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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 삼성을 생각한다 - 리뷰, 그리고 자발적인 굴종에 대해

토요일 서평 기사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였음을 알립니다. ⓒ 조하늘 / 사회평론

 

일단, 먼저 책에 대한 리뷰를 먼저 보는 것이 순서인듯 싶다. 리뷰글은 2010년 2월 6일 게재된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의 신간 소개 코너 「a week book's diary」의 글을 일부 문법 오류를 수정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삼성은 이중적인 존재다. 전자 제품과 반도체 수출로 외화 벌이와 국위 선양에 기여하는 세계 1등 기업, 또는 각종 탈세와 비리로 얼룩진 한국 재벌의 부끄러운 초상. 확실한 것 하나는 삼성은 어마어마한 (특히 한국에서) 크기를 지닌 거대 기업이고, 그 점은 개인의 삼성에 대한 호불호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고 싶어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이미 삼성은 거대한 뿌리를 박았고, 지금도 계속 뿌리를 깊숙히 내리는 중이다.

 

2007년에 대한민국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폭로 사건으로 벌어진 논란은 한국에서 삼성이 가지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어떻게 수출 잘 하고 돈 잘 벌어오는 선진 기업의 작은 흠결을 크게 키울 수 있느냐라는 시선과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면 안된다는 시선이 크게 맞붙었다. (얄궂게도 이러한 시선의 충돌은 대기업의 비리 사건 때마다 연례 행사처럼 벌어졌다. 단지 이름만 달랐을 뿐.) 결국 특별 검사제가 국회를 통과했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게 흐지부지된 채로 사건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묻혀졌다.

 

사건이 점점 풍화되면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에 대해서 어떤 만감이 교차했을까. 검사일을 그만두고 나와 40대에 들어간 번듯한 직장, 회장이 회사 권력의 최정점에 서있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괴이한 일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정면으로 맞서게 되는 얄궂은 운명. 그가 회사를 나와서 원했던 정의는 결국 실천되지 못 했고 아직도 삼성의 절대 권력은 거대하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가 펴낸 「삼성을 생각한다」는 뒤틀려진 한국 사회에서 공고한 힘을 행사하는 삼성을 다루는 경제, 사회 과학 서적인 동시에 삼성과 관련된 개인적인 만감을 정리하는 자서전의 역할을 수행하는 책이다. 지은이가 지은이인 만큼 삼성 내부에서 겪었던 각종 불합리한 일들과 비리를 폭로한 이후 검찰 소환과 법원 판결을 거치면서 겪었던 사건들을 위주로 삼성을 바라본다.

 

일부는 그의 행적을 지켜 보고 '삼성에게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이제와서 뺨을 친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아마 그렇게 그를 보는 이들은 이 책을 못마땅히 여길 것이다. 물론 그가 삼성에 있던 시절에 비리를 도와준 부분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절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정한 평가가 내려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부 고발자로서 조직의 비리를 폭로한 점에 대해서는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알린 것에 더 큰 주안점을 두고서 이 책을 감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글들을 보도록 하자.

 

▶ 많이들 생각해주시되 감정적 반응으로 그치지는 마시기를 - Periskop, 2010년 2월 7일

 

▶ [책광고 릴레이] 삼성을 생각한다 - capcold, 2010년 2월 3일

 

▶ [책광고 릴레이] 삼성을 생각한다 - leopord, 2010년 2월 3일

 

▶ 삼성을 생각한다 - leopord, 2010년 2월 7일

 

▶ 김용철 신간 <삼성을 생각한다> 일간지 광고 '원천 봉쇄' - 프레시안, 채은하 기자, 2010년 2월 3일

 

 

다음 글들을 차례로 읽었으면 다들 아셨겠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에서 일을 하면서, 그리고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고 나서의 얘기를 다룬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사회평론에서 출간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이유로 주요 일간지 광고가 모두 취소되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같이 삼성과 연관이 깊은 대형 신문사 뿐만 아니라 메트로 같은 무가지 같은 곳에서도 모두 광고 게재를 거부하였다. 세부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만약 한 곳에서만 그랬다면 단순한 해프닝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광고 게재 신청을 한 전 신문사가 모두 거부했다. 자연스러운 상황은 절대 아니다.

 

왜 신문사들은 신문 광고 게재를 거부했을까. 삼성에서 압박을 걸었다거나 등의 음모론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합당한 이유는 '광고가 끊어질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신문사의 수입 구조는 구독 / 구입으로 인한 판매 수익과 광고 수익이 5 : 5를 이루거나 판매 수익이 광고 수익보다 많은 것이지만, 이건 정말 이상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광고 수익이 전체 신문사 수익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리고 그 광고비를 신문사에 지출하는 회사의 대부분은 삼성, LG, SK 같은 대기업들이다.

 

그러다보니 광고부는 자연스레 취재부에 무언, 또는 유언의 압박을 가한다. 웬만하면 그 쪽 까는 기사는 좀 줄이지 그래? 처음에는 기자들이 압박을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취재를 한다. 무사히 편집회의를 거쳐 통과되어 가판이 나오면 이때부터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미디어 포커스」나 「VJ특공대」에 몇 번 소개되었지만, 기업들은 새벽에 나온 가판들을 전부 회수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가 있는지를 체크한다. 그리고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나 칼럼을 발견했다- 그러면 바로 신문사에 전화를 건다. 저기, XX의 아무개인데 이 기사 좀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자칫 잘못하면 다치는 수가 있어요. (물론, 이렇게 까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 광고의 대부분의 수익을 의존하는 신문사의 입장으로서는 광고주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맞출 수 밖에 없게된다. 결국, 기사는 없어지고 만다.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다 보면 기자들 사이에서 광고주를 까는 글보다 광고주를 '핥아주는' 기사를 쓰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체화된다. 비판적인 논조는 권력이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에게만 유효하다.

