개봉을 하기에 약 2주 간의 기간이 남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이번 극장판은 근래 한국에서 제작 ·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거기에 큰 판매 실적을 거둔 원작까지 결합되었다. 이제 이 막대한 '체력'을 가진 작품에게 남은 관문은 세심한 관리와 다른 작품과의 흥행 대결이다. 지난 시사회 (8월 3일) 에서는 기획자이자 제작사 DNA프로덕션의 대표 박순홍 씨가 영화 시작 전에 직접 "현상에 문제가 있어, 후반부에 초점이 맞지 않는다." 라고 할 정도로 작품 후반부의 초점이 흐렸으며 초반부의 캐릭터 음성이 다른 BGM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거나 일부 장면의 경우 아예 채색이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눈에 보이는 등 자잘한 흠이 보인다. 박순홍 씨가 "이번 시사회에서 발견된 문제를 개봉 전까지 수정할 예정이다." 라고 밝혔지만, 꼼꼼하게 수정하지 않으면 중대한 옥의 티가 될 것이다. 또한, 초등학생에게 버거운 한자가 군데군데 많이 나와서 당초 목표 중 하나였던 '어린이를 위한 한자 교습'의 의미가 일부 퇴색된 느낌이 든다. 초반에는 그런 한자의 경우 자막 처리를 했으나, 후반부에는 거의 자막 처리를 하지 않는 등 한자 자막 처리에 대한 일관성이 없는 것도 문제다.

 

또한 다른 작품과 '맞서 싸워' 얼마나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느냐- 도 관건이다. 올해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의 큰 핵인 「토이스토리 3」와는 약 2주라는 큰 시일차를 두고 개봉해 정면 대결을 피했지만, 대신 극장판이 개봉하는 8월 19일 전후로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영화「라스트 에어밴더」와 실베스터 스탤론이 제작 · 연출 · 주연을 모두 맡은 뜨거운 액션 영화「익스펜더블」이 개봉한다. 「익스펜더블」의 대상 관객이 극장판과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어 다행히지만, 대신 「라스트 에어밴더」는 원작 「아바타 : 아앙의 전설」이 EBS와 Nick채널을 통해 방영되어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대상 연령 역시 극장판과 비슷해 어린이 + 부모 관객을 놓고 치열한 대결이 벌어질 것이 예상된다. 오랜만에 나오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작인 만큼, 잘 버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 100만 관객 돌파 같은 의미있는 이벤트가 터지면 금상첨화고.

 

 

여담1. 국내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작화 / 배경 작업에서 한국의 명소들이 많이 참고되었다. 단양, 담양, 함양 일두고택, 하동 최참판댁, 부산 범어사, 남해 보리암, 통영 소매물도, 부산 용궁사, 고창 청보리밭, 양산 통도사, 하동 송림, 안동 하회마을, 합천 해인사, 경주 불국사가 참고된 곳인데, 작품을 보면서 어떤 곳이 어떤 장면의 모티프로 쓰였는지 살피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여담2.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사는 DNA프로덕션이다.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에 창립되어 국내외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서고 있는 중견 제작사다. 최근에 개봉한 작품으로는 한국 최초 '장편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으로 반짝 화제가 되었던 김수로 주연의 「그녀는 예뻤다」(설상가상으로 배급망이 CGV의 독립 영화 상영망인 '무비 꼴라쥬'를 타는 바람에 흥행 실적이 무척 처참했다.) 와 제작사 최초의 실사 작품인 (!) 부지영 감독, 공효진 · 신민아 주연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있다. (역시 이 작품도 독립 영화이다.) 실력은 있으나 운이 없었던 그들이 오랜만에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강력한 체력을 갖추고 서있다. 잘 버텼으면 한다. 덧붙여 윤영기 감독이 보도 자료 서면 인터뷰에서 밝힌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수가 많지 않은 현 시장 상황에서 흥행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롤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라는 소원이 꼭 이뤄지기를. 작품 끝에서 살짝 속편을 암시하는데, 꼭 나왔으면 하니까.

 

여담3. 시사회 상영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말세대장 역의 성우 안장혁 씨, 삼장 역의 성우 은정 씨, 돈돈 역의 성우 박신희 씨,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연기하지는 않으셨지만 박신희 씨와 부부 관계이신 성우 류승곤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볍게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안장혁 씨 께서 하던 말. "오랜만에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연기를 한거네요. (이 영화가 잘 되서) 계속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로부터 캐스팅이 들어왔으면 하는데. (웃음)" 정말,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이 글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의 기사 용도로 작성된 것입니다. 현재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의 내부 사정 및 서버 이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사 송고가 불가, 부득의하게 기자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기사를 게재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2010년 8월 12일 일부 수정.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10

 

PIFAN 2010 Day 2 - 우리 이웃의 범죄 : 가족, 사회, 그리고 범죄

ⓒ ㈜뮤덴스 / 영화사 天地 / 백호림 / 사과나무픽쳐스

우리 이웃의 범죄 Sin of a family

감독 | 민병진 주연 | 신현준 이기우 왕희지 전노민

2010 | 한국 | 104분 | HD | 컬러

 

시놉시스 (PIFAN 사무국 제공)

남자아이의 사체가 발견된다. 하지만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아이는 곧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몇 달 후, 형사들은 우연히 TV 미아찾기 프로그램에서 남자아이의 사진을 발견하고 아이의 부모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이의 인적사항을 거짓 기재하고, 유전자 감식테스트에 아들머리카락 대신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제출한 “천사” 같은 가족들이 살고 있는데

 

 

