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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이슈 앤 베스트 : 영화, 주춤하는 대작, 꿈틀대는 독립


ISSUE

 - 대작들, 힘을 쓰지 못하다 : 설마 이렇게까지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CJ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작품 <퀵>, <7광구>, 쇼박스가 준비했던 <고지전> 등의 작품은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기거나 결국 달성하지 못한 채 흥행을 마무리하였다. (아직 섵불리 말하긴 힘들지만 CJ의 <마이웨이>, 롯데의 <퍼펙트 게임>도 곧 비슷한 열차를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충격이 큰 곳은 단연 CJ E&M과 JK필름. <해운대>의 성공을 <퀵>, 그리고 한국 최초의 IMAX 3D 영화 <7광구>를 통해 다시 한 번 즐기기를 기원했으나 2009년의 상황은 다시 재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당초 기대치가 낮던 영화들이 흥행의 단맛을 즐겼다. CJ E&M에서 배급한 <도가니>, <완득이>,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한 <위험한 상견례>, <마당을 나온 암탉>, <최종병기 활>, 쇼박스에서 배급한 <조선명탐정 : 황금투구꽃의 비밀>, <의뢰인>, NEW에서 배급한 <가문의 수난 : 가문의 영광 4>가 그 영광의 주인공들이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퀵> - <고지전> 정면 대결의 사례처럼 무턱대고 상도덕을 어기고 맞붙어서 이렇게 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2009년의 <해운대> - <국가대표> 쌍끌이 흥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씨네21>은 영화 배급사 · 투자사의 계량화된 작품 평가를 통한 제작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각본을 씬 단위로 나눈뒤 일정 점수가 넘어야지 통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감독과 각본진에 제약을 가져왔고, 자체 최종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은 결국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2003년,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싱글즈>, <올드보이>가 같은 해 개봉해서 소위 '웰메이드' 영화붐이라 일컫는 시대가 탄생한 것엔 과연 계량적인 평가가 존재했을까. 영화 제작의 산업화, 분업화 속에서도 개성을 잃지 않는 작품이 필요하다.

 - 독립영화는 세상에 맞서고 : 이러한 와중 속에서 독립영화는 계속 생존의 길을 모색했다. 2009년 말 폐관된 인디스페이스는 폐관 당시 남겼던 'I'll be back'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고, 끝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계속 모금을 받았고 관계자, 유명인사들을 설득해 발기인이 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다시 부활한 인디스페이스는 원래 12월 초 신촌 아트레온을 대관해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무산되고 대학로의 한 소극장을 대관해 내년 초 재개관할 예정이다. [한 가지 여담이지만, 다음 인디스페이스 발기인 명단을 잘 보면 (링크) 예상치 못했던 이름들이 눈에 보인다. 바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KBS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에서 왕비호 역할을 맡던 윤형빈의 뒤를 이어 '까도남'이라는 기믹으로 프로그램의 막을 내리던 개그맨 송영길이다. 이를 이용해 홍보했으면 참 재미있는 결과물을 낳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쉬운 일이다. 참고로 현재 인디스페이스 공식 홍보대사는 <방자전>의 류현경과 <파수꾼>, <고지전>의 이제훈.] 이에 휘말려 재개관하는 인디스페이스에서 행사를 열려고 했던 서울독립영화제는 CGV 압구정을 통해 부랴부랴 장소를 잡고 개최하였다. 뒤에서 BEST를 소개할 때 같이 소개하겠지만, 시의성과 독립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실험적, 자유적 시도를 가진 작품들이 계속 터져나왔다. 물론 한국 독립영화의 미래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리모델링'이었지만 영화사 진진이 동숭아트센터에서 운영하던 극장 '하이퍼텍 나다'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혜화, 동>, <파수꾼>, <무산일기>, <북촌방향>, <돼지의 왕> 등이 호평을 받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작품들은 많은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수면 아래 가라 앉는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맞설수록 독립영화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커질 것이다.

