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인 만화의 미래를 보여주다 - 그루 #4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원금을 받고 (이제는 전부 합쳐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되었죠) 격월간으로 나오던 『그루』가 #4를 마지막으로 짧았던 격월간 시대를 마감합니다. 어차피 『그루』는 정확히 말하면 문광부에 등록한 정기간행물이 아닌, 부정기 앤솔로지 형태의 잡지였으니까요. 그래도 2달 간격으로 잡지를 기다리던 기분이 사라진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제가 『그루』의 창간을 처음 정보로 접했을 때 기분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허브』가 2006년 (재정상의 문제 때문으로 추측되지만) 단 한 호를 내놓고 무기 휴간을 한 이후로 한국 성인 순정 만화 잡지의 맥이 끊겨있던 터라 기분이 정말 좋았죠. (물론 『팝툰』이 나왔지만, 『그루』가 순정 / BL 쪽을 주로 다룬다면 이쪽은 20 ~ 30대를 전반적으로 노린 케이스) 게다가 작가진들도 한동안 소식이 없던 작가들로 대거 구성되어서 좋은 기분은 한창 배가되었답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현재는 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만화가 이진경 씨는 「사춘기」이후로 잡지 연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코믹19에 「댄디 부치」를 연재를 했지만, 이쪽은 온라인 연재이고 아는 독자도 많지 않습니다.) 『나인』에 연재했던 「우주인」으로 유명한 만화가 이향우 씨도 『허브』에서 연재하다가 잡지 휴간으로 2년 동안 다음 화가 나오지 않았던 「몽환 가족」의 재연재. 그 밖에 『화이트』에 연재했던 「THIS」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가 문흥미 씨도 경향신문에 게재했던 「참 잘했어요」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그루』에 연재를 시작했죠. 이런 경사가 일어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물론 창간호였던 #1은 (반년간 BL 앤솔로지『뷰티풀 라이프』를 내놓 경험에도 불구하고) 식자나 편집 면에서 미숙한 점을 드러냈지만 작품 덕분에 잘 보았었습니다. 초판 한정 부록이었던 『뷰티풀 라이프』 견본도 좋았고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2, #3를 내놓고 그리고 4월의 마지막을 앞두고서 2009년 5월호, #4를 내놓았습니다.
#4는 『그루』 사상 가장 페이지수도 많고, 게재된 작품의 수도 많은 호입니다. 예전보다 편집이 능숙해진 호이기도 합니다. 늘어난 작품으로 인해 칼럼이 빠진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더 많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줍니다.
장편 연재작 이야기를 해볼까요. (가능한 스포일러는 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 알고싶다면 사보세요~) 새의 「NANZO」는 내용은 현실적이어서 좋기는 한데, 짧은 연재 분량 때문에 감질이 나는 만화입니다. 대충 관계 라인의 구도가 머리 속에서 구성이 되는데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저 (연속으로 난조, 난제 자매의 과외를 맡게 된) 과외 선생의 과거가 궁금할 뿐이라 할까요.
유시진의 「푸른 목걸이」는 점차 작품 안의 설정을 확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내용이 잘 이해가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앞에 지난 줄거리를 넣은 것은 독자를 위한 참 좋은 서비스이지만, 모든 장편 연재 작품에 넣지 않고 왜 하필 「푸른 목걸이」에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녹경과 태열은 지키고 지킴을 받는 관계이지만 아직까지는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적, 과연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합니다. 사족으로 한 가지 인상깊은 점이 있다면, 녹경의 상사는 변태인가요. (…) 이건 남자끼리의 우정을 넘어서는 행동이잖아
언제나 2회씩 연재해서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이향우의 「몽환 가족」은 갑자기 마을에 찾아온 서커스단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연재를 끊어 독자를 감질나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희망을 환각으로 나타내는 서커스'는 좋은 설정인 것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 문흥미의 「그래도 괜찮아」는 점점 중학교 때 사건의 실상이 드러나려고 하는 찰나… 연재를 끊는군요. 지원은 재형에게 가졌던 의심과 경멸이 사실은 오해였다는 사실을 알지만,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이건 어찌보면 자존심과 관계된 행동인데, 평소에도 겉으로는 사려가 깊은 척 하지만 사실은 자존심이 강한 지원. 과연 지원이 어떻게 재형과 관계를 지속하게 될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단편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는 부분만 들겠습니다. 톰톰의 「남빛 초상」은 글쎄요…. 단순히 전에 게재했던 단편 「흑단과 벌꿀」의 프리퀄같다는 느낌 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1부터 한 페이지 짜리 카툰을 연재했던 채은의 「악령」은 사실 어찌보면 가정의 달에 어울리는 만화라고 볼 수 있겠네요.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한 숭고한 어머니의 사랑(?). (무려 장편 연재와 단편 연재를 모두 한 기록을 세운) 전유호의 「고백의 화원」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 평범한 작품이라는 인상이 들었고, (또 노골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만화가 송태욱 씨의 「바나나 비타민」은 참신한 설정이구나…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차라리 페이지 수를 늘이고 어떻게 '비타민'이 가족을 변화시켰는지를 서서히 보여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너무 다급하게 전개한 흔적이 아쉬웠어요. 동아리 결의 회지 『매지션』에 연재했던 김나경의 「이상한 나라의 순이」는 김나경 다운 아기자기한 코믹 터치와 고양이에 대한 작가분의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뷰티풀라이프 부분은 제가 일단 고등학생이고, 그래서 관심은 있으나 앞 부분은 보지 못한 작품이 많기에 단편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경하의 3부작 첫화 「개와 고양이의 집」은 전형적인 BL 만화라는 인상이 듭니다. 쇼타를 좋아하는 (?) 사장과 그 밑의 부하 직원 간의 러브 스토리, 잘 꾸미면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실의 「클라이튼 표류기」는 오해를 코믹하게 (그리고 BL의 문법에 맞게) 표현을 잘 했어요. 신기함과 그리움으로 다가간 것 뿐인데, 그것을 BL로 느끼는 상대방이라. 이거 상대방이 더 위험한 거 아닙니까
전체적으로 한국 성인 순정 만화의 현재를 볼 수있던 특대 볼륨의 『그루』 #4였습니다. 장편 연재작 중에서 너무 짧은 분량을 게재해서 아쉬운 분도 있고, 약간 심심한 단편도 있었지만 괜찮았습니다. 다만 염려되는 점이 있다면 절대교감이 부부 단 둘이 운영하는 회사여서 회사가 협소해서, #5가 늦게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뷰티풀 라이프』나 다른 BL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판매 장소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약간 불안하다고 할까요. 제발 『새만화책』의 다음호가 2년 반이 지나서야 나왔던 끔찍한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아쉬운 점도 있고, 불안한 점도 아직 존재하는 『그루』, 그러나 현재로써는 한국 성인 만화 시장의 유일한 순정 만화잡지이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성인 순정 만화 시장의 현재를 보여주고, 또 앞으로 가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잡지인 『그루』,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해서 더 좋은, 더 많은 작품을 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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