제천경찰서의 조창식 형사 (신현준 役).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만날 술이나 마시고 몇 년째 경장에서 머무르면서 승진도 못 하고 있다. 게다가 아들 경수는 (노영학 役) 불 같은 성격에 싸움 잘 하는 것도 똑 빼닮아서 경찰서에 들르는 것이 일상이고, 최근에는 마을 아주머니와 간통한 것이 걸리는 바람에 아내와 이혼까지 해버렸다. 그야말로 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는 양반.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야산에서 남자 아이의 변사체가 발견되면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원제가 <가족 사진> (그리고 이 제목은 영화 작중에 나오는 동요이기도 하다.) 이었던 <우리 이웃의 범죄>는 얼핏 보기에는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 <우리들 이웃의 범죄>와 이름이 비슷해 (사실, 거기서 따온 것 같기도 하다.) 심리 스릴러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전작 <이것이 법이다> 에서 보여온 민병진 감독이 장기를 발휘한 사회파 범죄 수사물이다. 범죄에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불행한 가족사가 드러나고 이 과정에서 수사하는 인물의 가족사도 조금씩 드러나는 전개를 펼친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수사 과정에서 긴장감을 놓치 않고, 가끔 유머도 주면서 반전도 있지 않는다. 추리물과 사회 고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영화에는 비중이 큰 두 가족이 등장한다. 제천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자폐아 정명환 (조상현 役) 의 가족들, 조 형사의 가족들. 정명환의 아버지 정인수 (전노민 役) 와 어머니 고영숙 (왕희지 役) 은 전형적인 하층 서민이다. 한 때 부품 사업으로 돈을 좀 만졌으나 부도가 나는 바람에 택시 기사를 하고, 부인도 없는 살림을 보태기 위해 여기 저기를 전전하지만 워낙 빚이 많은터라 별 소용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폐증세를 가진 아들 명환이 하루도 빼지 않고 사고를 치는 바람에 내쫓기기 일수다. 감독은 이 가족의 딜레마에 초점을 맞춘다.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아들을 버리느냐, 그래도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계속 지키느냐. 영화의 주 사건은 이 딜레마에서 출발했고, 이 딜레마는 결국 끔찍한 결말을 낳고 만다. 그것이 어찌보면 이 사회에서 아들을 위한 유일한 행동일지도 모르겠지만. 조 형사도 아내와 이혼하고 같이 사는 아들 경수가 계속 말썽을 부려 골치 아프지만 그래도 결코 관심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조 형사가 이 가족의 슬픈 사연에 자연스레 빠져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 형사는 이 가족에게 감화되어 좀 더 가족을 챙기기로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지만 영화 종반부에 부서를 좀 더 널널한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 결정했으니 미담인지도 모르지만, 헌데 어쩌나. 이미 감화의 대상이 된 한 가족은 제대로 버티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형사물 (그것도 버디!) 의 문법을 빌려 표면적으로는 범죄 수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실상은 사회가 방치하고 있는 한 가족이 어떻게 바스라지는 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다. 지금도 주변에서는 각종 질환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가족들이 수많이 널려있고, 사회적인 천대와 물질적인 천대라는 이중고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와 정부는 개인 차원에서의 해결을 고집한다. 개인이 사회와 떨어져 살 수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런 짐들을 나눠 받기를 거부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영숙이 행했던 일은 현실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엄마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끔찍한 일이어서 잠시 보류하고 있는 일인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은 픽션보다 더 잔혹하다.

 

여담. 작 중에서 고영숙의 기록을 통해 정명환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 지를 보여주면서 동네 바보 현승이 (조현승 役) 정명환을 괴롭히는 장면이 나온다. 흔히 장애인은 약자고, 무조건적으로 선한 캐릭터로 나오는 것이 전형적인 이미지인데 이 영화에서는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을 괴롭히는 장면을 내보냄으로서 (오히려 예비 장애인 - 즉, 일반인 - 이 장애인을 괴롭히는 것은 물리적인 것보다는 의식적으로 꺼려하는 것으로만 보여준다.) 전형적 상에서 탈피한다. 봉준호의 <마더>에 이어서 전형적 이미지에서 탈피를 시도한 훌륭한 시도이다. 감독에게 박수를.

 

 

- 본 기자가 사정 상 사전 등록을 하지 못해 데일리 프레스 카드 밖에 발급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사는 계속 시사실 (스크리닝 룸) 에서 볼 수 있는 영화, 그리고 행사를 위주로 작성할 예정입니다. 독자분들의 양해바랍니다.

 

- 이 포스팅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http://www.1318virus.net) 의 기사로 제작된 것입니다. 현재 서버 / 시스템 이상으로 기사 송고가 되고 있지 않으나 정상화가 되는 대로 송고할 예정이니 무단 전재 / 수정을 금합니다.

PIFAN 2010 Day 1 : 엑스페리먼트 - 폭발적인 전개, 처지는 결말

ⓒ Inferno Entertainment / Natural Selection

 

엑스페리먼트 The Experiment

감독 | 폴 쉐어링 주연 | 애드리언 브로디, 포레스트 휘태커

2010 | 미국 | 96분 | 35mm | 컬러

 

시놉시스 (수입사 새인컴퍼니 - 구 성원아이컴 - 제공)

트래비스(애드리안 브로디 役)는 사랑하는 연인 배이(매기 그레이스 役)와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한 목적으로 무작정 한 프로젝트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 실험은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 남자들을 간수와 죄수 그룹으로 나눈 다음 2주간 가상의 감옥 체험을 하는 것. 벤지, 닉스등과 함께 죄수 그룹에 들어간 트래비스는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실험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실험 2일째, 사소한 다툼이 간수 그룹에 속해 있던 배리스(포레스트 휘태커 役)와 체이스(캠 지갠뎃 役)를 자극하며 실험 참가자들은 점차 간수와 죄수의 역할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화하는 배리스 집단과 그에 반항하는 트래비스 집단. 실험 5일째, 첫 번째 살인이 발생하면서 가상의 실험은 점차 파국의 현실로 치닫게 되는데…

 

이 영화의 원작은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의 2001년 동명의 작품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14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1971년에 실시한 집단 실험을 들 수 있겠다. 실험 자체가 인간의 성향에 대한 (그리고 사회학 / 심리학 실험의 윤리 문제에 대한) 많은 논란거리를 낳았고 이를 다룬 2001년 작품 역시 큰 화제를 낳았다. 헐리우드는 이를 어떻게 재배치시켰는가.