 

이번 광고 게재 거부 사건도 앞서 말했던 일의 연장선상이다. 광고주가 불편하게 생각하기 전에 미리 허리를 굽혀 굴종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자세. 신문사와 대기업 광고주는 일 대 일 (1:1) 관계에 있지 않다. 황금색 옥좌에 기업들이 앉아 있고 밑에 신문사 사주들과 광고부장이 무릎을 꿇고 조아린다. 애썼구나. 옛다. 광고비. 기업은 광고를 하는 동시에 신문사를 길들일 수 있어서 좋고, 단지 신문사는 돈을 번다는 사실에 기뻐할 뿐이다. 20세기부터 이어져온 신 주종 관계이다.

 

헌데 이들이 간과한게 한 가지 있었네. 더 이상 광고의 루트가 신문 / 방송 / 옥외광고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 인터넷이 새롭게 생겼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대기업 광고주의 입김은 인터넷에도 미치기 마련이다. 특히 포털에 지나치게 종속된 한국의 인터넷 환경상 포털을 잘만 길들이면 대부분의 누리꾼들을 자동적으로 길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오프라인에 비하면 비교적 자유롭다. 그 소리는 통제와 압력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이 얼마든지 있다는 소리도 된다. 트위터는 해외 서버를 이용한다. 방통위에서 유해 사이트로 지정하지 않는 이상, 마음대로 차단할 수 없는 사이트이다. 힘겹게 내놓은 책의 광고가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에 분노한 사회평론 편집부는 트위터(@ebricks)를 개설해 상황을 호소했고, 빠른 속도로 소식이 퍼지면서 「삼성을 생각한다」는 출시 7일 만에 5쇄 5만부를 발매하게 되었다. 보통 사회 평론 책이 1000부도 팔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갖은 광고 압력에도 불구하고 책은 활기를 얻어 결국 생명을 되찾게 되었다. 인터넷에 대한 활용과 삼성에 대한 사회적인 불만이 낳은 값진 성과이다.

 

사회평론이 주요 일간지에 실으려고 했던 광고의 모습. 아직까지, 우리는 이 광고를 일간지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 - 8점
김용철 지음/사회평론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 과객에겐 항상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아시아는 그렇게 구성원들에게 가까운 과거나 미래가 됨으로써 거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교훈이나 영감, 반성 또는 그 모두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더 나은 미래가 지금처럼 위축되고 왜곡된 때가 없었던 만큼 이런 자각은 어느 때보다 귀중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10년 또는 20년이란 시간은 찰나일지도 모른다. 100년이나 200년도 긴 시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천 년이 걸릴지도 모를 기약 없는 길을 떠날지라도 과객의 손에 쥐여져 있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나침반이다.

-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유재현, 2009, p.8 ('머리말'에서 발췌)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는 우울하다. 240년 동안 유지된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들어선 네팔을 제외하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국가들은 전체적으로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길을 걷고 있다. 반민주주의 세력은 여전히 강성하다. 집권층들은 인민을 뒷전으로 내몰고서 이권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법에 명시된 민주주의는 계속 퇴색되어 간다. 각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절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은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것.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당하거나 각종 핍박을 받고 있다. 희망적인 모습은 찾기 힘든, 우울함의 연속이다.

 

어쩌다 아시아는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신생독립국들이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 모여 비동맹 운동을 결성했다. 1980년대 후반 마르코스 철권 통치에 맞서 일어난 필리핀의 피플파워 운동에 전세계가 주목했다. 몇 년 후 일어난 한국의 6월 항쟁은 30여년 동안 이어진 군사 정권에 종언을 고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가 1998년 전면적인 시위로 물러났다. 시간이 계속 흐르면 아시아에 민주주의에 자연스레 정착될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아시아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수하르토는 인도네시아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그의 그늘은 여전하다. 비동맹 운동의 발상지는 이미 상징적 의미로 전락한지 오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부미푸트라 (말레이계 무슬림) 에게 모든 이권이 돌아가고 있다. 필리핀에선 대의 민주주의의 탈을 쓴 군사독재 스타일의 정치가 횡횡하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처럼 공산주의 일당 독재 체제와 자본주의가 합쳐진 기묘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입헌군주제 국가 태국에서 왕실과 군부의 합작 쿠데타를 옹호하는 시민단체가 대놓고 활개한다. 미얀마의 독재 정권은 국외 자본주의 기업과 영합하면서 세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티베트는 오리엔탈리즘 이미지로 신권 통치의 문제를 가리우고 있다. 책에는 서문에 잠깐 언급된 것으로 그쳤지만, 싱가포르의 가문 독재 체제는 여전하며 한국에서는 대대적인 촛불 집회가 일어났다. 어느 나라 할 거 없이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조롱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우울한 상황 속에서 글쓴이는 은유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10년, 20년, 100년, 200년, 어쩌면 천 년이 걸릴지라도 항상 나침반을 지니고 있으라고. 민주주의라는 선물은 하루 아침에 주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진득하게 대응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인내와 노력의 결과물이다. 아시아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민주화를 이뤄왔다. 지난 20세기가 조금씩 아시아의 민주화가 진척되었던 시기였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21세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시기이다. 서로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세차게 밀려오는 신자유주의 광풍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야할 때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강력하고 심화되는 자본주의 속에서 점점 세를 불리고 있다. 하지만 주눅들지 말자. 천 년이라는 무수한 시간이 지날지라도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알고 있다면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자, 소중한 힘이다.

 

 

- 그린비 <gPress> 용으로 쓴 글. 책 자체가 2008년 시점으로 아시아 (동아시아보다는 우리가 막연한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는 서남, 동남아시아 지역을 위주로 지역이 선정되어 있다.) 지역의 민주주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글에 써놓은 것처럼 무척 우울하고, 희망은 별로 찾기 힘들다. 하지만 아예 희망의 문을 닫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참한 현실 속에서 아시아의 인민들끼리 서로 반면교사하며 연대를 꿈꾸는, 느릿느릿한 걸음을 걷길 바란다. 무척 힘든 걸음이 되겠지만.

우리 주위의 권력을 항상 주시하라 -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을 흔히 소유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권력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는 명사이기 때문이다. 또, 지도자/권력자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들을 계속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을 주고 받거나 뺴앗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권력은 과연 소유하는 것일까? 교육, 위생, 규율이나 가정, 학교, 직장에서도 권력은 존재한다. 권력은 가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작동되는 것이 권력이다. <수유너머 길>의 이수영이 쓴 「권력이란 무엇인가」는 이제는 일상화된 용어, '권력'을 통념과 다른 방향에서 바라봄으로써 권력의 구조를 제대로 파헤치고, 권력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 쓴 책이다.

