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이 지나간 자리 : 키보드 배틀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 프리퀄
첫 포스팅을 준비하기 전에 프리퀄로 '논쟁 이후의 상황' 을 다룹니다. 곧이어 첫 번째 포스팅이 이어지니 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넷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블로거 간에 벌어지는 키보드 배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서로가 내뱉는 주장이 워낙 훌륭해서 논쟁 자체가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키보드 배틀의 대부분은 일명 '병맛 배틀' 이다. 논리도 뭐도 없다. 오독을 해도 상관 없다. 그냥 냅다 까고서 이유로는 '그냥 까고 싶으니까'를 대는 것이다. 이런 논쟁에 누리꾼들은 흥미롭게 지켜보고 댓글, 또는 각자의 블로그에 소감이나 분석문을 작성한다.
하지만 정말 이런 병맛 배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논쟁의 시작? 과정?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 보아야할 것은 배틀 관계자가 배틀 후의 행동 방식과 배틀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하루에 수도없이 생겨나는 키보드 배틀 속에서 조금만 열기가 식으면 사람들은 관심을 잃는다. 관심을 잃은 현장에는 뼈아픈 자기 반성보다는 자신의 추종자와 지지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종종 목격된다. 그런데 이 승리 선언, 정말로 이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키보드 배틀의 특성 상, 배틀의 승패를 가리기가 참 곤란하다. 누리꾼들의 열기가 식으면, 논쟁 당사자들의 열기도 식는다. 보통 누구누구의 잘못이다로 결정나기 보다는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한 마무리로 끝나는 일이 잦다. 이제 상대방도 자기에 관심을 안 기울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겠네? 이 때를 틈타서 일부 논쟁 당사자는 승리를 선언한다. 상대방의 관심이 없어진 황량한 폐허에서 추종자들끼리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 그건 자신들만의 승리이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한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선언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자신들만의 승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그 당사자가 다음 논쟁을 시작할 시 써먹을 근거 자료로도 '승리'는 활용된다. 자신은 누구누구하고의 논쟁에서 승리했다. 너따위가 감히 나에게 배틀을 걸 자격 (싸울 자격) 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신들만이 설정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 승리는 자연스럽게 '모두가 인정한 승리'로 포장되어 다른 블로거와의 배틀에 쓰인다.
만약에 실수 (다른 사이트에 올린 자폭성 댓글 등 자신을 공격할 만한 수단으로 쓰일 모든 도구가 드러남) 나 신상 공개 폭탄으로 패배했다고 해도 그런 블로거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좀 쉬다가 슬슬 복귀하면 되니까. 물론 도박, 음주 운전 등의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이라고 해도 자숙의 시간을 갖고서 예전보다 더 나은 행동을 보여주면 약간의 비판은 있을지라도 보통은 무난하게 넘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어떠한가? 예전과 같거나 그보다 더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복귀는 많은 지탄을 받는다. 어거지 논리로 공격한 블로거면 더욱더.
하지만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 자신이 펼치는 논리의 부적합성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자기를 믿고 따르는 '추종자'가 있으니까. 다른 블로그에도 특정 블로거의 댓글란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냥 친목 관계에서 그치는 반면, 추종자들은 블로거들에 무조건 충성한다. 분명히 어긋난 논리로 공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별로 벗어나지 않은 논리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몰아 붙인다. 그리고 다시 잠잠해지면 승리를 선언하고, 상황은 반복된다. 싸우고 자축하고 문제 생기면 좀 쉬다가 다시 복귀해서 다시 싸우는 무한 반복인 것이다.
논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논쟁에 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건만, 점점 지나간 자리에는 승패 우열과 자축만 남고 있다. 아예 자랑스럽게 자신이 잘못된 논리를 쓰는 것을 자랑하거나 구시대적 사고 방식을 떳떳히 밝히며 공격한다. 이들에게는 지나간 자리가 폭격을 맞아 풍비박산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저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니까. 그렇게 그들은 FPS 게임 승리전적을 자랑하듯 자신의 키보드 배틀 승패 전적을 자랑하고 오늘 밤엔 어떤 놈을 깔까 누구에게 굴욕을 줄까 나쁜 마음 끝이 없는 욕심를 생각하며 컴퓨터를 부팅한다. 그렇게 논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핏덩어리만 남게 되었다. 핏덩어리는 계속 늘어만 간다.
참고자료
▶ 키배에서 끝까지 버텨서 얻어낸 승리란 - capcold님의 블로그님, 2009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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