 

<프리즌 브레이크>로 많은 시청자를 흔들어 놓았던 폴 쉐어링은 원작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첨가시켜 관객들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주 정부의 복지 예산 감축으로 직장에서 잘리게 된 히피 트래비스, 42살이나 먹었지만 아직도 어머니에 눌려 사는 배리스, 대마초를 피우고 여자와 한 판 뜰 생각에 몰두하는 헬웨그, 몽상과 저혈당 증상에 빠져있는 벤지. 크게 이 네 명의 캐릭터에 실험에 참가할 이유를 제시하고, 이들이 죄수와 간수로 나뉘고 나서 어떤 식으로 행동이 변하는 지, 그리고 눌려왔던 욕망이 폭발하는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감독은 이 '폭발의 순간'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전작 <프리즌 브레이크> 보다 더 강렬한 자극을 표현한다. 간수가 욕정을 못 참아 심약한 죄수 한 명을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로 끌고 가고, 다른 간수는 교수가 만들어낸 가공의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환상에 취해 마음껏 폭력과 모욕을 행사한다. 누군가가 창조한 세계에서 모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돈의 압박에 눌려 저마다 각자의 환상에 빠지고 만다. 다만, 폭발적인 초중반 전개에 비해 후반부 전개는 통쾌하면서도 약간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나름대로 감독이 해피 엔딩을 만드려고 한 시도로 보이나, 차라리 이보다 더 담담하게 끝을 맺었으면 감독이 전하려는 바가 더 살지 않았으려나. 종반부의 "(인간이 원숭이보다) 상황을 변하게 만들 수 있으니 낫다"는 트래비스의 말은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다소 결말이 받쳐주지 못했다.

 

또한 소재가 된 실험 / 원작에서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폭력과는 큰 관계가 없는 '일반 시민'들로 설정되어 있으나 이번 작품에서는 배리스와 헬웨그가 사실 폭력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트래비스에게도 폭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여지를 줌으로써 '사람은 상황에 따라 행동이 변한다.'는 주제가 아닌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이 특정 상황이 놓이면 그 성향을 분출한다.'는 주제로 변해 버렸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나, 2001년 작품을 생각하고 이번 작품을 볼 사람들은 그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잡담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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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커뮤니케이션, 웹툰에서 출판 만화로

ⓒ Daum Communication

 

지난 10일, 포털 사이트 '다음' 등을 운영하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 최세훈) 이 30일에 열리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업 목적에 만화 출판 · 광고 · 부동산 임대 · 게임을 추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네 업종 모두 기존 사업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좀 더 깊게 파고들면 현재 상황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다. 만화 출판은 현재 '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는 웹툰의 출판화를 위해, 광고는 올해 지난 2월부터 지하철 1 ~ 4호선 역사에 설치되어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 키오스크 '디지털뷰' (DigitalView)의 메인 페이지에 들어가는 광고 사업을 위해, 부동산 임대는 제주도로 본사 이전을 결정하고 나서 사용을 중단한 기존 건물의 판매 관리를 위해, 게임은 경쟁사 NHN의 '한게임'처럼 높은 페이지뷰를 이용해 게임 관련 수익 (캐쉬 아이템 등) 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출판 만화 시장 진출로 일부 만화가들은 만화 시장의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한국 웹툰 시장에서 네이버 · 야후코리아와 호각세를 겨루고 있는 입장이고, 국내 가장 많은 종수의 만화를 펴내고 있는 대원씨아이와 당기순이익(2009년 9월 기준)을 비교해 볼때 다음커뮤니케이션은 459억 3385만 6천원 이익, 대원씨아이는 1억 7957만 7229원 손해로 확연한 자본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참조)

 

그러나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웹툰과 출판 만화가 시장 · 형식적인 면에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이번 사업 진출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이미 기존 웹툰의 단행본 판매 시장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으나 강풀 · 강도하 등의 인기 작가를 제외하고는 수지 타산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시장이 형성된 이유에는 출판사들의 안이한 마케팅도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웹툰 형식은 스크롤에, 출판 만화는 페이지 넘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마우스휠로 술술 넘겨보는 데 최적화된 만화를 억지로 책에 우겨 넣으니 만화의 형식적 재미가 죽어버린다.

 

거기에 대부분의 웹툰이 무료라는 사실도 웹툰 단행본의 낮은 판매량에 큰 기여를 한다. 몇몇 만화의 경우 계약에 의거해 출판과 동시에 인터넷 게재를 중단하나, 대부분은 페이지뷰 수익 문제 등으로 인해 게재를 중단하지 않고 설사 게재를 중단하더라도 블로그 / 미니홈피를 통한 불법 복제로 인해 독자들이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최근 완결된 허영만 화백의 「식객」이나 강도하의 작품들처럼 단행본을 위한 추가 요소를 넣거나, 단행본용으로 완벽하게 재편성하지 않으면 높은 판매량을 달성하는 것은 꿈에 가까운 일이다.

 

이미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작년 6월 9일부터 29일까지 3주 동안 Hun의 「데자뷰」, 캐러맬의 「남아돌아」, 김상수의 「박대리는 사회부적응자」를 콘텐츠 관리 전문 자회사 '컨텐츠플러그'에서 한정판을 예약하되, 300부를 넘어야지만 실제로 출간하는 형식으로 판매를 시도한 전력이 있다. 웹툰 단행본 시장에서는 흔치 않은 '예약 한정 판매' 였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홍보 부족 등의 이유가 있었지만 세 웹툰 모두 예약 150부를 넘지 못해 출간은 성사되지 못했다. 만화 출판 시장에 어울리는 마케팅, 출판 만화 시장에 어울리는 콘텐츠 개발 · 확보가 선행되지 않으면 이번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출판 만화 시장 진출은 작년과 같은 쓰라린 결과를 낳을 건 뻔한 일일 것이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10년 3월 23일 기사. 오랜만에 올리는 기사였다.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점, 웹툰과 출판 만화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단지 만화라는 점만 같을 뿐. 그 이외의 것은 형식도, 배포 방식도 다르다. 그 점을 유의하면서 사업을 전개할 것.

「그녀의 완벽한 하루」 : 직설적으로 보는 여자, 그리고 남자의 일상 (그리고 기타 보론)

 

기획 의도에는 온갖 훈훈한 이야기를 올려 놓고, 정작 현실과 백만 광년 이상 떨어진 본편을 선보이는 드라마의 '일상'을 보자. 만날 힘들다, 어렵다면서 투덜대는 '중산층' 그들은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 마당과 정원이 딸린 2층 짜리 단독 주택에 살고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의상을 입고 생활한다. 가끔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괜찮다. 끝은 항상 좋게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삶을 보여준다고 해놓고서 미화된 삶을 보여준다.