 

이수영은 한국 사회의 이슈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해서 가능한 쉽게 권력의 속성을 파헤친다. 8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운동권이 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로 허무하게 무너진 과거를 다루면서 삶과 권력을 분리해서 쳐다보는 사고에 경종을 울린다. 작년 여름, 전국 방방곡곡에 촛불이 켜졌던 일에서는 시민들이 비정규직 문제 등의 사회 현안 대신 광우병 위협이라는 지극히 개인의 건강과 관련된 사안에 박차고 나섰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현대인에게 자리잡고 있는 위생 권력과 위생 권력으로 만들어진 구조가 아이러니하게도 국가 권력을 공격하는 현실을 비춘다.

 

이제는 일상 생활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수단이 된 일람표/시간표, 정신병원, 매 학기마다 학생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 넣는 시험에서도 권력은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도사리고 있다. 정확한 일정으로 개인의 삶을 짜맞춤으로서 권력이 정해준 길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규율에서 벗어난 이들은 '비정상' 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격리시킨다. (청소년, 장애우, 범죄자, 외국인 노동자 -  특히 한국 - 의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단지 비정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 보호와 감시라는 이름으로 격리가 이루어진다.) 지식과 규율 권력을 동시에 학습하는 근대 사회 이후의 학교에서는 어린 시절 때부터 시험을 통해 지식의 평가와 규율을 얼마나 잘 지키는 지를 평가한다. 신종 플루를 통해서 여지없이 드러난 근대인들의 위생 공포 등 심지어는 위생적인 면에서도 권력은 존재한다. 이것들은 모두 정부의 핵심층에 의해서 행사되는 권력인가? 오히려 정부의 바깥이나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에 의해 권력이 행사된다. 단지 고전주의에서 근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과잉된 권력 (극도로 잔인한 사형 방법 등) 을 표출하는 것이 자제되었을 뿐 권력은 점점 확대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들이 시민들을 통제하여 '혼란없는 사회'로 만들고 있으니 권력을 무조건 따라야 할까. 이수영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권력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별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합리적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력은 이미 여러 군데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가부장 권력은 형식적 평등인 사회에서도 여자들에게 압박을 주고 있다. 법이라는 명문화된 권력을 이용하여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탄압하고 있다. 권력이 자신과 타인을 구분짓고, 억압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 당당히 맞서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권력에 의해 재편된 자신 대신, 스스로의 주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책은 주장한다. (사실 이 부분은 같은 시리즈 1차분으로 발간된 「주체란 무엇인가」에서 더 자세히 다뤄질 것이다.)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서 - 이기주의와는 다른 - 자기를 배려할 것을 주장하며 그 방법으로 배움의 코뮌을 제시한다.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되고, 서로가 서로의 제자가 되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주체를 스스로 찾기 위한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다. (작자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수유너머 길>의 모단체격 존제 <코뮤넷 수유너머>가 이를 지향하고 있다. 아마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부분을 삽입한 것이 아닐까.)

 

권력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잡아 주면서, 가능한 쉽게 쓰려고 서술된 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근대 철학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운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 편이다. 어쩌면 작자는 권력을 감시하고 주시하기 위한 방법의 기초로 코뮌을 다루면서, 이 책을 하나의 코뮌 속에서 연구하면서 읽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혼자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긴 하다. 그렇다고 방 구석 책장에 먼지가 쌓이도록 고이 모셔놓지는 말자. 생각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이 책을 읽으면서 작자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하고,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를 파악하고,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권력 작동에 저항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 10점
이수영 지음/그린비

 

- 그린비 gPress 1기 미션으로 쓴 서평. 원래 어제까지 였는데 편집장 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결국 12시에 도착하게 되었고, 오후에 쓰려는 계획은 와르르르 파사사삭. (…) 책을 읽어 놓고서 진작 글을 안 쓴 내 잘못이 더 크긴 하지만. 하여튼 권력의 통념을 넘어서 어떻게 권력에 맞설 것인지를 제안하는 책이다.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부커진 R Vol.2」나 「추방과 탈주」에서 고병권이 지적한 것처럼, 촛불 집회의 가장 큰 실책은 저항하는 권력의 대상이 위생 권력에서 확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는 암묵적인 표현 (책에는 직접적인 표현은 들어있지 않다.) 에 동의한다.

독서 이력 : 어떻게 책을 읽었고, 어떤 책을 읽었는가

저야 워낙 책을 좋아해서 한 달 책 주문량이 장난 아니게 많지만 (…) 막상 독서 이력을 적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막막했습니다. 과연 어디서 부터 적어야 할지, 또 어떻게 적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거든요. 거기다가 비염 + 축농증 연속 악화로 인한 상습적인 병으로 인해서 결국 원래 날짜보다 이틀이나 늦게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역시 만화를 좋아하는 저인만큼, 어떻게 만화를 읽기 시작한 계기도 적어보려고 합니다.

 

역사책과 함께했던 시간

 

정-말 어렸던 유치원 시절은 기억도 잘 안 떠오르니 가차없이 빼버리고 (…) 그나마 약간씩은 기억나는 초등학생 시절의 독서 이력부터 이어나가 볼까요. 그 때 저는 단연 '역사파' 였습니다. 항상 책장도 역사책 코너에서 놀았었고 소설책이나 동화책은 안 보면서 유독 역사책이 좋았어요. 물론 이렇게 된 것에는 「꺼벙이」를 그리신 길창덕 화백의 역사 만화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딱히 그 만화를 보지 않았어도 역사책을 많이 보았을 것 같습니다. 책 제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딱 한 책 만은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읽었던 책이었거든요. 바로 한홍구 씨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아서 출간한 책, 최근에 국방부 공식 추천 도서 인증 (…) 까지 받은 그 유명한 책, 「대한민국史」 입니다. 한홍구 씨가 칼럼을 워낙 맛깔지게 써서 술술 읽히기도 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내용이었어요. 지금까지 읽었던 역사책에는 도통 안나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으니까요. 원래 2 ~ 30대 성인을 대상으로 쓴 책인데 초등학생이 흥미를 보였다는 것도 좀 웃기는 일이지만. (…)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시절부터 가카 비공식 인증 좌빨 (…) 의 기질이 샘솟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와 만나다