 - 애니메이션과 다큐의 성장 : 특히 올 한 해는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소외받던 장르인 애니메이션과 다큐가 많이 나왔던 해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개봉한 한국 애니메이션은 <집>, <소중한 날의 꿈>, <엄마 까투리>, <마당을 나온 암탉>, <홍길동 2084>, <돼지의 왕>. 이렇게 총 여섯 개의 작품이 개봉했다. 바로 옆 나라인 일본, 좀 더 먼 나라 미국 등에 비하면 한참 수가 모자라지만 작품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집>은 <파수꾼>과 함께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의 산물로 개봉한 작품으로써 실사와 2D 애니메이션의 조화를 이끌어내었다. <소중한 날의 꿈>은 긴 제작시간과 그림체 변경으로 작품을 기대하던 많은 팬들을 때로는 지치게 하고 때로는 의아하게 만들었지만 잔잔한 연출과 추억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비록 많은 관객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매니아층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동명의 원작을 토대로 영화사와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협업, 홍보가 좋은 흥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물론 이 흥행의 결과가 실제 제작사에게 온전히 흘러갔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링크)] <돼지의 왕>은 성인용 애니메이션이 단순히 야하다는 생각의 틀을 깨는 동시에, 비록 손익분기점을 채우는데 실패했지만 한국에서도 강렬한 스토리를 원하는 팬이 존재하다는 사실을 상기하였다. <엄마 까투리>와 <홍길동 2084>는 왜 안하냐고? 두 개는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지원 지역을 중심으로 개봉해 많은 관객을 모으지 못했지만 지역 영화의 흥행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후자는 반면교사적인 의미에서 상기해야 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보다 많은 제작비를 들여 제작되었지만 연출적인 면에서도, 내용적인 면에서도 결코 낫지 못했다. '지역 홍보'라는 미명 아래 이루어지는 지자체의 지원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애니메이션과 더불어 다큐멘터리의 개봉도 활발했는데 올해 개봉한 한국 다큐멘터리는 다음과 같다. <쿠바의 연인>, <굿바이, 평양>, <아프리카의 눈물 : 극장판>, <바보야>, <소명 3 : 히말라야의 슈바이처>, <종로의 기적>, <트루맛쇼>, <오월愛>, <법정 스님의 의자>, <겨울냄새>, <환타스틱 모던 가야그머>, <술에 대하여 : 극장판>, <꿈의 공장>, <보라>, <훈장과 악동들>, <고양이춤>, <꿍따리 유랑단>, <하얀 정글>, <오래된 인력거>, <Jam Docu 강정>. 이 중에서 TV로 상영된 다큐멘터리를 극장판으로 재편집한 <아프리카의 눈물 : 극장판>, <바보야>, <법정 스님의 의자>, <술에 대하여 : 극장판>을 제외하면 다양한 주제를 시의성에 맞게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특히 <트루맛쇼>의 경우 예전부터 제기되어왔던 TV 맛집 프로그램의 문제를 정면으로 고발해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다큐 내용을 토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실제 경고를 내리는 등 사회적 파장을 동시에 낳았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일반 상업 영화처럼 동시 개봉을 하지 못하고 인디/독립영화 전용관을 중심으로 근근히 상영되었으며 (참고로 이들 다큐멘터리 중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영화는 청학동 김봉곤 훈장의 예절 캠프를 다룬 <훈장과 악동들>이었다.) 많은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재를 다룬 <오월愛>,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꿈의 공장>, 한국 산업안전보건의 실태를 통렬하게, 그리고 실험적으로 다룬 <보라>, 한국 의료/진료의 현실을 고발한 <하얀 정글>, 8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룬 다큐 <Jam Docu 강정>은 담고 있는 내용의 크기에 비해 상영관수는 너무나 부족했다. 앞서 다뤘던 독립영화의 상영실태와 엮어, 더 많은 다큐멘터리가 관객들에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한다.

BEST

가나다순으로 정렬했다. 정식으로 개봉한 영화에 대해서만 작성했다.