 

이런 류의 드라마 /  애니메이션 /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팍팍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서 보는 것이리라.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는 쾌감은 '비현실적' 드라마가 존재하는 원초적 목표이다. 하지만 비현실이 있으면 무릇 현실도 있어야 하는 법. 짜증나고 우울할지라도 현실 자체를 직접적으로 보지 않으면 현실은 절때 바뀌지 않는다. 비루한 주변이 싫어 환상만 느끼면, 현실은 더욱 비루해진다. 그리고 다시 더 큰 환상을 찾게 된다. 빙빙도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대안 만화와 주류 만화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만화가 채민은 첫 단편집「그녀의 완벽한 하루」를 통해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 시 한 편을 작품 첫머리에 붙이고, 작가가 일상 생활과 연상한 내용이 술술 흘러간다. 보통의 20, 30대가 겪는 단조롭고 가끔씩 짜증나는 일상들, 그리고 주인공의 심리들. 만약 이 만화가 보통의 로맨스 만화나 액션 / 스릴러 만화였다면 일상 후에 바로 중대한 사건이 터졌겠지만, 채민은 '리얼리즘' 만화가이다. 현실은 바뀔 생각을 보이지 않고 막막하게 흘러만 간다. 소소한 휴식 같은 것은 없다. 자살이란 긴 휴식만 있을 뿐. (「perfect day」)

 

당연한 폭력과 일방적인 사회, 탈출구는 없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맨 마지막 에피소드 「perfect day」를 제외하고 두 에피소드가 묶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서로를 모른다. 단지 공통점이 있다면 주변에서 한 번이라도 마주친 적이 있었다는 것과 현실에 힘들어하지만 바꾸려는 노력은 차마 하지 못한 채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 언어적 - 제도적 폭력과 일방적인 사회 관계는 무척 당연하게도 - 일말의 짜증은 있지만 - 흘러간다.

 

박봉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제대로 된 결혼을 할 생각도 없는데, 직장 동료들은 자꾸만 결혼을 부추기고 (「비 오는 날」)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며느리는 낳기 싫은 아이를 억지로 낳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두 번째 아이」) 권위적인 사회는 개인을 각박한 환경으로 몰아넣어 스스로 목숨을 잃게 만든다. (「perfect day」) 남녀 관계 또한 서로에 대한 애정없이 지금 이 순간 만을 위해 치닫는다. (「비 오는 날」, 「그 여자는 거기 없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노력이 없지는 않다. 노래방에서 크게 소리를 지름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하고 (「나는 천국으로 간다」), 자신과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후배와 하룻 밤의 거사를 치른다(「선택」). 제도화된 일상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내면을 다지기 위해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시도도 있다. (「행운목」) 그러나 현실이 냉엄하듯이, 채민은 그들에게 결코 희망을 주지 않는다. 친절로 포장한 조롱, 예기치 않은 사고가 그들을 반긴다.

 

잔혹한 현실에서 노래하는 역설적 희망

 

"독자를 우울하게 만드려고 작정한 작품이냐." 는 비판이 나올 수 있겠다. 맞다. 이 작품은 독자를 심히 불편하게 만든다. 제목의 '완벽한 하루'라는 말과 유려하고 부드러운 그림체에 혹해서 샀다가 매우 심각하게 전개되는 단편들에 학을 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채민은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전달한다. '희망'이 필요하다는 수사이다.

 

개인이 결혼, 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세상 (「비 오는 날」, 「두 번째 아이」), '옷이나 파는 주제'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학벌과 외모, 재력에 상관없이 존중받는 세상 (「나는 천국으로 간다」, 「선택」, 「perfect day」), 억압된 환경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개인이 태어나는 기반이 마련된 세상. (「나비」, 「행운목」) 비록 우울하고 직설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지만, 직설의 이면에는 이런 세상들에 대한 소원과 희망이 들어있다. 단지 그것들을 미화시켜서 표현하지 않고, 우리 주변의 삶으로 환원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희망을 드러내는 방법은 작가마다 모두 다르다. 채민처럼 리얼리즘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고, 밝은 전개와 해피 엔딩을 통해 전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런 방법들은 각기 장단이 있기에 무엇이 더 낫다고 판별할 수는 없다. 다만 굳이 고르자면 전자를 고르겠다. 현실에 없는 희망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고, 팍팍함을 무리하게 감동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주변의 모습을 세세히 파고드는 점에서 '리얼리즘'은 2010년 현재에도 의미를 갖는다, 독자들이 답답해 할지라도.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에 연재하는 만화 + 사회 칼럼 「코믹 소사이어티」 제 47화, 2010년 3월 12일 게재.

 

▶ 만화가 채민 누리집 http://www.chaemin.net/

 

기사에서 못 다했던 말을 몇 가지 첨언하자면, 이 만화는 근 2 ~ 3년간 창비가 벌이고 있는 '출판 만화 시도'의 좋은 성과 중 하나입니다. 2005 ~ 6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획으로 펴낸 만화가들의 단편집 「십시일반」, 「사이시옷」을 낼 때만 해도 단기적인 시도로 그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그 후로도 좋은 작품을 계속 내는 겁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최규석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인터넷 상을 뜨겁게 뒤흔들었던 동명의 작품이 실린 단편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길찾기, 초기 장편 「습지생태보고서」는 거북이북스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초기 이후 작품은 전부 창비에서 나왔죠. 단편 「창」이 실린 「사이시옷」이나, 『한겨레21』에서 연재한 「대한민국 원주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용으로 제작되었고 단행본용으로 정말 귀중하고 가치있는 부록 만화를 첨부해서 나온 「100℃」. 지금 제작 중인 SF 장편이 창비나 바다출판사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창비에서 나올 확률이 크다고 봅니다.

 

즉- 가능성있는 작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투자하는 후기 만화 출판 시장 진출 회사가 창비라는 것이죠. 앞서 언급한 단편집 두 개를 제외하고 현재까지 나온 만화 리스트를 살펴보면 오영진 (「평양 프로젝트」, 「수상한 연립 주택」 - 『창비주간논평』에서 연재되었습니다.), 최규석 (아까 리스트 말했죠? 하하.), 그리고 채민. 『창비주간논평』에 김태권의 「20세기 연대기」가 연재되었으니 김태권도 작가진으로 칩시다. 오영진 / 최규석 / 채민 / 김태권 모두 2000년대에 주목받고 있는 만화가들입니다. 김태권이 길찾기 / 한겨레출판 / 돌베개 등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만 제외하면, 세 작가 모두 창비에서 지속적으로 컨택을 하고 출간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 만화에 진출하려는 회사는 창비의 이런 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잡지 계획이 없는 출판사일수록!) 창비의 만화 특색은 1) 사회적이고 2) (한 작가든, 주제든) 집중적입니다. 즉- 스펙트럼층을 확실히 찌르고 들어간 거에요. 그러니 판매량도 높고 (「100℃」가 만 부를 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평가도 좋은 만화가 나올 수 밖에. 특색을 확연히 살리는 만화를 집중적으로 출간하십시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사 또는 포스팅으로 더 자세히 쓰겠습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 - 10점
채민 글.그림/창비(창작과비평사)