 

만화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것도 「대한민국史」와 비슷한 시기였어요. 지금은 영양사로 일하면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를 겸하는 저희 작은 누나가 본격적으로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에 빠져들면서 동네 만화 대여점에서 만화를 막 빌려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누님은 공포 / 스릴러 / 추리물을 좋아했어요. 당연히 저도 공포 / 스릴러 / 추리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 첫 타를 찍은 것이 「이토 준지 콜렉션」 이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이 「소년탐정 김전일」, 「명탐정 코난」, 「Q.E.D. 증명종료」 등 이었으니 말 다했죠. 항상 순문학과 장르문학 구분 논쟁이 나오면 동네북으로 까이는 것이 앞서 말한 서스펜스류이지만, 저는 이런 장르의 책을 어렸을 적부터 접하다 보니 굳이 책을 구분지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더라고요. 만화와 일반 도서를 구분짓는 것도 마찬가지로요. …여기까지 적고나니 아이들에게 동화책부터 만화책까지 (…) 다양한 책을 읽혀야 할 필요성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책들을 만나야지 편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한동안 '별일' 없다가 인문학!

 

그리고 그 후로 고등학생 2학년 때까지는 공백기. (…) 아니, 정말 '별일' 없었어요. 그 동안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별로 기억나는 만화도, 별로 기억나는 책은 없었습니다. 서양 역사에서 이런 시기를 중세라고 부른다면 (물론 중세 시대가 완전 텅-빈 공백기는 아니지만요) 저는 제 독서 이력의 이 시기를 단연 중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고2 떄부터 다시 '책과 함께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저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지만 (그런데 너가 모르면 어떡하니 ㅠ.ㅠ) 아무래도 '중세' 시절, 각종 입시를 이유로 책을 읽지 못한 갈증과 그 해 여름에 참여했던 촛불 집회의 영향이라고 대충 추정을 할 따름입니다. 인문학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도 그 해 여름부터 였어요. 프로필에도 적어놓았지만 학교 도서실에서 국어 시간의 인문학 과제를 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서 신간 코너를 보았더니 고미숙 선생님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있었다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운이 좋은 인연으로 인해 인문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역사책, 만화에 이어 인문학에 빠져들게 되었죠. 많은 책들을 구입했지만 그 중 기억나는 것은 고병권 선생님의 「추방과 탈주」, 「부커진 R : Vol.2」, 「이 영화를 보라」(여기까지 그린비!), 「괴물의 탄생」(우석훈, 개마고원) 등이에요.

 

이제는 더 다양하게

 

이렇게 제 독서 이력을 적어나가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만남으로 인해서 독서 이력도 휘황찬란하게 (?) 변하는데, 과연 사람의 삶은 얼마나 변할까. 여러 가지 사회 참여도 사람의 여러가지를 변하게 만들지만, 책은 단연 오랫동안 사람의 곁에 있으면서 때로는 급격하게, 때로는 시간을 두고서 변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지금까지 다양한 책을 읽으려 노력했지만, 앞으로도 더 다양한 책을 읽어야 겠어요. 다양한 변화의 요인들을 만나야지 더 옳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고등학교 2학년 초까지의 사회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저와, 지금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는 저를 대비하면서, 앞으로 변할 저를 생각하며 독서 이력을 마칩니다.

 

 

 

- 역시 이것도 gPress 1기 미션용으로 쓴 글, 참 다양한 책을 읽었다. (…) 몸이 안 좋으니 과제도 늦고, 여러가지로 말썽.

review 「신문물검역소」 - 신문물과 서스펜스의 불안한 조화

『팝툰』에 연재한 「심 여사는 킬러」의 일러스트/표지를 그렸던 이강훈 씨가 이번 작품에서도 표지를 그렸다. 사이가 좋습니다요.

 

일 년 사이에 책이 세 권이나 나왔다. (사실 하나는 나올 예정이니, 엄밀히 말하면 두 권이라고 해야겠지만.) 수입 번역본도 아닌 한국 작가의 장르 문학 소설이 연이어서 나오는 것은 우연의 일치를 고려한다고 치더라도, 참 대단한 일이다. 최근에 성장세를 타고 있다고 하나 아직도 척박한 한국의 장르 문학 시장에서 책을 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 번도 정식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카피라이터가 공포 문학 창작 모임인 「매드클럽」에 가입하고 나서 이룩한 성과이다. 그녀의 이름은 강지영이다.

 

강지영의 단편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황금가지에서 펴낸 밀리언셀러클럽 한국편 시리즈 중의 하나인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실렸던 「거짓말」이었다. 단순한 1인칭 시점이지만 계속 서술자가 변하는 형태로 쓰여진 이 단편은, 하나의 거짓말이 어떻게 주변은 뒤흔들어 놓는지를 치명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써나간 단편이었다. 말이 '서술자 변경' 이지, 화자를 계속 바꿔나가면서 서사를 전개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생전 처음 보는 작가의 단편이었지만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 후로 별 소식이 없다가 다시 단편을 접하게 된 것은 『팝툰』에 실린 「점」이었다. 여름 특집으로 실린 단편이었는데,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유려하게 조합한 작품이었다. 거기에다가 그 다음 호에 실린 「낙원 고시원」을 보고 나니, 이 작가의 작품이 그렇게 기대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거짓말」, 「점」은 씨네21북스에서 나온 그녀의 첫 단편 소설집 「굿바이 파라다이스」에도 실려 있다.)

 

그리고 기대하고 예측했던 대로, 2009년은 단연 그녀의 작품이 폭발하는 해가 되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KBS1의 이야기 공모 프로그램 「이야기발전소」에서 당선된 단편을 바탕으로 『팝툰』에 연재한 『심 여사는 킬러』를 마무리 짓고, 첫 단편집 「굿바이 파라다이스」, 그리고 이번에 리뷰할 장편인 (실은 이 작품이 『심 여사는 킬러』보다 먼저 끝을 맺은 작품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강지영의 첫 장편인 셈이다.) 「신문물검역소」(時作시작-웅진씽크빅 임프린트) 가 출간되었다.

