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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표류기, 두 김 씨의 생존과 연대를 다룬 크다면 큰 서사시

ⓒ 반짝반짝영화사

 

* 스포일러가 가득 실려있습니다.

 

작년 즈음에 모 주간 영화잡지의 영화 제작 안내표에 정체를 알 수없는 물건이 들어왔다. 제작 중인 영화에 떡하니 실려있는  「김씨표류기」. 한국에 드디어 표류를 다룬 재난 영화가 만들어 지려는 것인가 싶었는데, 감독 이름을 보니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든 이해준 감독이다. 감성적이고 느린 페이스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 표류 영화를 다룬다? 시놉시스를 보니 표류는 표류인데, 한강 밤섬에 표류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한다.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1년 동안 가졌던 의문은 지난 주에 직접 영화를 봄으로서 풀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남자 김 씨(정재영)의 '밤섬 표류'와 여자 김 씨(정려원)의 '방 안 표류' 를 교차하면서 다루고 있지만, 이 표류의 안에는 한국의 20대가 처해있는 현실이 숨어있다.

 

남자 김 씨는 표류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 평범하게 자라나서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졸업해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평범한 연애를 하던, 그야말로 평범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경제 악화는 그런 김 씨의 삶에 풍파를 가져오고 말았다.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짤려, 돈을 빌렸는데 회사에 쫓겨났으니 신용 불량자로 전락당해, 게다가 냉정한 여자 친구에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결별당한, 평범한 삶에서 최악의 삶으로 전락하고 만다.

 

여자 김 씨의 삶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서 고등학교에서 전따를 당했었고, 그 충격으로 3년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하는 삶을 살아왔다. 얼핏보면 남자 김 씨가 더 나은 인생을 살아온 것 같지만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순식간에 '88만원 세대'보다 못한 처지가 되어버린 남자 김 씨나, 주변 사람들의 공격으로 온라인 상의 관계만 유지하는 여자 김 씨나 사정은 비슷하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사회의 나락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지만 서로를 몰랐었던 그들은 여자 김 씨의 취미인 천체 관측으로 인해 단방향적 관계를 맺게 된다. 우연하게 여자 김 씨가 한강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다가 밤섬에 표류한 남자 김 씨를 보게 된 것이다. 남자 김 씨는 여자 김 씨가 자신을 보고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지만, 여자 김 씨는 남자 김 씨에 대해 점차 특별한 관심을 보내게 된다. 여자 김 씨의 '노력'으로 둘은 와인병 편지와 돌로 불완전하고 느리지만 '서로 소통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심지어 한 쪽은 상대방의 얼굴조차 모른다) 이루어지는 양방향 교류는 인터넷 상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형상화시킨 것 같다. 인터넷은 익명의 공간이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없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을 느끼며 꺼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현실보다 격의없는 사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거나 확실해지기 어렵다. 익명성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상대방을 잘 모르기에 때문에 쉽게 의심하거나 서먹해지게 만든다. 영화 상에서도 남자 김 씨가 무심코 전달한 '당신은 누구신가요?' 라는 말이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던 여자 김 씨에게 큰 상처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 일 이후 한동안 서먹서먹하던 두 김 씨의 관계는 결국 한강 경비대가 남자 김 씨를 발견함으로써 큰 위기를 맞게 된다.

 

평범하게 지내오다가 자신에게 '배신'때린 사회에 들어오기 싫은 남자 김 씨와 자신을 따돌린 사회가 무서워 숨어 지내오던 여자 김 씨 모두 사회를 거치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서로를 잘 모르고 피상적인 관계는 맺기 쉬운 동시에 부서지기도 쉽다. 두 김 씨는 사회적 약자의 연대를 형성했지만 조그만 오해나 사회의 공격에(영화에서는 한강 경비대, 의도적인 공격은 아니었지만) 약했다.

 

한강 경비대가 남자 김 씨를 여의도 근처에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나서, 여자 김 씨는 그를 찾기 위해 그동안 무서워했던 사회에 뛰어든다. 여자 김 씨가 사회에 대한 공포를 뛰어 넘고서 남자 김 씨를 보기 위해 집 문턱을 나선 것은 작지만 크나큰 사건이다. 표면적인 관계에서 더 밀착한 연대로의 진전을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둘 다 각자의 공간에서 그럭저럭 생존을 하고 있었지만 사회에서 동떨어진 상태에서의 생존이었기에 현실이 개입해올 경우 (남자 김 씨에게는 한강 경비대, 여자 김 씨에게는 '악플') 생존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여자 김 씨가 두려움을 넘어섬으로써 관계는 두터운 연대가 되고 두 사람의 생존 가능성도 커지게 되었다.

 

영화는 두 김 씨가 서로를 끌어안음으로써 끝이 난다. 두 사회적 약자가 만나서 표면적인 관계를 형성하다가 마침내 튼튼한 연대를 만들어낸, 얼핏 보기에는 작아보이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큰 서사시가 끝을 맺은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청소년이나 20대 처럼 현재 사회적으로 안 좋은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도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에는 각종 현실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목표에서 모두의 목표가 되는 순간 그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 쉬운 일이 될 것이다.

 

* 「영화万보기」의 그 자랑스러운 (?) 첫 화. 하지만, 1) 기사가 너무 심하게 밀려있는 상태에서 쫘르륵 올라왔고, 2) 개편 때 강하게 요구한 각 주제별 코너 배치는 아직 개편이 안 되어서 맨 밑에 기사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댓글 0개라는 심히 쪽팔리는 출발을 하게 되었다. 사실 코너의 탄생도 현재 기진맥진한 상황에 놓여있는 「적절한 신간」의 땜빵용으로 그럭저럭 만든 것이어서 (사실 원래 이 기사는 블로그용으로 올라올지도 모르는 글이었다!) 비운한 태생의 비운한 출발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뭐, 그러니까 다음 화부터는 댓글을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