진실된 이 그 누구인가 : 「2인실」

 

한 남자가 알람 소리에 침대에서 깨어난다. 아직 잠에 덜 깬채 주위를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이상하다. 집이 아닌 난생 처음 보는 곳이다.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지하실. 유일한 탈출구인 철문은 단단히 잠겨져 있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열쇠로 철문을 열고 가니 컴퓨터가 남자를 맞이 한다. 잠시 후 컴퓨터가 저절로 켜지고, 가면을 쓴 사람이 모니터에 뜬다. 그리고, "당신… 사람 죽였지?" 「킬 더 킹」, 「누가 울새를 죽였나?」로 화제의 작가에 등극한 마사토끼 작가 (이하 마사토끼) 가 글을 맡고, 신군이 그림을 맡은 신작 「2인실」의 도입 부분이다.

 

마사토끼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진다. 속히 '병맛'이 철철 넘치는 개그물이거나, '병맛'과 긴장감이 적절히 섞인 판타지물 아니면 '병맛'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인물 간에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추리 · 스릴러물이거나. 세 장르 모두 특성이 제각기이고 어느 하나를 제대로 다루기에도 쉽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마사토끼는 이 모두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2인실」은 맨 뒤의 분류에 속하는 작품이다. 「누가 울새를 죽였나?」와 비슷한 성향이다. 상황 설정도 비슷하다. 밀실에서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말다툼을 벌이고, 주된 핵심 소재는 범죄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누가 울새를 죽였나?」는 스스로 자발적으로 밀실에 들어가 의심과 돈에 눈이 멀어 서로를 살육했다는 것이, 「2인실」은 강제적으로 밀실에 갇혀 더 복잡한 의심으로 사건을 전개한다는 점이다.

 

특히 스토리를 전개하는 사람을 살인자로 몰린 주인공 남자로 설정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약간 미심쩍지만 날카로운 증거로 남자를 살인자로 지목한 가면인간이나, 살인자로 몰린 남자 둘 다 독자들에겐 믿기 힘든 가운데 모든 사건을 주인공이 보게 만들어 이야기를 꼬이게 만든다. 어찌 보면 자신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주인공 남자의 말이 맞는 듯 하지만 곧 가면인간은 그에 맞서 다른 증거와 논리를 내놓는다. 둘 중 하나만이 진실일 수도 있지만 둘 다 맞을 수도,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주인공 남자 대 가면인간'의 두뇌 게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자 대 작가'의 두뇌 게임인 셈이다.

 

작중에 제시된 '살인'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사회상이 담겨 있다. 먼저 공격하지 않고 유인해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소매치기를 폭탄이 든 지갑으로 유인해 폭사하게 만들고, 락커룸에 볼트 폭탄을 장치하고서 털이범들의 얼굴에 잔뜩 볼트가 박히게 만든다. 어떻게 생각하면 시민들의 재산을 훔치는 범죄자들에게 단죄를 내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마냥 죽이는 것까지 옹호할 수 있을까. '범죄에 대한 처벌'과 '또 다른 범죄' 사이에 벌어지는 '제 2의 두뇌 게임'이다.

 

근래 연재되는 웹툰들이 예전에 비해 서사성이 증대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웹툰은 일상 · 에세이에 머무르고 있으며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었다고 하는 작품들도 세세히 살펴보면 엉성한 구조에 그친 것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특히 추리 · 스릴러 · 두뇌 게임은 국내에서는 희귀 장르에 속할 정도로 작품이 매우 적게 나오는 편이다. 비록 포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부족한 만화 전문 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작가가 꾸려나가는 치밀한 논리와 대결이 준수하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지하실 남자와 가면인간, 과연 누가 이 게임에서 빛을 맛보게 될 것인가.

 

 

 

- 2010년 2월 24일,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에 연재 중인 칼럼 「코믹 소사이어티」 제 46화로 쓰여진 글. 네이버에 연재 중인 「커피우유신화」에 비해 이 작품은 「툰도시」 에 연재 중이어서 상대적으로 묻힌 것이 아쉬울 따름. 다만, 전자가 판타지틱한 병맛 작품인데 비해 이번에 다룬 작품은 병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국내에서는 찾기 어려운 고품격 스릴러이다. 이 두 개의 작품이 전부 같은 작가의 머리속에서 나왔다는 것이 대단하다.

 

덧붙여 여담, 원래 이 작품은 풀빵닷컴에서 마사토끼가 직접 그려서 (그러니까, 그림판에 대충 그린 듯한 스타일) 연재 중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모종의 사유로 연재가 중단되고. 대신 네이버 웹툰에서 원사운드 (TIG 카툰의 원사운드 맞다!) 콘티 / 배분, joana의 그림으로 연재를 추진했으나 … 불발. 결국 1년 반 후에 툰도시에서 신군의 작화로 연재가 결정되었다.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지지부진한 준비 끝에 드디어 빛을 (그러나 연재 장소가 워낙…) 보게된, 참 귀한 작품이다.

만화는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이미지 소스는 네이버 옛날 기사 아카이브에 있는 기사 중 '만화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 메인 이미지. 웃기지도 않는다.

 

며칠 전 만화 칼럼니스트를 하고 있는 지인이 겪은 일이다. 어떤 사람과 함께 앉아 말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만화를 갖고도 칼럼 같은 걸 쓸 수 있다니 놀랐네요. 만화는 저급 문화라서 그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만화가 정말 저급 문화인지는 둘째치고, 비평의 대상에 차등을 두는 것에서 기가 막혔다.