 

「신문물검역소」는 턱걸이로 과거에 급제한 함복배가 제주도로 부임되어 '신문물검역소'라는 기관의 소장을 맡게된 후의 해프닝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이 추천한 것처럼, '미스터리와 모험, 멜로'의 장르가 한 데 뒤섞여있다. 분명 강지영은 단편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한 없이 어두운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 와중에서도 블랙 코미디를 삽입해 독자의 마음을 이리 저리 헤집어 놓는 마력을 한껏 드러냈었다. 이번 장편에서도 각각의 부분은 무척 훌륭하다. 브래지어를 외국의 관모로 오해해 갓 대신 쓰고 다니는 함복배의 모습은 무척 재미있고, 기수영과 강미호를 통해서는 인간의 비뚤어진 심리의 무서움을 드러낸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부분대로 놓고 보면 수작이나, 한데 모아놓고 보니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든다. 신문물을 소재로 한 위트와 멜로, 그리고 송일영, 기수영을 놓고 벌이는 서스펜스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에 서스펜스 파트에서 신문물이 활약을 하고, 사건의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나 그것도 거기까지이다. 제목은 「신문물검역소」이지만 신문물은 이야기의 중요한 위치에 서있지 않다. 단지 제주도에서 벌어진 엽기 살인의 도구 역할만 충실히 수행한다. 작가는 나름대로 조화를 주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 듯 하나, 너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 불안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각 파트의 연출은 너무나도 훌륭하다. 오히려 기존 단편에서는 심각한 주제만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블랙 코미디를 넘어서는 재미를 선사해서 강지영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신문물 파트와 서스펜스 파트는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주제가 흥미로워서 영화관에 들어왔는데, 정작 보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밖에 나오지 않고서 딴 이야기만 풀어 놓는 영화를 본 기분이라 할까. (나중에 나오면 리뷰하겠지만) 「심 여사는 킬러」도 끝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놓고 보면, 아직까지는 강 작가에게 장편은 무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부분을 잘 해결했더라면 좀더 괜찮은 작품이 탄생했을텐데, 너무나도 아쉬었다. 올해 말에서 내년 중으로 『팝툰』에 신작 장편을 연재한다는 데, 그때는 이번에 내놓은 장편의 아쉬움을 충족할 만한 장편이 나왔으면 한다. 아직도 강지영은 한국의 기대되는 신진 장르 문학 작가의 한 사람이니까.

 

신문물 검역소 - 6점
강지영 지음/시작

review 「러브크래프트 전집」 - 공포의 근원

표지의 크툴루 다리는 조소현 작가의 그림입니다. 참고로 1권 뒤에 크툴루 컬러 일러스트 화보(접혀있는 채로 1장)가 동봉되어 있으니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 신화 팬들은 꼭 주목하시길.

 

※ 이 리뷰는 총 4권으로 발행될 예정인 황금가지의 「러브크래프트 전집」 중 1권만 읽은 상태에서 리뷰가 이루어졌습니다.

 

뭐든지 아류나 파생작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근원 자체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링」과 「주온」의 히트는 한동안 한국 공포 영화에 사다코와 가야코의 분신들이 떠돌아다니게 만들었고, 「스크림」의 흥행은 밑도 끝도 없는 반짝 슬래쉬 영화 붐을 (결과적으로 제대로 이은 작품은 없었고, 차라리 5년 후에 나온 「스승의 은혜」가 한국적 변용을 그나마 성공적으로 달성한 케이스였다.) , 「장화, 홍련」은 스토리가 휙휙 꼬이는 공포 영화들을 낳았다. 이처럼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충격을 주는 작품은 후대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새로운 발전이든, 단순한 따라하기든.

 

그런 점에서 H.P.러브크래프트는 현대 공포 문학의 기초를 다진, 근원의 창시자로 칭송받고 있다. 인간을 뛰어넘는 태초의 공포, 갈피를 알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수많은 팬들을 낳게한 '크툴루 신화'의 창조는 그 당시에는 (1920년대) B급 싸구려 잡지 매니아들의 컬트적 열광에서 그쳤지만 공포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드리 자꾸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또는 거의 베끼다시피 한) 작품을 계속 내놓으면서 러브크래프트의 명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에일리언」의 크리쳐 디자이너로 유명한 H.R.기거도 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 작업을 하지않았던가.

 

하지만 국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중소 출판사에서 어린이용 공포 단편집에 작가의 이름도 없는 축약본으로 올리거나, 설사 러브크래프트의 이름을 달고서 나왔다고 해도 오역에 중역이 난무해 도저히 알아 먹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 중 최고봉은, 당연히 추리 소설계에서 악명이 자자한 동서문화사 본 「러브크래프트 전집」(이름만 같다.) 이다. 원래 러브크래프트의 문체가 워낙 이리저리 꼬는 투라서 원어민도 읽기 힘들지만 이걸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한 번더 번역하니 안 이상해질 수가 없다. 게다가 한 책 안에서 고유명사가 계속 바뀌는 괴상한 번역판이, 한국의 유일한 러브크래프트 번역본이었다.

 

그나마 올해 2005년부터 '카더라 통신'만 들려왔던 황금가지의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이제서야 출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한국의 유명한 러브크래프트 팬사이트 「위어드 테일즈」(http://www.weirdtales.org/) 의 운영자이자, 공포 문학 번역가로 유명한 정진영 씨의 번역과 조소현 씨의 크툴루 화보가 실린 이번 출판본은 예전의 동서문화사 판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를 지니고 있다. 이번에 '렛츠리뷰'로 받은 1권의 부제는 '크툴루 신화', 주로 크툴루 신화의 근원이 된 중/단편이 실려 있다. 「데이곤」, 「니알라토텝」, 「크툴루의 부름」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에 지구에 존재했던 미지의 존재들의 첫 등장을, 「벽 속의 쥐」, 「더니치 호러」, 「현관 앞에 있는 것」등에서는 그로 인해 엄청난 두려움에 떠는 인간들의 말로를 다룬다. 한국에서는 「좀비오」라는 이름의 좀비 영화로 널리 알려진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 연작도 실려 있어 공포 문학의 팬들에게는 1권 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공포' 진수성찬을 즐길 수 있다.