 - 댄스타운 (전규환 연출) : 성인 비디오를 보았다는 이유로 남편이 숙청당한 여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남한으로 넘어오지만 남한은 그녀에게 자유롭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친절해보이는 이는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고, 그녀와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그녀와 지체 장애인 간에 벌어지는 마지막 씬은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 돼지의 왕 (연상호 연출) : 최규석의 우화에서 시작된 어린 시절,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을 잇는 끔찍하고 처절한 시나리오는 한국 애니메이션, 특히 성인 애니메이션에 있어 굵직한 발도장을 남겼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폭력은 개인에게 거대한 상처를 입히고, 상처입은 자들은 영웅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 영웅이 자신의 기대와 맞지 않는다면? '2011 이슈 앤 베스트 - 만화'에서도 소개한 최규석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처럼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대한 한 편의 잔혹 동화와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 무산일기 (박정범 연출) : 카메라는 탈북자 전승철에게 시선을 깊숙이 맞춘다. 남한에서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과 그가 남한에 온 이유가 서로 겹치는 순간, 관객들은 남한과 북한이 모두 각박한 나라라는 사실을 깊게 인식하게 된다.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느낌으로 연출한 영화는 비록 픽션이지만 사실감은 어느 다큐멘터리에 못지 않다.

 - 보라 (이강현 연출) : 영화는 관객에게 불친절하다. 공장과 회사 곳곳을 카메라로 누비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법의 실태,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현실로 쭉 흐를듯 하던 영화는 갑자기 서버회사에서 밤샘하는 노동자와 전자상가에서 하드디스크 복구를 원하는 손님, 리니지로 세상과 소통을 한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자신이 원하는 피사체를 얻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을 다룬다. 공장에서 벌어지는 인간 소외는 공장 밖에서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거칠지만, 얼핏 보기에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개의 현실을 이은 통찰력은 대단하다.

 - 블라인드 (안상훈 연출) : 사고로 인해 시각 장애인이 된 여성과 눈은 보이지만 마음을 둘 곳이 없는 소년은 우연히 만나 이들은 노리는 위협에 맞서나가고 소중한 이들을 지킨다. 스토리 자체는 평범한 스릴러영화이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특수한 소재의 사용과 적절한 연출은 영화는 평범치 않게 만들었다.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쉬가르 파르하디 연출) : 제목은 맥거핀인 동시에 작품의 맥락을 전달한다. 등장인물들은 진실을 말한다고 선언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인간의 본성을 담담하게 짚게 만든다. 이란의 시대적 현실과 맞물리는 진실 찾기는 비슷한 류의 작품 <의뢰인>,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보다 더 관객에게 강렬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 오늘 (이정향 연출) : 등장인물들이 단선적이고, 이야기가 작위적인 점이 흠이긴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부자연스러운 힘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관객들이 보았어야만 했다. 폭력과 용서, 종교, 가정을 엮어 전개하는 영화는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에서는 직설적으로 파격적인 주장을 전개한다. 올해 묻힌 영화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영화.

 - 오월愛 (김태일 연출) : 기존의 다큐멘터리가 광주민주화항쟁 자체에 중심을 기울였다면, 이 작품은 항쟁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세월이 지난후 인식되는 항쟁에 초점을 맞춘다. 세상에 대한 변혁의 뜻이 담겼던 항쟁은 어느덧 상징이 되었고, 전남도청 별관 철거 소식이 들려오자 항쟁에 대한 인식들은 충돌과 갈등을 낳는다.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현재에서의 재인식을 촉구한다.

 - 파수꾼 (윤성현 연출) : <파수꾼>은 한 소년의 죽음과 얽힌 두 소년의 궤적인 동시에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한 아버지의 추리극이다. 소년들은 각자의 이해와 얽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가져온 폭력은 결국 모두에게 정도가 다른 파멸을 가져 온다. 청춘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돼지의 왕>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 성격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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