 

이런 인식은 이미 주변에 흔하게 펴져 있다. 나 또한 앞서 지인이 겪은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만화로 비평문을 쓸 수 있냐"는 소리를 여럿 들어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볍게 "좋아서 하는 일인데"라고 받아 넘기지만 솔직히 기분은 매우 착잡했다. 그런 분들의 인식대로라면 클래식이나 미술같은 속히 '고급스럽다'고 일컫는 분야에만 비평이 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영화나 TV 드라마 비평을 보면 깜짝 놀라 혼절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비평을 할 수 있는 문화의 대상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정해져 있지 않다. 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에 대해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그 의견을 정제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한 것이 리뷰 · 비평 · 평론이다. 오히려 문화는 적절한 비평을 통해 발전한다. 대표적으로 영화계의 사례를 들 수 있다. 90년대 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소개 기사나 배우의 인기를 주로 소개하던 영화 기사는 씨네필(cinephile, 영화광을 일컫는 영어 단어)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씨네21』과 『KINO』(키노)의 등장으로 일대 변혁을 맞았다. 영화에 대한 심도있는 비평과 담론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단순하게 흥행만을 노린 영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서서히 평론가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가 점차 쏟아져 나왔고 결국 한국 영화계는 2003년, 르네상스를 맞게 되었다. 단순한 유희거리로 치부받던 영화는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만화도, 대중 음악도, 인터넷 문화도 적절한 비평이 공존해야지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다. 단순히 보도 자료에 의존하는 홍보성 기사, 편견에 사로잡혀 무작정 까고 보는 비난성 기사가 계속 쏟아져 나올 수록 그 분야는 점점 생기를 잃는다. 칭찬과 비판이 호응해 콘텐츠 제작자와 수용자가 성찰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즉, 비평은 문화에 있어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화나 대중 음악 등이 평론의 가치를 인정받고 발전한데 비해 만화의 평론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자동차 몇 만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만화영화 하나를 수출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립서비스를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만화를 '불량하다'고 비하하는 이중 잣대는 이런 상황에 큰 영향을 미쳤다. 90년대 초중반에 한참 만화계가 성장 구도를 달리고 있을때 이곳저곳에서 만화 평론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한국만화평론가협회를 결성했지만 청소년보호법 사태 등으로 인해 만화에 대한 시선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곧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었다. 활발했던 평론이 한풀 꺽이면서 동시에 만화에 대한 이슈도 인기를 상실하고 말았다. 신문과 잡지에서 만화 리뷰는 커녕 기사 하나 찾기 힘든 상황이다. 2010년 현재 만화 · 소년 · 아동 대상 매체를 제외하고 정기적으로 만화 리뷰 · 평론을 게재하는 매체는 본지를 포함해 <기획회의> · <씨네21> · <전자신문> 등 채 열 곳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만화를 중심으로 한 '가벼운' 문화 웹진 <컬쳐밤>(CultureBomb)이 오는 3월 2일 창간을 앞두고 있을 뿐이다.

 

모든 문화는 서로 급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유한 성격을 지닌 만큼 각각의 성격을 콕 집어내어 분석할 수 있는 좋은 평론이 당연히 필요하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문화에 억지로 급수를 매기고 평론을 하찮게 취급하는 사람은 계속 나올 것이다. 개인의 행동을 함부로 방해할 수 없지만, 그 행동이 몰상식한 행동이라는 사실은 알고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 2010년 2월 22일,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용으로 쓴 글. 개인적으로 앞서 언급한 일을 글로써 보았을 때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분이 그 일에 대해 썼던 글로 후기를 대신하고자 한다.

 

저런 이들 앞에서 '만화가 저급문화라니!'라며 화를 내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에겐 SKY가 아니면 3류 대학인 게 '진리'고, 어떤 이들에겐 클래식이 아닌 음악은 비천한 게 '진리'죠. 다만 그러한 '생각' 자체가 얕은 것 또한 '진리'.

더빙보다 자막이 나은가 (추가판) (…흑역사)

[2010년 7월 7일 덧달음 : 먼저, 댓글로 세부적인 문제를 제기한 스프랏슈 님 (http://blog.naver.com/eunjaman) 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통계의 이상한 해석 및 과도한 추측이 들어간 글입니다. 조만간 (…적어도 일 주일 이내) 칼럼식으로 이 기사에 대한 수정 · 보완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2010년 2월 16일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에 실은 기사. 댓글란에 자막이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특별히 직접 뽑아서 만든 (KOBIS의 시스템 자체는 훌륭하나, 정작 장르별 데이터를 분류하기가 어려웠다.) 엑셀 파일과 함께 추가 · 보완 설명을 말미에 덧붙인다.

 

 

최근 모 영화잡지에 실린 「원피스 극장판 : 스트롱 월드」에 대한 리뷰를 보았다. (추가 - 『씨네21』리뷰였다.) 어떤 식으로리뷰했는지 꼼꼼하게 보고 있는데 말미에 신경쓰이는 문장이 있었다. '자막판이 아니라 실망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더빙이라 할 수는 없지만 (중략) 더빙판도 나쁘지만은 않다.' 필자의 더빙판에 대한 선호 여부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 짧은 문장에서 더빙에 대한 일부 매니아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리뷰는 그나마 약하게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투니버스, 챔프 등의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에서 신작을 방송할 때, 또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개봉할 때 더빙으로 선보인다고 발표하는 순간 매니아들의 항의가 게시판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더빙이 원작의 색채를 어지럽힌다거나, 한국어 더빙은 어딘가 이상하다거나. 그 밖에도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단 한 문장, "우린 자막으로 보고 싶다." 로 줄일 수 있다. 한국어 더빙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일부 매니아들의 주장처럼 한국어로 더빙된 작품은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작품 이해에 악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오히려 자국어로 된 더빙은 작품 이해를 빠르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작품 흥행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먼저 작품성에 대한 비난을 반박해보자. 먼저, 캐릭터 음성이 처음 발표된 음성과 같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비난. 이건 캐릭터 해석에 대한 문제이다. 정말로 겉모습 / 행동과 음성이 조화가 되지 않는다면 성우진 / 연출진을 비판해야하나 단순히 캐릭터의 음성이 일본어 / 영어 음성과 같지 않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또, 설령 자신이 생각하던 캐릭터의 느낌과 다를지라도 작품을 즐기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전에 섵불리 재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우의 목소리가 이상하다거나 한국어 더빙이 작품의 이해를 어지럽게 한다는 비난도 개인적인 성향에 불과하다. 아니, 한국어 더빙이 이해를 막는다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자막과 같이 보는 영화와, 한국어 더빙으로 들으면서 보는 영화 중에 어느 것이 더 영화 집중이 잘 되는가? 자막이 있는 영화는 자막과 실제 영상을 동시에 놓고 봐야하므로 집중 / 이해에 악영향을 미치나 반면에 더빙된 영화는 영상에만 시선을 집중하면 되므로 더 크게 집중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작품성과 관련된 대부분의 한국어 더빙 비난은 개인적 취향과 관련된 면이 크다.