 

각 권 마다 연도 순서대로 수록이 되어있으며, 1권의 끝에는 번역자가 직접 쓴 「러브크래프트의 생애와 문학」과 번역자 후기가 실려 있어 러브크래프트의 학문적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유명사의 번역이 기존 출간본이나 팬들 사이에 통용되던 것과 차이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르뤼예'가 '리예'로 바뀌었다.)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황금가지의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중역을 하지 않은 최초의 러브크래프트 전집으로써 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 겨울에, 저 깊은 곳 심연에 자리잡은 공포의 근원을 탐험하는 것을 어떨까. 단, 정신줄 놓지 않도록 조심하고.

 

러브크래프트 전집 1 - 10점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씨네21』, 새로운 잡지를 내놓는다?

최근 발간되는 『씨네21』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씨네21』이 새로운 매체를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면, 증거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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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발간된 『씨네21』724호의 스탭란입니다. 매호 이 부분은 유심히 안 보시고 지나치시는 독자분들이 많겠지만 이 쪽을 잘보면 재미있는 부분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어요. 예를 들자면 DVD 섹션 편집위원 부분에는 『익스트림무비』의 운영자 김종철 씨가 계시고 (그래서 DVD 지면은 좀 매니악스러운 영화들이 주로 소개됩니다.) 문화평론가 임범, 김봉석, 소설가 김중혁 씨가 비상임 편집위원으로 『씨네21』에 관여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죠. …하여튼 스탭롤을 잘 보시면 중간에 이영진 기자가 새매채준비팀장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잘 안 보이신다고요?

 

 

좀 더 부분을 확대하고 박스를 쳐보았습니다. 확실히 이영진 씨가 새매체준비팀장으로 기재되어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도대체 무슨 매체를 준비하려는 것일까요?

 

사실 『씨네21』은 모회사인 한겨레신문사 못지 않게 자매지를 많이 시도하는 회사입니다. 지금은 사라지거나 휴간한 『Movie Express』(줄여서 ME, CGV와 합작으로 만든 무가 영화 정보지), 『NEXT Plus』(영화진흥위원위와 공동으로 만든 무가 독립 영화 정보지, 강한섭 위원장 이후로 지원이 중단되어 자연스레 휴간.), 『dvdtopic』(DVD 전문 웹진) 이 있었죠. 지금은 <10아시아>로 이름을 바꾼 『매거진T』도 있고요. (사실 『매거진T』는 오프라인 발간 예정에 있었으나 『팝툰』에 전략적으로 사업을 투자하면서 무산, 결국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자들이 전부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성인을 위한 월간 만화 잡지 『팝툰』 밖에는 자매지가 없지만요.

 

지금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잡지 창간이냐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6월에 발표된 한겨레신문사의 반기보고서를 보면 시도할 여럭은 충분히 있어보입니다. 『씨네21』 본지가 (즉, 주식회사 씨네이십일) 1월부터 6월까지 약 5억원의 적자를 낸대 비해, 영화 / 만화 웹하드 서비스가 주업무인 자회사 씨네21i(씨네이십일아이)는 2억 5천여원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반기 동안의 사업 실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자회사의 사업 실적이 괜찮았고, 본지의 적자 (사실, 올해 처음으로 『씨네21』은 적자를 보았습니다.)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잡지를 창간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새로운 잡지에 대한 어떠한 공지도 없고, 또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새매체 준비 사업이 흐지부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필름2.0』의 무기 휴간, 『프리미어 한국판』의 온라인 전환으로 인해 영화잡지의 존폐 여부가 논의되고 있는 만큼, 『씨네21』이 영화 잡지 외에 다른 수익 수단을 찾으려는 것을 사실입니다. 이미 2007년 부터 만화 잡지 『팝툰』과 만화 단행본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며 『팝툰』의 편집장인 이성욱 씨를 출판 사업 브랜드 '씨네21북스'의 총괄부장으로 임명하고 각종 에세이 / 소설을 발간하는 등 타개책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새로운 잡지를 발행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나오게 될 『씨네21』의 새로운 잡지, TV 문화를 적극적으로 해부했던 『매거진T』와 색다른 방향에서 성인 만화를 시도하고 있는 『팝툰』의 다음 잡지는 도대체 무엇이 될까요?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

꼭 구독하고 싶은 잡지, 어떤 것이 있을까

저번 시간에 현재 구독하는 잡지에 대해서 다루었다면, 이번 시간에는 현재는 구독하지 못하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구독하고 싶은 잡지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아직 여건도, 여력도 안 되어서 구독하지 못하고 가끔씩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넘겨보는 정도로 그칩니다만, 언젠가는 꼭 집에서 편하게 보고 싶을 정도로 보고 싶은 잡지. 이제부터 소개 들어갑니다.


씨네21 (주간 / 씨네21 / 3000원)

 

최근 들어서 연성화되었다, 평론이 많이 줄었다라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영상 종합 담론지. (이견이 많지만) 아직 영화가 제대로 된 문화 분야로 인정받기 전 시장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한겨레신문사는 조선희, 김혜리, 김영진, 안정숙 등을 필두로 전례가 없던 영화 주간지를 창간하게 되었고 몇 번의 부침을 겪고서 현재 가장 '읽을 만한' 기사를 많이 펴내고 있는 잡지이다. 물론 최근들어 영화 웹진이 많이 생기고, 영화 잡지도 「스크린」, 「무비위크」의 경쟁지가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상대가 안 되는 이유는 「씨네21」 특유의 영화계 이슈를 다룬 특집 기사, 그러면서도 영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문화로 자유롭게 넘나들고,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을 하는 성격이 아직도 많은 팬들이 씨네21을 사보게 만들고 있다.