 

산업적인 면에서도 한국어 더빙의 차이는 크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http://www.kobis.or.kr)을 토대로 내놓은 2009년 한국 개봉 애니메이션 관객 흥행 통계를 내본 결과 한국어 더빙 관람객이 4,233,414명, 자막 관람객이 1,151,156명으로 더빙으로 개봉한 영화들의 흥행이 자막으로 개봉한 영화들보다 3배 이상 높은 흥행을 거두었다. 평균 관객수 통계에서도 한국어 더빙이 한 편 당 176,392명, 자막이 한 편 당 47,695명으로 더빙이 자막에 비해 3배 이상의 흥행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물론 매니아들로써는 직접 해외 성우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이 강할 것이다. 또한, 일부 작품에서 보이는 겹치기 출연이나 캐릭터 해석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은 연출과 성우 연기도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무작정 대놓고 극장에서, 또는 TV에서 자막 상영을 요구하는 것은 대다수 시청자들이 더빙으로 볼 권리를 침해하는 무례한 행위이다.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쉽게 작품을 이해하고, 유통사들이 좋은 성과를 거둘 기회를 막는 것을 정당한 권리 요구라 보기는 힘들다. 정 자막으로 보고 싶으면, DVD로 봐라. 하긴, 자막 상영을 요구하는 이들이 DVD를 얼마나 살지나 모르겠지만.

 

 

…그리고 추가분. 일단 아래 통계 자료를 보자. (「업」과 「포켓몬스터 DP 극장판 :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는 자막 / 더빙이 분리된 관객 자료가 없어서 부득의하게 통계에 넣지 못했음을 알린다. 또한 「크리스마스 캐롤」은 분류가 애매한 관계로 역시 통계에서 제외.) 참고로 위의 것이 Excel 2007용, 아래의 것이 Excel 2007 이전 버젼용이다.

 

 

이 자료를 토대로 '자막지상주의자' 들의 주장 중 하나인 '더빙 관객이 높은 이유는 주로 부모님과 아이들이 같이 보기 때문이다' 를 반박할 수 있다. 한국에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이 전체적으로 어린이 취향이 많지만 그 중에서 비교적 고연령층 대상인 「명탐정 코난 : 칠흑의 추적자」와 「나루토 질풍전 극장판 : 불의 의지를 잇는 자」를 비교해보자. 같은 수입사에서 수입 · 개봉하고, 비슷한 개봉관 수이기 때문에 더없이 비교하기에 적당하다.

 

전자의 경우 더빙 관객 622,788명에 자막 관객 29,647명, 후자의 경우 자막 100% 개봉으로 총 관객수는 29,715명에 불과하다. …어머, 댓글의 누군가는 전자가 더빙 위주로 상영해서 관객이 줄었다고 했는데 왜 자막 100%로 상영한 후자는 전자의 반의 반에도 못미치는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개봉관 수가 줄어서'라고 변명은 하지마라.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수가 현격히 주니까 개봉을 중단하는 거지.

 

개인적으로 더빙만, 또는 자막만으로 개봉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구조는 선호도에 맞는 적절한 비율로 더빙 / 자막을 나눠서 동시에 개봉하는 것. 헌데 일부 애니메이션 팬들이나 팬카페에서는 '더빙이 원판 (틀린 표현. 일본어 / 영어 등 '언어 + 더빙' 이 맞는 표현이다.) 을 망친다.' '연기가 안 어울린다.' 는 괴한 말이 판을 친다. 정말 캐릭터 성격과 맞지 않고, 저질스러운 번역 (지나친 유행어 구사, 오역 등) 은 당연히 까여야 하지만- 단순히 마음에 안 든다는 주관적인 이유로 까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괴이한 비난이다.

한국 만화잡지의 앞날은 어디인가

 

전체 만화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 만화잡지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서울문화사의 월간 저연령층 대상 순정 만화잡지 『밍크』, 씨네21의 월간 성인 만화잡지 『팝툰』이 각각 2월호에서 무기한 휴간을 선언했다.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으나 만화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판매량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만화잡지의 특성상 잡지가 많이 팔리지 않으면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단행본으로 적자를 메꾸려고 해도 단행본 판매도 시원치 않아 결국 잡지 판매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팝툰』의 경우에는 5,900원이라는 고가의 가격으로 판매해왔으나 결국 창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쓸쓸히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절대교감의 성인 순정 만화잡지 『그루』는 더 직설적으로 폐간의 이유를 밝혔다. 1월 1일에 발행한 『그루』 5호에서 발간사의 사장 김부용과 책임편집자 유민형은 잡지 앞머리에 게재된 폐간사에서 '4호까지의 판매 성적을 보아 더 (잡지 발간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면서 직설적으로 판매량이 처참했음을 드러냈다. 또한 '대출까지 받아서 잡지를 냈다. (중략) 결국 만화 잡지를 사는 독자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라면서 잡지를 구매하지 않는 독자에 대한 서운한 심정을 표출했다.