 

Voila (월간 / 무가지)

 

문화의 획일화, 특히 서울 중심의 문화가 일상화 되어있는 한국이지만 이를 깨뜨리려는 시도 또한 당연히 존재한다. 한페이지단편소설(줄여서 한단설) 이라는 아마추어 소설가들의 한페이지 소설 쓰기를 촉진시키는 일도 하면서, 동시에 소설가도 겸하면서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수작인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를 펴낸 부산에 거주하는 서진 씨가 자비로 펴내는 월간 문화잡지 「Voila」(보일라, 라고 읽는다) 가 그 시도 중 하나이다. 방금 느끼셨듯이, 이 잡지는 서울에서 나오는 잡지가 아니다. 제2의 수도라 불리는 도시지만, 문화적 토양은 서울보다는 많이 척박한 도시인 부산에서 나오는 잡지이다. 그런 만큼 부산 지역의 문화 소식도 많이 나오지만, 한국의 다양한 문화, 문화인을 다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잡지이기도 하다. 모 처에서 한 번 접한 이후, 「Voila」의 매력에 끌렸지만 아쉽게도 그 곳을 자주 가지 못해서 최근에는 카페 소식으로만 만족하는 잡지이다. 지방 거주민에게는 1년 구독 배송비 20000원으로 유지되는 알찬 잡지, 「Voila」. 다른 잡지에는 공을 들이면서도, 정작 이런 잡지에 눈길을 자주 못 주는 것이 아쉽다.

 

(※ Voila 네이버 카페 가기)

 

녹색평론 (격월간 / 녹색평론사 / 8000원)

 

사실 이 잡지도 몇 달 전에 다루었으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출간되는 잡지로 소개할 수 있었지만 발행인 김종철 씨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작년부터 대구에서 서울 종로로 사무실을 옮김에 따라 아쉽게도 그렇게 소개는 할 수 없는 잡지이다. 그러나, 이 잡지가 88년부터 걸어온 여정, 단 한 호도 쉬지 않고 두 달마다 출간되어 한국에 환경에 대한 자각을 심기 시작했던 잡지, 각 지역마다 잡지 읽기 모임이 존재하는 잡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 전 겨우 통권 100호를 넘겼다는 것에 견주어 영향력이 큰 잡지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환경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무렵, 김종철 씨는 환경을 먼 미래의 문제에서 지금, 당장의 문제로 환기시켰다. 담론을 우리 곁에서 느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녹색평론」이 가진 힘일 것이다.

 

우리교육 (월간 / 우리교육 / 9000원)

 

「우리교육」은 분명 교사를 위한 잡지이다. 그래서 내용 중 일부도 교사가 일선 수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그쳤으면 「우리교육」은 일반의 다른 교육지와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교육」은 일선 교단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교육과 관련된 사회적인 큰 문제를,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문제부터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거대한 바위부터 다양한 문제를 파헤친다.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식 교육이 짙어져 가고 사교육 시장만 더욱 증가해 저소득층 학부모의 한숨만 깊어져가는 이때, 「우리교육」은 완전하지 않더라도 교육에 대한 어떤 해법을 연구할 만한 자료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풋, (계간 / 문학동네 / 8000원)

 

주의사항, 절대 '풋' 뒤에 있는 쉼표는 오타가 아니다. 보통은 생략해서 표시하지만 원래는 「풋,」이 올바른 잡지의 표기법이다. 표기법서 부터 심상치 않은 이 잡지의 정체는 청소년 문예지이다. 청소년 문예지라고 해서 설익은 풋사과같은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동네의 만화 임프린트 애니북스의 작가를 십분 활용한 다양한 만화 컨텐츠와 디자인에 청소년을 위한 교양을 넘어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보아도 좋게 볼 수 있는 '다연령 지향 문화 특화 문예지' 이다. 청소년 문예지는 많지만 그 중 청소년의 생각을 다양하게 보듬아주는 잡지는 단연 「풋,」이라 생각한다.

 

indigo+ing (격월간 / 인디고서원 / 10000원)

 

「풋,」이 청소년 문예지라면, 「indigo+ing」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잡지이다. 얇기만 하고 가격만 비싼 참고서대신, 마음 속에 새기면서 읽는 인문학, 사회과학, 소설 책을 팔고 조그마한 토론 공간을 갖춘 부산의 한 서점, 인디고 서원. 서점이 점점 대형화되고, 팬시 문구를 파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을 때 이 서점에서는 서점 주인 허아람 씨와 사회를 논하는 청소년들이 노니는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청소년들의 생각과 토론을 바탕으로 잡지가 창간되었고, 그 잡지가 바로 「indigo+ing」이다. 가격에 비해 방대한 양의 콘텐츠, 그리고 청소년을 넘어서 사회인이 되어서도 골똘히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이 잡지. 정작 게으름으로 인해 구독 신청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

review 「gBlog」2호 - 인문학 잡지의 새로운 모델

 

몇 년전 부터 심심하면 나오는 이야기. 모 대학의 강당에 비슷비슷하게 생긴 얼굴을 한 교수들이 비슷비슷한 양복을 입고서 항상 말을 달라도 '인문학의 위기'를 비슷한 말로 주절거린다. 그래, 어느 순간부턴가 한국의 인문학은 항상 위기였다. 사람들이 학문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인문학이 죽어간다고, 그러니까 관심을 좀 써달라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척 공감이 갔지만, 같은 얘기도 계속 들으면 지겹듯이 이제는 별 진정성 없는 이야기로 들린다.

 

분명 교수들의 말대로 인문학은 서서히 침체의 일로에 빠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인문학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돈도 못 버는 학문이어서 사람들이 등한시하는 것일까? 그리고 해결책은 사람들이 인문학과 관련된 학과에 많이 진학하거나 책을 많이 사는 것 뿐이고? 옳은 듯 하면서도 별로 수긍되지 않는 분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책이 있었으니,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 고미숙 씨가 쓴 「열하일기 -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이었다. 그린비 출판사라는 전혀 그 당시에는 듣도 보도 못한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책, 출판사는 몰랐지만 전에 교과서에 보았던 내용이 생각나서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책인데, 점점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흥미진진해졌다. 국어 교과서에서 '한문 소설의 새 지평을 연' 옛날 사람으로만 알았던 박지원이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었을 줄은 몰랐었다. 박지원 씨의 작품도 흥미로웠지만, 맛깔나게 번역한 문체와 각 장면들 마다 참신하고 신선한 분석을 선사한 고미숙 씨의 센스도 책을 재미있게 읽는데 한 몫했다. 당시에는 노마디즘도, 이진경 씨도 누구인지 몰랐지만 대상에 접근하는 그 능력이 참 멋있게 느껴졌다. 그 책을 읽은 이후로 부터 그린비 출판사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일을 겪으면서 책을 고르는 식견과 취향이 넓어졌다. 예전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사회 과학, 인문학 분야의 책을 사기 시작했고 수유+너머와 그린비 출판사의 책들에 점점 많이 손이 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해 초에 그린비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인문학을 다루는 '무가지', 그것도 서평과 그린비 블로그 (http://www.greenbee.co.kr/blog) 에 올라오는 인문학 포스팅을 바탕으로 잡지를 낸다는 소식. 너무나도 끌려서 당장 1호를 신청하였고, 오랜만에 볼만한 인문학 잡지를 보아서 감격스러웠다. 그것이 바로, 「gBlog」이다.

 

정식 잡지로 등록한 것은 아니어서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gBlog」가 지난 9월 16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2호가 발간되었다. 그리고 오늘, 2호가 갈색 봉투에 고이 담긴 채로 집으로 배송되었다. 후다닥 손으로 봉투를 찢으니 갈색 톤의 표지가 나를 반긴다. 아, 행복해라. 책 봉투를 찢을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책, 그것도 좋아하는 인문학 분야나 문화 분야, 만화책이 나오면 기분이 즐거워진다.

 

이번 「gBlog」 2호의 가장 큰 키워드는 '글쓰기' ,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과 대안' 이다. 흔히들 글은 훌륭한 식견을 가지거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만 쓰는 것으로 안다. 게다가 갈 수록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는 어렸을 때 문학청년의 꿈을 꾸었던 사람을 일 년에 책 한 권도 보기 버거운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게 글쓰기는 삶의 주변에서 점점 여유가 있고,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한정된다…고 믿는 당신에게 「gBlog」는 어퍼컷을 날린다. 버스 운전사 20년 경력의 특이한 이력을 가진 월간 『작은책』의 안건모 편집장을 통해 생활 속의 글, 글 쓰는 것의 중요함을 들려준다. 일하는 사람, 보통 사람의 진솔한 글은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하다. 점점 글과는 멀어져 가는 직장인들, 조금만 짬이 나면 책을 보거나 자신의 솔직한 에세이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곧이어 이어지는 '이럴 때 이런 책' 코너에서는 각종 글 쓰는 법에 대한 그린비 직원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결론은 하나, 자신만의 솔직한 감정과 노력으로 쓴 글이야말로 '잘 쓴 글' 이다. 글쓰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단지, 진입하는 과정의 장벽만 넘으면 될 뿐이다.

 

이외에도 「gBlog」는 책, 노래를 다양한 시선에서 쳐다본 감상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점점 각박해지고 경쟁만 강화되는 세상에 대해 거침없이 손가락을 날린다. 스펙에 목숨을 거는 대학생들에게 영화 「도쿄!」의 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여행을 통해서 얻은 성찰을 보여주면서 무한 경쟁만 반복하는 세상에 대한 유쾌한 저항심을 심어준다. 장기하의 얼굴들의 명곡 「별 일없이 산다」의 가사를 국가와 자본에 대한 개인의 자유로 해석하는 센스도 볼 수 있다. 어디 거기 뿐이랴. 책 하단에 미니 서평을 마련하여 그 부분만 읽으면 자연스럽게 서평 모음집이 될 수 있게 한 재치도 엿보인다. 인문학 관련 책 뿐만 아니라 에세이, 여행집, 만화 등 다양한 책을 소개해 어느 한 쪽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문학하면 괜히 식은 땀이 줄줄나고 어려운 느낌이 든다면, 「gBlog」는 인문학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효과적인 멘토가 될 것이다. 원래 인문학 자체가 현실 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겨난 학문이 아닌가.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와 구성으로 자랑하는 잡지보단 비록 얇고 부정기 발행물이지만 인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싶은 대학생과 시민들이 다가갈 수 있는 「gBlog」가 더 '실용적' 이라 생각한다.

드디어 나오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신청기간 : 2009.09.15 ~ 09.29
신청수량 : 20개





「좀비오」, 「어둠 속에 나홀로」, H.R.기거의 기괴한 그림, 그리고 각종 기묘한 설정을 알지만 그것의 바탕이 된 러브크래프트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대로 소개가 되지 않았던 탓이 크겠죠.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황금가지에서 정식 발간으로... ...


 

B급 좀비 영화의 진수 「좀비오」, DOS 시절 공포 게임의 대명사이자 현재도 후속작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게임 「어둠 속에 나홀로」, 너무도 기괴해서 각종 크리쳐 디자인의 참고가 되기도 한 H.R.기거를 아는 사람은 꽤 될 것입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는 아십니까? 온갖 기괴한 설정, 암울한 분위기의 소설로 현대 공포 문학의 기원을 이룩한 러브크래프트, 그가 만들어낸 가공의 신화 '크툴루 신화'는 크리쳐 공포물의 모티브로 지금까지 이용되는 등 사후에도 그의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번역물이 제대로 나온 적이 거의 없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설사 나왔다고 해도, 오역이 난무하고 제대로 된 판권도 갖춰지지 않은 해적판이었죠. 공포 소설 매니아들은 황금가지에서 그의 전집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몇 년간이나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지치게 할 때쯤, 그제서야 나왔습니다. 완벽한 번역을 갖추고서요.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한 번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저도 못 봤지만;;;) 그의 작품이 어떻게 다른 작품에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하면서도 읽는 것도 재미있게 읽는 방법 중 하나겠죠. 비록 암울한 설정과 함께 H.R.기거의 그림이 암울한 분위기를 한층 저 고조시키지만, 공포 소설이 워낙 그렇지 않습니까. 현실에 없을 법한 공포로 진짜 현실의 공포를 잊게 하는 것, 그게 공포의 매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