각각 지향하는 연령층과 성향이 다른 잡지가 폐간했지만, 얄궂게도 전체 만화잡지 수에는 큰 변동이 없다. 이미 작년에 만화잡지 두 개가 창간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자회사 동아사이언스는 격주간 만화잡지 『어린이 과학동아』의 자매지 월간 『수학동아 X』를 새롭게 펴냈다. 『어린이 과학동아』의 판매 수익이 높았던 만큼 동아사이언스로서는 자매지를 창간하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교과서 · 학습지 전문 출판사인 지학사도 『독서평설』의 자매지 『만화로 보는 독서평설』을 격주간으로 창간했다. 현재 어린이 만화잡지가 전체 만화잡지 종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 (『개똥이네 놀이터』, 『고래가 그랬어』도 포함한 수치). 소년/청년 만화잡지가 28%, 순정 만화잡지가 21%를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어린이 만화잡지는 전체 만화잡지 시장의 대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이 어린이 성향 이외의 만화잡지를 계속 연이어서 온라인 전환 / 간기 변경 / 휴 · 폐간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루』의 폐간사에서도 밝혔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판매량 부진이다. 비교적 짧은 발행 주기 내에서 많은 양의 책을 연이어서 발간하는 것은 무척 부담이 되는 일이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만화잡지 발행사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주간 『소년 점프』로 대표되는 일본식 시스템이다. 저급의 종이로 잡지를 발행해 최대한 제작비를 줄이고, 가격을 싸게 발매해 독자들이 부담없이 사서 볼 수 있게 만든다. 적어도 90년대 중후반까지는 이런 방식이 먹혀 들어가 시장이 끊임없이 순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다. 출판 시장은 계속 불황에 빠지고, 만화 잡지를 구매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 갔다. 그나마 초반에는 단행본 판매로 그럭저럭 적자를 메꿨지만, P2P / 와레즈 등을 통한 불법 다운로드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단행본 판매 수익도 점차 하락세를 맞이 했다. 여기에 전 정권(김영삼 정권)이 일으킨 '청소년 보호법 사태'로 그나마 시장이 유지되었던 기존 성인 / 청년 / 소년 만화가 급속도로 몰락하게 되었다. 학습 만화(어린이 대상 컬러 와이드판형 만화)와 웹툰(온라인 · 디지털 만화)의 성공으로 전체 만화 시장의 크기는 계속 커져 갔지만 정작 현 만화 시장의 근간인 출판 만화 시장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홍보 부재 (『팝툰』, 모회사의 발간 잡지 『씨네21』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홍보 루트가 없었다.) 와 판매 ·유통망 부재 (『그루』, 유통망이 부족해 몇몇 서점에서만 판매되었다.)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새롭게 만화잡지 시장에 도전한 회사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오직 어린이 성향의 만화잡지만 학부모들의 꾸준한 구매로 불황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다.


앞으로의 오프라인 만화잡지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잡지 판매가 내림세를 타고 있고 서서히 온라인 · 디지털 잡지, 또는 애플 아이폰 등의 스마트폰 앱스토어 잡지 등이 시도 중에 있다. 아마도 미래의 만화잡지는 책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 보게 될 일이 많아질 것이다. 다만, 한국은 과도기가 없이 너무 급속도로 시장이 변하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기존 출판 만화 시장의 기반이 갑작스레 붕괴 중에 있고, 지금 존재하는 학습만화 · 웹툰 시장도 유통의 다양성이 없는 불안한 환경에 놓여 있다. 철저히 판매 대상을 공략하고, 마케팅과 독자 소통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한국 만화잡지 시장의 붕괴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독자들의 꾸준한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속도가 더욱 더 빨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10년 2월 8일 게재 기사. 작년 한 해에만 하나의 잡지가 온라인으로 옮겨가 버리고 (즉, 오프라인 잡지는 폐간) 세 개의 잡지가 격주간지에서 월간지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올해 세 개의 잡지가 휴 · 폐간되었다. 얄궃게도 작년에 세 개의 잡지가 창간하는 바람에 (하나는 성인 만화 잡지 - 『카툰마니아』, 학산문화사 - , 나머지 두 개는 글에서도 언급한 어린이 만화 잡지이다.) 전체 잡지수에는 큰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잡지 시장의 불황은 그칠 줄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과연 어떻게 버텨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시장을 넓혀야 할까. …확실한 것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저예산 잡지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

쉽고 공감가는 글만 쓰면 최선인 것일까

한 교수의 글이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 블로그들의 집합체 또는 블로그들의 커뮤니티를 의미하는 용어)에 큰 파장을 주고 있다. 문제의 단초는 경희대학교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 중에 있는 이택광 씨가 개인 블로그에 걸그룹 '소녀시대'가 정규 2집 발매와 맞추어 발표한 뮤직 비디오 「Oh!」에 대한 비평을 남긴 것이었다. (http://wallflower.egloos.com/2767972) 어려운 인문학적 개념을 사용해 이해가 쉽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소녀시대의 새 뮤직 비디오는 남자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일종의 판타지이다' 라는 내용의 글이다.

 

그리고 이 비평문은 글이 처음 올라온 이택광 교수의 블로그가 속해있는 블로그 전문 사이트 '이글루스'와 DC인사이드에서 비난을 받게 되었다. '글이 어려워서 이해하기 힘들다.' 는 이유가 비난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정작 글에 사용된 개념에 문제가 있다거나 등 글 내용 자체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즉, 대중적이지 않은 글을 썼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일부는 이 교수가 예전부터 특이한 성향의 분석 · 비평글로 주목을 받아왔으니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한다. 또 누군가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라면 마땅히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가능하면 글은 전문층만 보는 매체에 실리지 않는 이상 최대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작성되어야 한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만큼 자신이 글을 통해서 표현한 의도를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없이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 다시 말해서 어려운 글이 무조건적으로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결코 그 비판은 합당하지 못하다. 대중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전개하는 글이라 하더라도 전문적인 영역으로 가는 순간 (그것이 인문학이든, 영화이든, 정치학이든) 그냥 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이 탄생한다. 그 영역에서 쓰이는 개념적, 관념적 용어가 적어도 한 개 이상은 출몰하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용어를 모두가 이해하기 위해 글에서 일일이 풀어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설령 풀어쓴다 할지라도, 정작 풀어쓰기 위해 사용한 글이 독자에게 큰 어려움을 주거나 더 큰 오해를 주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간혹 리처드 파인만같은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내지만, 그건 정말 '간혹' 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개념어를 부연 설명없이 그대로 집어넣는다.

 

별다른 내용이 없는 글을 단순히 '있어 보이려고' 각종 현학적 수사로 포장하는 것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교수가 쓴 글은 비록 독해가 어려울지라도, 전하고자 하는 의도나 글 전체적인 완성도는 탄탄한 편이다. 글 중간에 쓰인 '리비도', '정언명령', '초자아' 등의 철학 · 인문학적 개념은 일반인은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인문학에서는 평범하게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블로그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한 글인만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단지 내 자신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글 자체를 공격하고, 필자에게 무조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도록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폭력에 불과하다. 쉬운 글도 필요하지만, 어려운 글 또한 존재 가치가 있다. 전자는 대중들이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점에서 중요하고, 후자는 전문적인 방향에서 심도있는 분석을 해 다양한 시점을 낳는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두 가지 방향의 글 모두 상호 보완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단순히 한 쪽 방향을 옹호하는 것은 불균형적인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다른 성향의 글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2010년 2월 8일 게재 칼럼. 아쉬운 부분에 대해서 불편함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불편함을 넘어 필자에게 압박을 가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항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당신에게 어렵다는 것이 필자를 무작정 비난하는 것을 결코 정당화시켜주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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